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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9-04-04 (목) 11:18 2개월전 80  

본문) 요13:31-35, 신6:1-15, 요일 3:11-24 

 

직전 주일인 사순절 넷째 주일에(3.31), 필자는 <지금은 적패 청산에 집중할 때>라는 증언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행보에 담긴, 지상 사역에서의 마지막 두 가지 큰 마무리 작업들을 다음과 같은 측면으로 소개하였다.  <말씀목회연구원. 홈페이지/ 말씀올리기에서>

 

첫째는 오직 당신만이 친히 해결하고 가셔야할 부분이 있고, 둘째는 당신 이후에 당신의 일들을 계승할 제자들이 이 어두운 세상의 적패들과 싸우면서, 주님의 구원 사역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길잡이인 로드맵(Road Map)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마침 오늘의 세 본문들은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그 두 가지 내용을 더 상술(詳述)하겠다.  

 

1) 첫째는 오직 당신 자신만이 친히 해결해 주시고 가셔야만 할 부분(몫)이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당신이 받은 거룩한 소명(召命)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오직 당신 스스로가 아버지와 온 세상에 보여 주셔야만했던 그 부분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세례 요한이 증언했던 대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어린 양의 대속(代贖)적 사역을 감당하시는 일’이었다(요1:29). 그 사역을 통하여 그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참 모습을 보여 주시는 일이었다. 그것은 절대 중요한 일인데,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 

 

① 그의 십자가 고난(苦難)은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구원하고자 하셨는지를 실제적으로 입증할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요3:16). 즉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유일한 독생자 아들까지 십자가에 화목을 위한 제물(祭物)로 내어주신 분이시다’는 절대 가치의 증언들을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物證)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16)는 증언은 영원한 진리와 힘이 되었다!

 

② 그의 십자가 고난은 세상 신관(神觀)을 새롭게 정립한 일, 곧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세상에서 살아계신 유일한 참 신(神)’이심을 선포하게 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상의 신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모두가 가상적이고 부분적이며, 두려움으로 군림하는 신들이었다. 인간과의 사랑을 맺은 신은 없다. 특히 그 어떤 신도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인간이 되고 고난을 당하며 그들을 살리고자 자신을 죽음의 제물로 희생시키신 신은 없었다. 

 

그런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당신의 외아들을 최악의 험지(險地)인 지구촌에 내려 보내셔서, 스스로 인간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취함으로서, 기존의 신(神)들을 완전히 가짜로 돌려세우시고, 오직 여호와 당신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입증하셨다. 바로 그 점에서 이단들이 예수의 성찬과 십자가의 진리를 실현 불가능한 것을 말하는 이단이라고 공격하기도 했지만, 도리어 그들 스스로가 떨어져 사라졌고, 섬김의 예수 공동체만 살아서 더욱 빛을 발해왔다. 

 

③ 삼위일체 하나님 되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에게 보여 주신, 사랑과 영광스러운 모습이 이 땅에 남은 자들에게는 미칠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즉 아들은 아버지에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을 올려드렸고, 아버지는 그런 죽임 당한 신실한 아들을 사망에서 다시 살리시는 등의 극적 모습을 온 세상에 생생히 보여 주심으로서, 그들 믿고 따르는 남은 자들에게도 ‘죽어도 사는 삶이 되는 구원과 영생의 로드맵’을 친히 제시해 주신 것이다. 

 

2) 그러기에 예수의 남은 제자와 교회를 위한 로드 맵(Road Map) 제시는 당신의 삶과 분리되어 마치 비법(祕法)처럼 따로 준비하셔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남은 자들에게도 당신들처럼 ‘서로 사랑하여,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게 하면 되는 것’(요13:35)으로, 당신 이후의 제자들이 생명과 승리의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는 길잡이로 가름했다. 

 

예수님은 평소 ‘계명의 첫째를 물어온 사람’에게, 쉐마(신6:4)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셨는데, 내용은 ‘마음(heart)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뜻(mind)을 다하고 힘(strength)을 다하는 사랑’이었다(막12:29-30참조). 쉐마에서의 지시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의 차이는 사랑에는 ‘목숨을 다하여야 한다’는 점을 추가하셨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의 사랑이어야 그런 하나님 사랑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애매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호한’ 하나님의 사랑론은 사라지게 되었다. 투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 사랑의 참 모범을 보여 주실 주인공이 등장하셨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 그가 말과 행실이 달랐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과는 달리, 당신이 전하셨던 그 ‘목숨을 다한 사랑’의 실체를 십자가에서 친히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그의 목숨을 건 사랑과 그 결과를 확인하고 배우면 됐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new Command)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과거 율법에서 부여된 조건적(條件的) 성격을 가진 계명의 차원(레19:18참조)을 넘어선, 매우 새 차원의 주도적(主導的) 사랑을 요구하셨다. 그 계명이 바로 제자들에게는 세상과 자신을 이기고, 영생의 삶을 견인(牽引)해 나아갈 핵심 로드 맵이 된 것이다. 그렇다. 답은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서 본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실천해 가는 것이다-!!! 답은 역시 하나님 사랑, 서로 사랑함에 있었다!

 

오늘 세 본문들은 예수님의 그 지침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야하는지를 증언한다. 복음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총론적인 내용들을 말하고 있으며, 신명기서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세부적 지침을 맡고 있으며, 서신서는 이웃 사랑 부분을 맡아서 말씀한다. 

 

복음서를 다시 보자

 

본문은 제자 가룟 유다의 퇴장(退場)이 열어준 새 국면을 전한다. 주님은 유다의 배신이 당신에게는 고난(苦難)과 영광(榮光)에 이르는 문이 열리게 되는 때임을 예수께서는 알고 계셨다. 하나님의 때인 카이로스가 마치 퍼팩트스톰(perfect storm)과 같이 임하고 있음을 보신 것이다. 아버지께는 아들의 복종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때이며,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부활의 주가 되는 영광을 베푸시는 때이고, 아들의 수난은 이 땅의 죄악의 저주에 짓눌려 살아온 수많은 영혼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을 부여하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을 보셨다. 즉, 당신의 대속적 수난이 지구촌의 운명을 새롭게 하는 방향 전환의 때임을 보신 것이었다! 

 

1) 제자 유다의 퇴장은 하늘 아버지와 아들 되신 예수님이 상호 영광과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인류 구원을 이루는 특별한 때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부여된 십자가의 멍에를 지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찬란하게 비치게 하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죽음에 떨어진 예수를 다시 일으키시고 하늘로 다시 올리시는 행위를 통하여 예수를 위대하게 하시고, 또 구원자로서의 그의 권능을 우주적으로 실현되게 하셨다(31절). 

 

2) 남은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유언이자 새 계명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당신이 아버지와의 사랑을 통하여 보여 주신 것같이, 그들도 서로 ‘목숨을 다하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은 유대교 전통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조건 없이 내가 먼저 사랑하는 아가폐’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고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며 하나님나라의 문을 열어가야 할 공동체가 되어야만 했다(34-35절). 그 바람에, 지구촌에는 ‘모이면 먼저 사랑부터 하는 티테티오스’ 사랑 공동체가 존속하였다-!

 

☞ 결국,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라는 행동지침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제자들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Identity)가 되었다. 다른 것으로는 세상을 이기거나 감당할 수 없고, 오직 사랑하는 삶만이 새로운 형태의 삶을 열어가게 하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할 수 있어서 불의한 세상의 장벽을 뚫고 승리를 견인할 능력임을 밝히신 것이다.  

 

구약의 말씀을 다시 보자

 

성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이스라엘 백성의 교육 헌장인 쉐마(Shema)를 보자. 가장 먼저 주신 계명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이었다. 그 실천 현장은 신앙 삼대(三代-아버지-아들-손자)를 기반으로 하는 가정의 신앙교육에서 였다(2절). 강조한 이유는 그들을 장구(長久)하게 하고, 복을 받아서 크게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었다(2-3절). 그 결과도 놀라웠다. 가정 중심의 이런 쉐마 교육은 아침저녁으로 가족들의 신앙고백으로 살아 이어지면서, 수천 년 간의 나라 없는 민족적 시련 속에서도 자신들을 지탱하게 하면서, 드디어는 지금처럼 다시 일어나 온 세상에 탁월함을 드러내는 족속이 된 것이다. 그 체계적인 내용을 다시 보자. 

 

1) 대체 하나님이 누구시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인가? 그것은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유일(唯一)한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죄인인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신다운 신이 오직 여호와뿐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오직 여호와만 사랑해야 했다(4-5절). 나중에 예수께서는 그런 강조 속에 ‘목숨을 다하여’를 추가하셨는데(막12:29-30), 십자가에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시며 그 하나님 사랑을 친히 실천하기도 하셨다! 

 

2) 사랑할 이유들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10-11절). 그들을 노예 된 애굽에서 불러내어 그곳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로 인도하신 구원자이시다는 점 이외에도(12절), 이스라엘은 그 여호와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들이 많았다. 예컨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고,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해 마시게 하시며,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들도 차지하여 그들이 배불리 먹게 하신 분’이 여호와이었기에, 이스라엘은 오직 그 분만 사랑해야만 했다. 

 

3) 여호와 사랑은 (명령들을) 다음과 같은 강한 반복적 훈련으로 체질화시켜야 가능했다(6-9절).

①먼저, 자신의 마음(heart)에 새겨야 한다(6절). 

②자녀들에게는, 부지런히 가르치며, 자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이 말씀을 강론한다(7절). 

③기록물로 만들어, 손목에는 기호로, 미간에는 표로,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부착한다(8-9절)

 

4) 가장 조심할 일은, 여호와의 그런 은혜의 행위들을 ‘기억하며 잊지 않는 일’이다(12절). 이것에 걸리면,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부정되고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특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어긴 것이기에(13절), 질투하시는 여호와의 벌을 피할 수 없다(14-15절). 

 

서신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이 글을 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친 제자였다. 그가 모시던 나사렛 예수가 죽기까지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지를 생생히 목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의 공동체에게 서로 사랑하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새 계명임과 그 계명을 지키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요 성령의 보증까지 받는 자임을 전한 사람이었다(23-24절). 

 

게다가 당시의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가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거부하고 육체의 허무함을 강조하면서,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몸의 헌신과 선행의 가치를 무시하였기에,  그를 이겨낼 확고한 진리로서의 ‘서로 사랑하라’(11절)는 메시지는 교회의 핵심적 계명이었다. 

 

1) 요한은 세상에는 가인처럼(창3:8),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벨과 같은 친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는 세력도 있음을 상기(想起)시킨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의로운 자(형제)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에 빠져 있어서, 영생(永生)이 아닌 사망(死亡)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12-15절).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자기들을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13절). 

 

2)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기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고, 우리도 형제들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알고 살아야할 사람이다(16절). 그 사랑의 실천은 곧 그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갔음을 입증하는 일도 된다(14.상). 형제 사랑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물질을 동원한 행함과 진실함으로도 되어야 한다(17-18절).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이 진리에 속해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신앙 양심에도 부끄럽지 않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함을 얻게 되면서, 우리가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받게 되는 복을 누린다(19-22절). 결코 우리는 이웃 사랑에 실패한 저 부자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막10:22-참조). 

 

결론은 이렇다

 

사순절이 깊어졌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음성을 들었는가? 정직하고 겸손하자. 하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나 죄인인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서, 하나의 뚜렷한 특성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바로 둘 모두가, ‘목숨을 다해서’ 행하신 사랑이었다! 그러기에, 이제 나의 하나님 사랑과 서로 사랑에도 질(質)이 달라져야 하겠다. 

 

그의 ‘목숨 내 준 사랑’ 때문에 나는 사랑을 배웠고, 진리와 생명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하늘 백성이며 주님의 제자가 되었나? 핑계나 말과 혀로서 때울 때가 아니다. 행함과 진실로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으로 답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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