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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설교(4) - "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

관리자 2022-08-17 (수) 15:29 1년전 223  

본문)  왕상17: 8-16, 막 6:30-44, 행 6: 1- 7        


지난 주일에는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출현하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선포와 교육, 교제와 성찬, 기도와 집회들이 형성되면서, 이 지구촌에 교회란 공동체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곳의 주인은 당연히 인간들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오늘은 그 교회 공동체가 이제 이 지상(地上)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체로서, 공식적인 틀을 갖추게 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일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자체의 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인정하듯이, 모든 생명체들은 탄생했다고 완성품이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큰 기쁨이고 보배이지만, 그러나 그 생명체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새 생명은 무엇으로 시작하나? 울면서 부터 시작한다.  


태어난 생명체가 울지 않고 있으면, 그 자체가 큰 위기이다. 울기 시작해야 비로소 부모된 이들은 안도한다. 까닭은 울음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생명체가 자기 요구와 불만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살아있음과 함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기에, 부모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기의 울음이 반가운 것일 뿐이다.  


교회란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정상적인 교회들도 그 시작 과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다. 기쁨도 있지만 아픔도 있고, 그만그만할 때도 있지만 쭉쭉 성장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 교회는 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6장은 원시(초대)교회가 가진 최초의 아픔과 탄식을 드러낸 순간을 전한 내용이고, 그것을 통하여 건강한 교회로 성숙해졌음을 전한 내용이다. 어떤 아픔과 성장이 있었는지,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본다.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나면서, 믿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었다. 그 바람에 집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그곳 본토(本土)인들인 히브리 출신 교우들이 다수였으나, 뜻밖에도 해외 교포들인 디아스포라들도 그곳에 많이 입교해 있었다. 그 바람에 처음 교회에는 이 두 종류의 기류들(히브리파 & 해외파인 헬라파)이 혼재되어 있었다. 물론 지도층인 사도들은 모두 히브리파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왜 그 처음교회에는 그렇게 해외교포들이 많이 유입되어 들어온 것일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오순절에 오신 성령(聖靈)께서, 유독 예루살렘에 체류내지 순례하러 왔던 디아수포라들을 상대하시면서, 우선적으로 끌어안고 접촉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행2:5-12절 참조). 


물론 그때 그런 성령의 일들을 앞장 서 대변한 이들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과 가족들과 갈릴리에서 내려온 무리들 120여명이었다. 이들은 승천하신 예수의 분부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다가, 그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각 나라의 방언들을 말하게 하심에 따라서, 그 헬라 계열의 교포들인 디아수포라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실 큰일들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 놀라움에 모두가 발칵 뒤집혔었다. 


그 때의 놀라움과 충격, 들었던 복음에 대한 영향과 그 열매들이 바로 디아스포라들의 발걸음을 본토 히브리인들보다 앞서서 교회 앞으로 모이게 한 것이다(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구도의 시작이었다). 이런 구도 형성은 제자들 자신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앞장서 일하시는 손길에 붙잡혀, 시작된 교회는 그렇게 히브리파 본토 유대인과 헬라파 해외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한 교회를 이루는 놀라운 에큐메니칼 현장이 되었다. 


그러면 성령께서 이렇게 헬라계열의 유대인들을 처음부터 교회로 불러 모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뭔가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분명히 큰 뜻이 있었기에 그랬다. 그게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유대교는 철저히 유대인-히브리인 중심의 민족주의적 율법종교였다. 그러기에 율법만 가지고도, 유지하기에 크게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온 세상 만민에게까지 펼쳐지게 하려면, 유대인만으로는 안 되었다. 새 구도가 필요했다. 


해외 이방인들과 함께 하고, 해외의 모든 민족들도 참여하는 구도가 절대로 필요했다. 그런데 그 일을 추진하려면, 해외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임이 필요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모습을 갖춘 모임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너무도 배경과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 해결 방안을 찾으신 대상이 바로, 유대인이지만 그러나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교포들-곧 디아스포라였다. 

해외 교포들이 주님의 교회를 시작하는데,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이유들은 많았다. 


-첫째 그들은 율법을 가진 자들이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깊이 알고 살아온 자들이었다. 율법은 복음의 뿌리였기에, 교회의 시작에는 그런 그들이 절대 필요했다. 

-둘째는 그들은 유대인이지만 평생을 해외에서 낳고 자라며 살아온 외국인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어도(헬라어, 로마어 등)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외국 문화에도 익숙했다.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 감정도 없어서 접촉하기에도 아무런 애로사항이 없었다. 그 점은 본토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장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외국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에 딱 적합한 존재들이었다. 

-셋째는 수백 년 나라 잃은 서러움에 젖어 지내온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한(경건한) 신앙심은 본토인들 못잖게 깊고 뜨거웠다(행2:5 참조).   


o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절대 보충하고 채워야만 할 과제가 있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가 율법의 성취로서 오신 진정한 구원자란 믿음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일만 보충되면, 그들은 가장 탁월한 복음의 전사로서, 온 세상에 나가 예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선교사들이 될 핵심 요원들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성령께서는 처음부터 이 디아수포라와 함께 하는 교회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모임도 활발해졌다. 그런데 문제들도 터져 나왔다. 그것은 교리와 신학(복음과 율법)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교우들 섬김과 나눔의 차원에서 나온 행정적(行政的)인 문제들이었다. 다수의 히브리파 교우들 중심의 운영으로 구제하는 일에서, 소수의 헬라파 과부들에 대한 구제가 소홀해진 것이다(1절). 결국 교회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7명의 전담 집사들을 선출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사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선출될 집사들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들을 갖춘 자들이어야만 했다. 


1)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3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곳이어서,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에 눈이 떠야 하는 곳이다. 그러려면 인간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되는 곳이다. 이 점이 바로 교회 일이 세상 일과 그 접근법에서 차이나는 연고이다. 세상에 유능한 자가 교회 일에는 무능할 수 있는 까닭도 여기 있다. 


2)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3절).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유식하고 지식이 많아도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많다. 그에게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마찰과 충돌을 야기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화합과 일치와 평화를 가져온다. 교회는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모임체이다. 하나 되기에는 고도의 지혜가 필요한 곳이다. 성직자는 물론, 장로 집사 등의 직분으로 사람을 섬기려면 지혜는 정말 필수이다. 


3)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3절). 이것은 신뢰 문제에서 믿음을 주는 사람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산은 신뢰에 있다. 불신을 야기하는 인물은 교회 직분자에 절대 적합하지 못하다. 특히 교회 중직자들은 교회의 살림과 재산과 금전과 조직들을 다루기도 한다. 그러기에 교회의 직원은 절대적으로 교우들로부터 신뢰와 칭찬을 받아야 가능하다. 


결국 이 교회 성도들은 필요한 절차에 의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7사람들을 선출하였고,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면서 (안수)집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이름들이 올라 있다. 스데반-빌립-브로고로-나가노르-디몬-바메나-니골라(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였다.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인 디아스포라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교회는 히브리파 사람들인 12사도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인 7집사들로 지도부가 구성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오직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념했고,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분야를 도맡아 하면서, 교회는 평안을 되찾게 되면서, 새롭게 부흥하게 되었다(7절). 이 구조는 요즈음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 및 권사와 집사들의 연합체의 모체가 된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사도들이 히브리파 사람들로서 오직 기도하고 말씀 전파하는 목회적 사역에만 전념하였고, 집사들은 헬라파 유대인 출신들로서 자신들이 보유한 은사들을 가지고, 교회 행정과 봉사와 선교활동을 앞장서 수행하므로서, 교회가 균형 있는 역할분담으로 평안하게 성장해 갈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고, 또 해외 선교의 기반도 닦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스데반과 빌립 집사와 같은 이들은 복음전파자로서도 헌신하다가 순교까지 하는 인물이었고(행7장), 사마리아와 이방인을 향한 선교에까지도 크게 헌신한 인물이기도 했다(행8장). 


o 교회의 생명은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조화(調和-harmony)를 이루는 데에서 나온다. 인원이 많냐 적냐가 문제가 아니다. 구성원들이 다양하고 폭이 넓게 이루어졌느냐가 중요하다. 부자들만 많아도, 고위층만 많아도, 학자들만 많아도, 여자만 많아도, 노인들만 많아도 그런 교회가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성가대원이 4부로 이루어질 때 아름답듯이, 교회도 그 구성원들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서로의 힘이되고 기쁨이 되며, 나눔이 될 수 있다. 


o 그런 측면에서 구약의 사르밧 과부를 통한 엘리야 선지자를 먹여 살리는 이야기(왕상17장)는 매우 큰 의미를 제공한다. 엘리야는 당시의 아합 왕의 추적을 당하면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일용할 양식이 시급한 처지였다. 당시는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징벌을 내리셔서, 3년 6개월간이나 가뭄과 흉년의 험난한 시대였기 때문에, 온 천지는 너무도 핍절(乏絶)한 때를 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이방 여인 사르밧의 한 과부 여인에게로 보내셨다. 


대체 어찌하려는 것일까? 그녀도 슬하의 두 어린 자식들과 함께 가난과 배고픔에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오고 있었다. 그 날도 그는 통에 있는 한 움쿰과 병에 기름 조금으로 떡 한 조각을 마지막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12절). 그런데 그런 그에게 엘리야가 들이닥치면서, ‘물을 달라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10-11절)고 요구한 것이다. 계산이 안 나오는 순간이다. 다 죽자는 것과 흡사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선지자의 말대로 하였더니, 다 살아난 것이다. 그 시련기가 끝날 때까지 그 집안 모두가 건재했다(15-16절).  


이게 바로 교회이다! 배고픈 선지자와 그의 말을 믿고 자신의 마지막 것을 내놓았더니, 선지자도 살게 되고, 자기와 자식들도 살게 되는 곳이 바로 교회란 말이다. 이 신비의 터널을 맛본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 공동체란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 집도 매우 가난한 때였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이 심방오실 때가 제일 좋았다. 우리 엄마가 목사님과 교우들 접대를 위해 내어놓는 식탁이 평소에는 절대 먹어볼 수 없는 풍성하고 좋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지나고 보면, 그 엄마의 가난하지만 그러나 믿음 가득한 손길이 목회자와 교회, 엄마와 자식인 지금의 나까지 살린 것이었다-) 


o 복음서인 막6:30절 이하의 오병이어 이적 기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달랑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것은 한 어린 아이가가 먹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모두를 위하여 주님께 드려졌을 때, 그들 모두는 하늘의 큰 역사를 맛보게 된 것이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였으며, 떡을 먹은 자가 남자만도 5천명이었다’(38-44절 참조). 이 하늘 계산법을 어찌 이 세상이 헤아릴 수 있으랴! 


하지만 이런 기적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는 곳이 바로 예수의 교회 공동체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게 되면서 일으키는 부활 생명과 번영의 은사들을 주목한다면, 우리는 이런 오병이어의 역사가 얼마든지 가능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은사(恩賜) 공동체이다.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을 독점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위하여 내려놓고 제공하게 되면, 그곳에서는 나도 상상할 수 없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남을 체험하게 되는 곳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내 홀로만 움켜쥐고 살면, 결국은 내 가진 것도 빛을 못보고 나도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끝난다. 하지만 내 것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라고, 또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곳에 사용해 주시도록 믿음을 가지고 내어놓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곳에서는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곧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들을 맺는 신비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러려면 나눔의 역사가 활발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의 교회에 충만하길! 


o 우리의 교회는 건강해야 하고, 또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이 살아 역동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가진 은사들을 널리 공유하며, 내가 받은 은사들을 아낌없이 모두를 위해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면 큰 새 역사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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