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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설교(3) - "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 "

관리자 2022-08-17 (수) 15:25 1년전 196  

본문)  신 6:1-5, 요 4:37-42, 행 2:37-47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기도가 모아지면서, 결국 그들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다. 그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거룩하신 영(靈)이자, 신령한 하나님이셨다. 나약한 인간, 부족한 인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고 살아온 낮은 땅의 인간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들어오신 것이다. 이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가 그들 속에 밀고 들어온 일이었다. 그러니 그를 받은 인물들의 삶이 어찌 이전과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가끔 쓰나미 소식을 듣는다. 바닷물이 밑바닥의 지층(地層) 변화를 겪으면서, 그 물결이 치솟으면서, 그 파도가 육지로 몰려와 주변 환경에 일대 큰 타격과 변화를 주는 상황이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그 차원보다 훨씬 더 강하고 심대했다. 쓰나미는 땅 밑바닥에서의 분출에 의한 것이라면, 성령은 하늘에서 비와 불처럼 내린 영의 소낙비였다. 예루살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무리들 모두가 일시에 체험한 새 영의 쓰나미였다. 


이 성령 강림의 목적은 새 세상을 창조하고자 함이었다. 제2의 창세기의 역사를 이 지구촌에 이루고자 함이었다. 파괴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혁과 변화를 통하여 새 역사, 새 인간, 새 세상을 겨냥한 새 창조를 목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새 창조의 모델은 죄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던 나사렛 예수였다. 예수 안에서, 예수로 인하여, 예수와 함께 새 세상을 만들려고 오신 성령이셨다. 


그러기에, 성령과 접촉된 인간이나 현장은 그 변화의 내용과 방향이 분명했다. 바로 ‘예수를 세계로, 세계를 예수께로’였다. 물론 이런 새 역사에 앞장 선 주역은 성령 하나님이셨다. 그것도 흠없이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들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낡고 묵은 인간들인 죄인(罪人)들과 옛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곧 ‘거듭나게 하셔서’ 새 판을 짜시려고 하신 것이었다(요3:5참조).  


그 바람에 성령 받아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피할 수 없이 거치는 과정을 만나게 된다(행2:37-40절 참조). 그 첫 단계가 회개(悔改)이다. 이전의 죄된 삶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죄씻음의 과정을 통과한다. 그런 후에 그 증표(證票)로서 죄 씻고 예수의 사람이 되었음을 인증하는 물세례를 받는다. 이런 변화 과정을 성실하게 밟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준비된 선물을 안겨 주신다. 바로 성령과 구원이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과 자녀로 받아주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 자신에게도 존재론적(存在論的) 변화와 새 영적 각성을 안겨 준다. 곧 자신을 보는 시각에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은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섭리(攝理)와 그의 깊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자신은 더 이상 제 마음대로 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좇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야 되는 책임적(責任的) 존재임을 자각한 것이다(사6:8참조). 

   

상상해 보자. 이렇게 새롭게 자신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가슴은 어떨까? 그의 영혼 속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놀라움(suprise)과 충격(shocking)이 가득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다양한 변화(change)들이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공유한 것이기에, 그들은 다 흩어질 수가 없었다. 다 함께 모이기 시작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예수의 삶과 말씀과 그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세상과는 아주 차원이 다른 <거룩한 교회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오늘 사도행전의 본문은 바로 그렇게 시작된 교회의 첫 출발 모습을 생생히 전한다. 더 살펴보자. 무슨 일들이 펼쳐졌나? 42절은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압축되어 올라있다 :    

 

1. 사도(使徒)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말씀의 선포(說敎)와 교육(敎育)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도들은 예수님과 삶 전체를 함께 하였던 예수의 생생한 증인들이었다는 데에 있다. 즉 예수와 어떻게 만났고, 예수가 어떻게 사셨고, 어떤 말씀과 가르침을 주셨으며, 어떤 이유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나중엔 무덤을 열고 부활까지 하셨으며, 자기들에게 나타나셔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고, 최후에는 승천하며 분부하신 약속들이 무엇인지를 생생히 아는 주역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사도들은 예수를 배우는 데에 아주 핵심적 인물들이었다. 


2. 서로 교제(交際)하였다. 이는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new family)이 생겼음을 말한다. 이제는 주님과 그의 믿음 안에서 만난 이들은 새로운 차원의 형제자매가 된다. 부모 밑에서 함께 태어난 형제자매 못잖게, 중요한 인물들이 된다. 평생을 한배 타기 시작했고, 그것도 사후에 영원한 나라에 까지도 함께 갈 하나님의 가족들이 된 무리들이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한가? 그것도 매주일 함께 만나고, 삶의 애환을 놓고 함께 기도하고 나누며, 서로 힘과 도움을 주는 이웃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성도 여러분은 서로 간에 예수 믿으면서, 주님을 통하여 만난 귀중한 새 가족임을 명심하고 선대하셔야 한다!!  


3. 함께 떡을 떼었다. 아는 새 가족된 이들과 함께 먹는 음식(food)이기도 하다. 곧 주의 성찬(聖餐)에 참여한 것이다. 이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면서, 성도들은 예수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는 생명 가족이 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일을 통하여 참여자 모두는 주님의 지체됨과 함께, 주의 살과 피를 나눈 하늘 가족으로 결속되기 시작한 것이다(고전11:20-21참조). 결국 이 성찬식 강화가 교회 결속의 key가 되기도 하였다. 


4. 오로지 기도(祈禱)에 힘썼다. 기도는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최상의 통신 수단이요 교류(交流)의 창고이다. 기도할 때에 언제나 성령이 활발히 역사하시기에, 교회의 기도는 언제나 작동되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면 당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기사(奇事-wonders)와 표적(表迹-signs)들도 잇따를 수밖에 없다(43절). 성도들의 마음들도 자연스럽게 가족의식에 강화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 특히 어려운 이들을 자기 것으로 돕는 일에도 하나가 된다(45절). 


5. 모임과 집회들도 활성화(活性化)되었다.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모이기를 기뻐하고 또 모이면 예배와 성례와 식탁의 교제들을 통하여 작은 교회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것이다. 교회의 구역이나 기관 등의 소그룹 모임이 활발한 까닭도 그런 성령과 기도의 힘에 기인한 것이다(46절). 


o 그런데 이 말씀에서 더욱 주목받는 부분은 그런 새로운 신앙 공동체, 예수 공동체의 등장이 그들 자신에게만 국한되어 끝나지 아니한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주변의 모든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에까지도 파장을 던져 준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온 세상에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 현상에 대하여 본문 말씀은 이렇게 전한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그렇다. 성령은 받은 이들에게 변화를 안겨 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통하여 또 다른 대상들을 향해서도 새 인간상이나 새 세계를 위한 긍정적인 도전(挑戰)을 한다.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안겨주는 것이다. 그 수혜 대상은 누구일까? 물론 일차는 당연히 함께 사는 가족들일 것이고, 그 다음은 가까이 사는 이웃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함께 변화를 받게 하면서 주를 믿어 구원을 받도록 이끈다. 이게 성령이 이 세상에게 주시는 선순환(善循環)적 구도이다. 


그러면 이제 성령께서 그렇게 변화를 받게 된 인물로 하여금, 누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 첫 대상은 핏줄 가족들이고, 다음은 이웃들이다. 


o 먼저 가족(家族)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믿음의 사람으로 든든히 세우게 하시는 일에 대하여서는, 구약의 신명기가 소개한 ‘쉐마(shema) 이스라엘’을 통하여 확인해 보려고 한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할 것을 명령한다(신6:5).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 사랑의 방법(方法)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命令)과 규례(規例)와 법도(法道)를 듣고 지켜 행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들의 날이 장구(長久)할 것이며 약속의 땅에서 크게 번성(繁盛)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1-3절). 그러면서 모세는 매우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서, 말씀을 실천해야할 대상(對象)들을 지목하였다. 누군가? 


바로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다(2절). 한 집안 계보(系譜)의 기둥들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인 3대(代) 모두가 중단 없이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게 하라고 지목(指目)한 것이다. 이는 곧 자신들의 신앙을, ‘가족 삼대 신앙, 즉 삼겹살 신앙 위에 책임지고 세우라’고 특명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모세는 아버지부터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다음엔 자기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다(6-9절 참조). 


그 바람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삼대(三代) 신앙 가족의 명맥을 잇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전통화시켰다. 각 가정은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이 3살이 되면서부터 율법과 토라에 얽힌 모든 계명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암송과 토론의 방식을 겸하면서, 그들은 말씀교육에 집중하였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배운 말씀 안에서 후손들과도 세대 차이의 병폐에 빠져들지 아니하고, 하나 된 신앙의 대상과 주제인 하나님 사랑의 계명을 흔들림 없이 공유하면서 나라 잃은 오랜 시련도 극복해 내었다. 


곧 나라는 잃어도, 가정들만은 삼대 신앙의 전통을 유지하는 일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보존해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삼대 신앙 전승을 통하여, 2000년의 나라 잃은 설음을 극복해내고, 다시금 시온 예루살렘 땅위에다 잃었던 나라를 지금처럼 복원시킬 수 있었다. 실로 신앙 삼대의 대단한 위용과 힘을 온 세상과 신앙인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신앙 단절의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을 이 삼대 신앙 구축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제시할 수도 있었다. 


여러분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위기를 어디에서 보는가? 우리는 그 원인을 많은 곳에서 찾아내고 있지만, 사실 조금만 우리 가정의 형편만 들여다보아도 금방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조상의 신앙이 자손들에게까지 전승이 제대로 되지 못한 가정들이 태반이기 때문 이다.여기 있는 우리가 머잖아 세상 떠나면, 과연 우리 아들-손자가 내 신앙 상속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그게 궁금하다. 


그 바람에 우리의 교회학교 어린이, 중고등부가 몰락(沒落)해 간다. 부모에게도 ‘내 자식에게 믿음을 전승시키는 것이 내 사명(使命)이다’는 의식조차도 많이 흐려져 있다. 그러니 이제 어찌해야 할까? 진정 다시 매달려 기도해야할 때이다. 내가 섬긴 교회를 내 자식과 손자가 대대로 섬길 수 있도록 해달라며 기도해야할 때이다. 즉 신앙 삼대 전승의 회복 위해, 성령께서 다시금 우리를 새롭게 이끌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을 때이다. 


o 끝으로, 성령은 변화 받은 한 사람을 통하여 온 마을과 이웃 사회까지도 구원해내는 역사도 펼치게 하시는 일을 주목하고자 한다. 바로 요4장39절 이하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5절)의 사례에서 그 장면을 생생히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첫 절에는 ‘그 동네의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절,하)라고 기록된 점을 주목한다.  


이 여인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나? 인간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그 어떤 것에서도 그는 사람들을 움직일 만큼의 위치에 있었던 자가 못되었다. 오히려 세상과 이웃들로부터도 기피당할 만한 인물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랬나? 그녀는 사마리아 이방 여인으로서, 유대인에게는 기피대상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 동네에서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여자였다. 남편을 연이어 다섯이나 두고 상대해 온 소문난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자기 동네를 지나시던 예수님을 대낮에 우물가에서 만났다. 그러면서 예수님과의 뜻밖의 대화가 오가면서, 그녀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과 종교에서의 예배와 장소 문제와 구원에 문제 등에 관련된 여러 주제로 대화하면서, 예수님이 범상치 아니한 오실 메시야(그리스도)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 동네로 급히 가서 자기가 만난 예수를 동네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다(29-30절 참조). 그 바람에 예수님은 그 동네 사람들의 특별 초청을 받아서, 이틀을 더 그 동네에 묵으시면서, 숱한 마을사람들 믿게 하셨다.  


한 여인의 변화가 많은 동네 이웃들까지도 주께로 돌아오게 한 사례이다. 이 일은 예수와 성령이 함께 행하신 일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변화된 인물들이 그런 역할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해 주는 실례라는 점을 우리에게도 공지해 주신 것이다. 


o 새힘교회 여러분, 부디 다시금 깨어 일어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힘은 한 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역사하시는 힘이시다. 그러기에 이제 교회의 변화기를 맞이하면서, 다시금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을 다시 깨우시기를 축복 드린다. 주님은 분명히 도우실 것이다.  


먼저, 예배가 살아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와 교육의 가르침이 어서 뜨겁게 펼쳐지도록 기도하라. 성도들의 교제들도 뜨거워져야 한다. 서로의 필요를 보충하고 서로 위로와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들 교회 안에서 맛볼 수 있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이를 위해 전혀 기도에 힘쓰셔야 한다. 


예배와 모임이 활성화 되도록 간구하시라. 동시에, 개인적 변화와 성장으로, 우리 가정들이 반드시 신앙 삼대를 확립하고, 이웃들에게까지 생명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힘써 매달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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