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11:1-18, 막7:24-30, 슥8:18-23
오늘은 강림 후 셋째 주일이다. 날씨는 이미 완연한 여름에 접어들었고, 나라는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지역 일꾼들을 선출하였다. 당선한 이들 모두는 초심을 잊지 말고, 전심을 다하여 주민들에게 약속한 공약들을 잘 실천하는 좋은 청지기들이 되기를 빈다. 그래서 나라와 주민의 삶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더욱 풍요로워 지기를 소망한다.
때맞춰서, 이 대통령은 총리를 새 인물로 선택하여 발표했다. 여성이면서, AI 전문가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었던 한성숙씨를 지명한 것이다. 그가 이제 국회의 청문회 과정을 잘 마친다면, 그는 20년 만에 한명숙씨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총리가 된다.
대통령의 관심사는 이제 우리나라가 AI 강국이 되면서, 그로 인하여 반도체 호황과 수출 증가로 인한 한국경제가 누리게 될 초과 이익들을, 누가 책임 있게 기업인만이 아니라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되도록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대통령이 이 한성숙씨를 적임자로 보고, 지명한 듯하다. 발상이 신선하다. 동시에 모험적이기도 하다.
정치계가 대부분 남성적 지도력이 일색이었는데, 이번엔 모성적 지도력이 선택된 것이다. 보다 치밀하고, 따뜻한 보살핌의 심성으로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반도체와 AI를 통하여 내려주신 천운의 선물들과 그 혜택들을, 독점이 아닌 나눔으로, 온 백성들에게까지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백성의 엄마가 되길 빈다. 목회자로서의 나는 그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잘 부응하여, 마치 성경에 나온 요셉 총리와 같은 인물로 역할 하기를 기대한다.
마침 오늘은 강림 후 셋째 주일로써, 총회에서는 오늘을 총회 선교주일로 지킨다. 그것은 1953. 6.10에 개최된 제38회 장로교 총회로부터 출애굽 하여, 우리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출범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전국교회는 오늘 주일을 기장 총회의 73회 생일(生日) 주일로 지키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내세운 선언 중 대표적인 것은 이것이다. 곧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한다. --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하려는 세계교회 정신인 에큐메니칼 정신에 철저하고자 한다’는 내용들이다.
바리새주의는 한국교회의 아주 오랜 병폐이다. 문자주의를 근간으로 하면서, 오직 자기들 외에는 모두를 죄인으로 보는 입장이다. 의인도 못되면서, 자기들만 의인인 양 유아독존으로 교회를 지켜온 세력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를 외치던 예수께서도 그들 바리새인들에게 미움과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까지 당하셨다. 우리 교단은 성서 비평학을 허용하였다고 이단이라 정죄한 장로교 보수측 인사들에 의해서 당시 김재준 목사를 제명 처분까지 했었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득세하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에서도 유신진화론을 주장한 인사가 반(反)창조론을 주장한 사람이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지목되어 기독교의 후진성을 노정하는 사례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신앙의 조화와 균형을 찾지 못하고, 오직 문자주의의 구원론에 사로잡혀 있는 그 단체의 바리새주의적 세력들이 여전히 교회의 교권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폐쇄성만을 입증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들만 의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자기와 다른 의식과 생각과 사고를 가진 자들은 모두 가짜요 잘못된 자들이며 배척되어야 한다며 고집하는 것이다. 실로 극우적 경향을 강하게 가진 자들이다. 그 바람에 품이 좁고, 생각이 협소하며, 대화가 잘되지 못한다. 그게 바리새인들이 몸담고 있던 모세의 율법 종교인 유대교였다. 그런 흐름은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이스라엘에서도 견지되고 있다. 그들의 완고한 폭력성과 배타성이 말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예수의 성령은 그런 기득권자인 유대교의 바리새 주의를 벗어나서,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사랑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를 범세계적으로 창설하고자 하셨다. 그 시작이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강림하시면서였다. 오셔서 유대교와 율법 종교의 완고함을 무너뜨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새 인간, 새 세계, 새 문화, 새 언어, 새 삶을 시작할 집단을 창설하였다.
서신서인 사도행전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라는 로마 장교인 이방인과 교제한 일을 두고, 동료들인 예루살렘 교회의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간 점을 문제 삼아 비난을 듣게 되자, 그 일에 대하여 변명하는 대목이다. 요지는 주의 성령께서 자기를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신 까닭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며 증언하자. 그 말에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허락하셨다‘고 고백하며,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이방인에게 구원은 없다‘라는 율법적 인식을 내려놓게 된다.
구약의 스가랴 예언서는 세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이 그 지역 이방인들에게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진리와 화평 속에서 잘 보여줌으로서, 그들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기들도 유대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고 싶어서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를 찾고 은혜를 구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내용이다. 이 놀라운 일 역시 성령의 역사로 인함인데, 이런 예언이 바로 고넬료의 사례를 통해서 입증하게 된 것이다.
복음서는 이런 이방인 선교는 바로 예수님 자신부터 시작된 일이었음을 보여준 구체적인 사례이다. 주님은 이방인의 땅 두로의 한 집에서 헬라 여자인 수로보니게 족속의 한 여인의 방문을 받고, 결국 그녀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이셔서,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이방인이나 가련한 자나 일체의 인간 차별이 없이, 오직 그의 믿음만을 보고, 자비를 베푸셨는데, 바로 이 모습이 나중에 모든 선교사들의 모델과 지침이 된 것이다. 주님은 그 상대자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부자냐 가난한 자냐, 남자냐 여자냐가 전혀 장벽이 아니었다. 그 아무나 오직 믿음으로 나오는 자라면, 그 누구에게도 자비와 은혜를 배푸셨다.
1. 서신서 / 행11:1-18 / “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 심방한 일을 두고, 마치 큰 범죄를 한 것처럼 동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힐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당시의 유대인들의 이방인들을 향한 분위기는 아주 부정적이었음을 충분히 알게 해 준 대목이다. 물론 베드로 자신도 그런 환경을 잘 알았기에, 성령께서 보여주시며 명령하신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나는 것들‘로 대변되는 이방인들에게 찾아가는 일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였다(8-8절).
하지만 이미 성령의 입장은 분명하고도 단호했다. 이제는 이방인도, 특히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가족과 함께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이방인(2절), 그리고 의인이요 유대인까지도 칭찬하는 이방인 정도는(22절) 유대인과 함께 당연히 구원을 받아야 하고, 나아가 세계 만민들도 차별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엄청난 새로운 명제를 진리로 정착하게 하려고, 성령이 그때 압도적이고 입체적인 사역들을 이렇게 펼쳐 주셨다 :
첫째는 얼마 전 앞서 성령 받은 베드로와 그의 신앙 공동체가 먼저 둘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상호 하나가 될 수 있는 해결의 문을 열어주어야만 하도록 조치하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욥바에 머물던 베드로를 앞장세우셨다(4-12절). 그에게 환상으로 보자기 계시를 세 번이나 보여주시면서, 그 안에 담긴 ’각종 짐승을 잡아먹으라‘ 지시하였다. 그 일은 율법 사항에 위배 되는 것을 알던 베드로가 거부하며 나오자, 성령은 매우 단호히 지시하셨다. -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俗)되다고 하지 말라‘(9절).
둘째는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천사를 보내어, 사도 베드로를 집으로 초청하여 그에게 구원받을 말씀을 받도록 대비하게 하셨다(11-14절). 그래서 고넬료가 측근인 세 사람을 욥바의 베드로에게 보내어 자기 집에로의 초청 의사를 전하게 해 주시고 그 만남이 성사되게 이끄셨다. 동시에 성령은 백부장 고넬료의 하수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온 일을 베드로에게 보이시면서도 주저하는 베드로에게 명령하셨다. - ’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11-12절).
셋째는 베드로가 예수와 그의 구원 사역을 증언하자, 성령은 얼마 전 사도들과 예수의 사람들이 함께 받았던 오순절 성령의 그 강력한 체험의 선물을 그곳에 모여 말씀을 경청하던 고넬료와 가족과 친구 일행 모두에게도 함께 똑같이 받게 하셨다(15-17절). 이런 놀라운 모습을 직접 목격한 베드로와 그 일행들은 그때 무엇을 깨달았을까? ‘주의 은혜와 성령의 임재의 대상에는 이제 아무런 차별이나 장벽은 없구나‘.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는 이제 모두가 하나로구나’라는 놀랍고도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베드로 사도의 생생한 체험적이면서도 논리정연한 성령의 구원 역사에 관한 증언은 그 직전까지도 반감과 비판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많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의식의 전환을 안겨 주었다. 아니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성령의 명백한 뜻, 곧 자기들에게 오순절에 불과 진리로 세례를 주신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합의와 공감을 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방인을 어떤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판단도 하게 해 주었다.
그 자리는 결국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거스르지 않고 잠잠하면서, 거룩한 새 질서를 안겨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다(18절). 공적인 대외 이방인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으며, 폐쇄적인 율법 종교인 유대교와 바리새인과의 완전히 차별화된 그리스도인이 출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사건이 우리 기장 38 총회를 가능하게 한 현장이었다!
2. 구약 / 슥8:18-23 / “ --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
본문 스가랴 예언서는 나라의 멸망으로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 영적으로 부여된 소명(召命)이 있음을 전한다. 곧 그들의 살고 있는 이방 땅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절기를 중요시하며 금식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부여하신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선물을 받아서, 그곳에서의 삶을 원망과 불평이 아닌 진리(truth)와 화평(peace)을 쫓아 살아가는 일이었다(18-19절). 이는 서선서의 고넬료의 삶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면, 성령이 일해주신다.
1)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몰려든다. 마치 꽃의 향기에 벌과 나비가 몰리는 것처럼이다(20절).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그와 함께 한 연고이다. 자연 선교가 진행된다.
2) 사람들은 그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가 믿는 신, 곧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더욱 주목하면서, 자기들도 그렇게 되기를 열망한다(21절). 강자냐 약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여호와를 자신들도 의지하고 은혜 입기를 원한다(22절).
3) 하나님을 믿는 자의 힘을 입증하는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 부러워하고, 그의 인도함을 의지하려 하며, 그를 통해서 자기도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싶어한다(23절).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백성들, 특히 진리와 의에 목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저 고넬료 가족처럼,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됨을 알린다.
3. 복음서 / 막7:24-30 / “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
본문은 예수 앞에는 인종도, 성별도, 빈부도, 그 어떤 세상의 인간적 조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오직 예수를 향한 신실하고도 진정한 믿음이 있느냐 여부만 조건이 될 뿐임을 밝혀준 내용이다. 본문에 나타난 여인,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 때문에, 자신의 인생도 한없이 망가져 있던 불쌍한 여인이 끝내 어떻게 그 무섭고 무거운 짐을 떨쳐버리고 재기하게 되었는지를 소개한 승리담(勝利談)이다.
이 여인의 처지는 그야말로 완전 절망의 늪에 빠져 살던 수준이었다. 귀신 들린 딸로 인해 항상 시달렸지,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지, 여자이지, 가난하지, 개 취급당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25절), 귀신 들린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예수께 간구(懇求)할 믿음이 있었다(26절). 그 간구의 수준은 목숨을 걸었던 정도였다.
그러기에 예수가 던진 시험의 말씀인 <선 이스라엘 동족, 후 이방인>론에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28절)란 말로,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고하면서, 예수께서 허락하신 부스러기 음식(치유의 능력)이라도 달라고 주님의 자비에 호소하며 매달렸다. 결국, 예수께서 그녀가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음을 선언하셨다, 그래서 그 순간 딸에게 붙어있던 귀신이 추방당했음을 보여주셨다(29-30절). 이것이 바로 예수의 선교요 하나님의 선교임을 제대로 보여주셨다.
o 오늘은 총회선교주일이다. 성령께서는 왜 한국교회란 풍토 속에 우리 기장을 창설하여 주셨는가? 교회가 진리와 평화에 정진하여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불신 세계에도 빛을 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독선과 아집으로 정죄와 분열의 늪 속에 빠져 있는 무리들을 깨우치고자 하심이었다. 기장은 결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집단이 아니다. 결국 기장이 있어야 그래도 한국교회가 살아 움직일 수 있기에 성령께서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다. 기장 때문에, 한국교회와 민족과 나라와 역사가 복을 받게 되기에 우리를 있게 하셨다. 이 의식 속에 우리는 이제 다시금 각성해서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