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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예수(주현절 넷째주일)

longbeach 2018-01-27 (토) 08:02 2년전 531  

놀라운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2018128일              44:1-8/ 5:29-42/ 11:2-15                    주현절넷째주일

 

오직 하나님의 이루시는 구원(44:1-8)

 

초등학교에 다닐 때 유난히 교회를 비난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논두렁길 걸어 집에 돌아가면서 친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혔고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머리에 비상한 답이 떠올랐습니다. “왜 못나냐! 우리 동네 누나는 처녀인데도 애 낳았잖아 인마!” 하나님이 주신 기가 막힌 답 같았고 그 아이는 한동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부터 제 자신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교회에서 늘 듣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쳐 신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이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다니던 시절, 제게 다가온 일생일대의 큰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이 절망의 자리에서 구원해 주시라고 그분 앞에 처음으로 두 손 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날, 모든 고통과 절망에 매었던 마음의 사슬을 단숨에 끊어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나의 유아적 신앙의 의구심은 벗겨져 버렸습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요?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직접 그 창조의 손으로 다시 살려내시는 방법 외에는 죽은 사람 살려낼 방법은 없습니다.(44:1-4) 애굽 왕 바로의 권세아래 포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백성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를 다스리시고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친히 그의 피조세계 가운데 강림하셔서 상식을 뛰어넘는 큰 능력을 행하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성경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 매우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방법으로의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시고 그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원하시며 마침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심으로 최종적인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늘이 땅이 되고 영원이 시간이 되며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방법 외에는 이 피조세계 안에서는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놀랍고 신비합니다.

 

심판으로부터 은혜로!(11:2-4/ 44:3-4)

 

하나님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의가 아닌 전혀 새로운 의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여셨습니다.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야가 모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심을 믿었습니다.(3:12) 그게 정상입니다. 죄인은 심판받고 의인은 상급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가 메시아로 증거 한 그 예수님이 당연히 심판받아야 할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요한이 사람을 예수께 보내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11:2) 예수님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지금 예수님을 통해 목전에서 모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 받는 모습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곧 지금은 마지막 심판 앞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은총의 때이며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목마른 자에게 물을, 성령을 자손들에게,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시는 분임을 선포했습니다.(44:3-4)

심판이 당연합니다. 죄 지은 자는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바르게 되고 죄악과 불의의 세상이 정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마지막 심판 전에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마지막 은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심판만으로는 이미 죄의 포로 된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율법을 행할 힘이 없는 사람은 결코 율법의 의로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2:1)이 어떻게 일어나 걸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먼저 살려내야 하지요. 그래야 똑바로 걷지 않겠습니까? 병든 사람은 먼저 치료해야지요. 그래야 건강하게, 바르게 온전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깨달음에서 회개와 믿음으로!(5:29-42)

 

사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5:30)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죽였던 그 예수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걷고(3)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을 목전에서 보고 있습니다.(5:12) 예수가 지금 부활하셨다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아닙니까? ,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죽인 그 분이 지금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당황한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입을 막았으나 사도들은 계속해서 부활의 주님을 증언했습니다.

왜 사도들은 예수를 죽인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하늘로 오르심을 증언합니까? 그들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5:31)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3:19) 자신의 힘의 한계, 완전한 절망에 이르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앞에 손들지 않습니다. 머리 숙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으십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이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명백하게 보여주심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죄인의 괴수인지를 드러내심으로 회개하며 돌아오도록!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의 이름으로 소망 없는 사람들이 살아나고 치유되며 새롭게 창조되고 새 삶으로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오직 주 예수를 붙들고 살아가도록! 더 이상 살아계신 하나님을 피할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난 자들의 구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파선 직전의 배를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분, 죽음의 파도를 정복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의 손을 잡고 그 분과 함께 파도 위를 걷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입니다.(14:22-33)

 

신앙은 하나의 사건이다. 신앙은 생각하는 것이라기보다 살아 행동하는 무엇이고, 어떤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an event)이다. 신앙은 운동이요, 해프닝(happening)이요, 생명이요, 생의 완성을 향해 가는 생명운동이다. ‘믿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명사가 아니고 동사이다.”(G. Ebeling)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배우거나 깨달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자기본위적 행동과 시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고 예수께서 내 안에 살게 하시는 것,(2:20) 예수님을 우리 삶의 처음과 나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44:6) 그래서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유일하신 구주로 받아들이고(5:31) 그의 통치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그분 자신이 길(the way)이 되십니다.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그 분 자신이 진리(the truth)이십니다. 어떻게 해야 생명을 얻는지를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분 자신이 생명(the life)이십니다.(14:6) 그 분이 가시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 분을 만나는 사람은 죄에서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침노하여 빼앗는가, 은혜로 얻는가?(11:2-15)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입니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선지자(3:1)요 장차오실 그리스도를 친히 보며 증언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지자도 앞선 선지자들로부터 장차 이런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고된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지자도 목전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면서 예언한 선지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큰 자입니다.(11:11) 그는 오신 그분이 은혜의 해(4:18-19)를 전파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지식보다 큰 지식이 없습니다. 주의 피로 씻음 받은 죄인보다 더 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자도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는 큰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어서 말씀하신 바가 매우 난해하고 모호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이 말씀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나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가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취하는 자의 것이라고 이해되어져 왔고 이와는 달리 드물게 하나님의 나라는 값을 지불하거나 대가를 치루지 않고 마치 강도가 강탈하고 적군의 성을 공격하여 빼앗듯이 공로 없이 값없이 은혜로 취하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이외의 다양한 번역본들을 보면 그 의미가 보다 선명하고 일관되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  즉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예수님의 공적 사역 전까지의 유대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행하던 모든 종교 행위는) 힘센 자들(자신에게 율법을 지킬만한 능력이나 힘이 있다고 믿는 자들)은 마치 천국을 힘(자신의 공로)으로 뺏어서 차지하는 곳인 것처럼 해왔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의와 공로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거듭남, 믿음)로 그가 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힘입어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학창시절, 홍해바다가 얌 수프(갈대바다)이기 때문에 얕은 갯벌의 바다를 건넜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을 본적이 있습니다학창시절, 홍해바다가 얌 수프(갈대바다)이기 때문에 얕은 갯벌의 바다를 건넜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때 엄청 감동받았습니다. 내 생각과 딱 맞았습니다.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지난한 위기와 고난 속에서 항상 기적처럼 건져주시고,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늘 새 출발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지금의 제게는 그 이야기가 전능자의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을 겨우 사람의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게 만들려는 얕은 합리적 꼼수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놀랍고 놀랍습니다. 크고 크십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결코 닿을 수 없는 끝없는 신비의 심연이요 제한된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절대 절망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게 놀라우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1)

(NIV)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세례 요한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무력으로(힘으로) 진군해 왔고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이 그것을 잡아놓고 있다(차지하려 했다)

(현대어성경) 세례 요한이 설교하고 세례를 주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공격받아 왔고 공격하는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였다.

(JKB)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요한의 시대로부터 지  금까지 하나님 나라는 폭력을 당하며 폭력배들이 강 제로 그것을 빼앗느니라)

(NASB)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s violence, and violent men take it by force. "세례요한의 때로부터 지  금까지 천국은 폭력에 시달리니 난폭한 자들이 힘으 로 천국을 장악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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