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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환경주일

관리자 2026-06-02 (화) 14:51 12일전 87  

본문) 행9 : 1–19, 렘1 : 4-10, 마9 : 35-10:1 


오늘은 강림 후 둘째 주일이다. 본격적인 여름의 문을 여는 6월 첫 주일이기도 하다. 더위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특히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아서 크게 걱정스럽다. 이런 중에 우리나라는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중이다. 부디 건강하고 신실한 일꾼들이 선출되어, 우리나라가 더욱 부흥기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대외적으로 우리나라가 소개될 때마다 뒤따르는 소리가 있다. 곧 ‘6.25 전쟁으로 무참히 폐허가 되었던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그 모든 불명예를 떨쳐버리고 공히 선진국 반열에 오른 유일한 나라이다. 실로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런 평가는 분명히 듣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처한 국가적 환경은 확실히 불안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이념(理念)논쟁이 기승하고 있다. 6월이면 남북전쟁으로 분단이 이루어진 때라서, 더욱 이 점이 아프게 다가온다. 자기와 조금만 달라도, ‘좌익이네 종북이네 빨갱이네’ 라며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일을 일삼고 있는 극우적 정치 집단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안의 내부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미워하며 패거리 싸움할 환경으로 얽혀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특히 치안이나 생명 존중 의식도 그리 높지 못하다. 


곳곳에서 끝없이 안전사고도 빈발한다. 이번에 서소문쪽 붕괴 사고도 그렇고, 삼성역 지하광장 공사의 철근 누락 공사도 그렇다. 쉼 없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와 폭발 사고도 그렇다. 언제 어느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구조물이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갈지 예측할 수 없다. 참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특히 이런 불안정한 여건에서 생존하고 있는 백성들을 교회는 어떻게 돌보고 인도해야 할 것인가? 세상을 향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내놓아야 하나? 


이런 때 우리 한국교회는 오늘을 환경 주일로 맞이한다. 그러면 어떤 내용의 환경이어야 하나?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 본문 내용을 통하여, 주어진 객관화된 환경을 상대하는 측면에서 맞이하기보다는, 그 환경을 건강하게 보살피고 살려내어야 할 주체자로서의 우리 입장은 이제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오늘의 성령강림 후 둘째 주일의 세 본문의 핵심 주제는 성령 받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자들이요 동시에 세상 현장에로 파송(派送)된 하나님 나라의 전사(戰士)들이라는 점이다. 곧 소명과 파송이라는 강한 의식 속에서, 오늘의 환경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 나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며 세상 속에서 할 일들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신서인 사도행전은 기독교 최대의 해외선교사인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서 그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고, 그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도록 파송을 받게 된 과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신을 박해하던 자 사울을 주의 깊게 살피셔서, 그를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선택하시는 주님의 특별하신 손길을 주목하게 된다. 여기서는 우리의 일반적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어서 역사를 이끄시는 그 분의 손길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런 예수의 선택에 가장 충격과 고통을 경험한 이는 아무래도 사울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상상을 뛰어넘을 예수의 선택 행위와 그의 품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받아들이고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외치게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자기 것이 깨어지고 뭉개지며 새롭게 거듭나는 몸부림의 산실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기도 삼일은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생산되는 기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구약의 내용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소명을 받게 된 기사(記事)이다. 그도 역시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압도해 오신 여호와의 선택 의지 앞에 결국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범죄로 인하여 망하게 된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보면서, 눈물의 예언을 해야만 했던 선지자의 소명의 길에서, 우리도 가시밭길과 같은 잘못된 환경의 늪에 빠진 세상을 향하여 어떤 마음과 자세로 상대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 


복음서는 소명자의 길에 들어선 주의 일꾼들이 걸머져야 할 멍에들이 무엇인지, 곧 지상의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교회들이 감당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압축하여 소개한 내용이다. 이는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내용으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치유하시는 일들이었다. 그런 중에도 주님은 끊임없이 당신과 함께 할 일꾼을 찾으셨다. 그 멍에는 무겁고 힘들기에, 자원하는 자들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며 구해야만 했다. 


우리는 바로 그 소명의 자리와 파송의 자리에 부름을 받았고, 세움을 받은 자들이다. 오늘의 말씀들을 통하여 다시금 정신 차려, 우리가 받은 하늘 멍에를 더 잘 감당하는 자들로 나가자. 


1. 서신서 / 행9:1-19 /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


예수님은 왜 하필 그 사람을 택하셨나? 평소 당신을 적극 따르고 사랑하며 복종해 오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히 박해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해를 끼쳤던 바로 그 사울을 말이다(5, 13절 참조). 그때 만일 예수께서 제자들 중의 한 사람들이나 아주 경건하게 살고 있던 한 인물을 찾아가셔서 그를 택하셨다면, 이런 질문은 전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탈상식적인 파격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묵상의 자료를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를 위한 그릇을 찾으셨기 때문이다(15절). 그릇은 대게 용도가 있게 만들어진다. 그러기에 주인의 뜻이 중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 이방인은 물론,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 그리고 임금들과 같은 고위층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런 폭넓은 부류들을 위한 선교의 역량자를 찾으셔야만 했다. 


언어와 문화의 역량이나, 율법과 종교의 감수성이나, 말씀 실천을 향한 열정 등에서 강하게 일할 그릇이 필요했다. 그 점에서 하나님은 박해자인 사울을 아주 적합한 존재라고 보신 것이다. 다만 그에게 예수의 인격과 성령의 능력만 접목되기만 하면, 다른 웬만한 그릇(인물)보다 훨씬 탁월한 적합자가 될 것으로 보신 것이다. 그의 예수에 대한 적개심과 반대는 예수께서 직접 만나셔서 오해를 풀어주시고 돌려세워 주시면, 완전히 해결될 것을 전제로 해서 그랬다. 그렇다. 소명과 파송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필요에 아래서 판단되고 결정된다. 


1) 그런 큰 뜻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울을 찾으셨다. 그때의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해서 데려가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마음으로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었다(1-2절).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울 찾으시는 일은, 마치 원수 같은 자를 만나고자 찾으신 그 희한한 모습이었다. 


2) 그게 하늘의 빛된 인물과 땅의 존재가 보여준 실상이다(3절). 땅의 인물인 사울은 자기와 맞지 않은 대상은 전혀 용납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워하고 증오하며 제거하려 하였다. 반면에 하늘의 존재 예수님은 그런 공격적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그가 가진 가능성과 장점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시면서, 그런 그를 고쳐서 귀하게 쓰실 방법을 마련하시고 찾으신 것이다. 


3) 두 인물의 대면은 금방 결말이 났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었다. 자기를 부르는 음성에, ‘주여 누구십니까’라 묻자. 예수는 즉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고 답하셨다. 사울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기를 밝히는 계시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5절). 그것도 자신을 통하여 수난을 당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접한 것이다. 그의 온 맘과 영혼으로 당신을 밝히시는 하나님을 뵌 것이다. 당연히 온몸이 굳었고, 눈도 귀도 마비가 되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서 다메섹으로 끌려가서,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로 기도로 지냈다. 


4) 주께서는 그런 사울에게 당신의 제자인 아나니아를 보내셨다. 당신의 뜻과 메시지를 그에게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9-16절). 주님이 당신의 대리인을 사울에게 보내신 것은, 사울은 아직 주님을 직접 상대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에서 그런 조치를 취하셨다고 보인다. 하지만 미리 자기를 찾을 사람이 올 것에 대한 신호는 주셨기에, 그는 대비할 수 있었다(12절). 


5) 주께서 밝히신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나? 당신의 이름을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고 세상의 왕들에게까지도 전하게 하시려고 택하신 ‘주님의 그릇’(chosen instrument)이었다(15절). 이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정도의 고난을 받게 될 자임을 계시하신 것이다(16절). 그런 주의 뜻을 헤아린 아나니아는 직가의 유다의 집에 머물러 있는 사울을 찾아서, ‘형제 사울아’라며 그를 따뜻하게 영접했다(17절). 


6) 자신은 그가 만난 예수께서 보내서 온 자임을 밝히면서, ‘나를 너에게 보내어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며 안수했다. 그러자 즉시 눈이 밝아지면서 세례까지 받았다. 그러자 음식도 먹고 강건해지면서, 비로서 그는 예수의 소명자와 파송자로 새출발하게 된다.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증언은 유대교도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면서, 그를 죽이려 들자, 광주리 도피까지 해야 했다(20-25절 참조). 첫 증언 때부터 고난이 그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울에게는 실로 전혀 다른 인생의 길목에 들어섰다. 전적으로 예수와 그의 복음 증언에 따른 소명 때문이었다. 


2. 예언서 / 렘1:4-10 /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바울의 그런 하늘이 주신 소명에 따른 시련과 환난을 끌어안고 살게 된 일은, 그보다도 훨씬 이전의 사람이었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서도 겪었던 일이었음을 구약의 본문이 알려준다. 


그는 베냐민 계열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유다 왕 요시아의 사망 후, 급격히 다가온 나라의 위기에 여호와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았다(1:2-3 참조). 이사야와 에스겔과 유사한 방식인데, 예레미야는 여기서 그 부르심에 대하여 ’나는 너무 어려서 말할 줄도 모른다‘라며 부르심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6절). 마치 모세의 경우와 솔로몬의 경우처럼, 자신의 어림과 부족을 내세운 것이다(출4:10, 왕상3:7 참조).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부분이 전혀 문제 될 수 없었다. 당신은 몸소 자기가 세운 사자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딤전4:12 참조). 


이러한 여호와의 예레미야에 대한 선택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이었다. 그의 모태 이전부터였고, 성별(聖別)은 모태에서 이루어졌으며, 세상에서는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활동하도록 예정도 하셨기 때문이었다(5절).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의 권세를 주셔서,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그를 세워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는 당신의 능력 있는 종이 되게 하셨다(9-10절). 


그런 그였기에, 그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는 두려워할 필요도, 자신의 구원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8절). 오직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대로만 외치고 선포하면 되었다! 곧 소명자와 파송된 자가 철저히 대비할 업무 사항은 자신의 주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에 집중할 일이다. 그것은 한치라도 자기의 주장과 뜻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3. 복음서 / 마9:35-10:1 /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복음서의 내용은 그런 소명자와 파송된 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중에서, 주로 어떤 내용의 일들을 할 것인지를 확인해 주는 내용이다. 그 완벽한 모델은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지상의 사역을 통하여 보여주신 활동들이다. 핵심적 틀은 세 가지였다. 곧 가르치시며 선포하시고 고치시는 일들이었다(35절). 덧붙일 일은, ’함께 그 일들을 할 동역자들이 필요하오니, 더 보내 주십사‘ 라고 주인인 하나님께 간구하게 하신 일이다(37-38절). 


1) 가르치셨다(Teaching). 주로 유대교 회당을 이용하셨고, 하나님과 당신의 뜻을 전하고 소개하며 이해하여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 


2) 전파하셨다(Preaching). 이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福音)을 널리 전하고 선포하는 일을 하신 것이다. 구원에 직결되는 내용들이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선포되었다. 


3) 고치셨다(Healing). 물론 육체의 모든 병과 연약한 것을 원상복구 시키는 치유 사역을 행하셨다. 동시에 세상의 잘못된 불의와 질서와 악한 행동과 관습에도 올바른 분별력을 행사하여 예와 아니요를 통하여, 올바르게 응답하게 하셨다(마5:37 참조). 


o 오늘은 환경주일이다. 건강하고 건실한 환경보전은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좋은 환경은 거져 얻지 못한다. 어둠과 악한 권세가 이 세상을 언제나 더럽고 추하며 혼란스럽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를 바로 잡아 줄 환경 지키미가 절대 필요하다. 세 가지 무기가 그 손에 들려있어야 한다. 곧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일에 소명감과 파송자 의식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대체로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병원 등이 그 기능들을 역할 분담한다. 가정과 부모와 학교는 가르치는 일을, 병원은 모든 질병을 고치는 일을, 그리고 인간의 영혼 구원과 건강한 마음과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는 교회의 일로 분담한다. 결국 핵심적 요건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런 역할을 수행할 소명자와 파송자가 되게 하셨다는 의식을 갖고 사느냐 아니냐의 여부다. 성령께서 이 말씀을 청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그 은혜와 축복을 부여해 주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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