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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 (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관리자 2026-05-27 (수) 09:35 1시간전 2  

본문) 행2 : 37-47, 민11:24-29, 눅12:8-12


오늘은 성령강림 후 첫 번째 주일이다. 날씨는 완전한 초여름 일기로 들어간 상태여서, 매우 더워졌다. 여러분 모두는 이런 일기 변화에 적응을 잘해서 건강 지키기에 유의하셔야 하겠다. 


오늘의 말씀을 소화 시키고자, 우리는 지난 주일에 앞서 받은 말씀인 행 2장 중에서, 이 세상에 임하신 성령께서 유독 먼저 찾으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하여 말씀하신 무리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겠다(행2:11). 그들은 누구였나? 이스라엘의 본토인들인 히브리인들이 아니라, 해외 15개국에서 본국의 오순절기를 지키려고 몰려온 교포인 디아스포라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큰 일‘은 대체 어떤 일일까? 그 일은 성령께서 본격적으로 이 세상 만방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려는 일에, 바로 그들을 우선적으로 쓰실 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렇게 예시적(例示的) 말씀을 하셨다고 본다. 즉 자기 민족만 선민으로 생각하는 유대교가 아닌, 온 세상 만민을 사랑으로 품어서 구원받게 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시려는 계획에서, 그런 ’하나님의 큰 일‘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는 실로 혁명적(革命的)인 발상이었다! 


그 바람에 그들은 자기들만이 아닌 전체를 먼저 생각하고, 일부가 아닌 전부를 생각하며, 나만이 아닌 모두를 생각하게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펼쳐낼 새로운 인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시는 성령의 초청에-, 응답해야 하는 선택의 큰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곧 지금까지 자기들은 비록 피압박 민족으로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면서도, 그래도 하나님만은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믿음만을 고수하며 지내왔는데, 그러나 이제는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통하여 그 단계를 넘어선 새 차원의 구원사가 펼쳐지고 있음을 접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사랑하고, 의인만이 아니라 죄인까지도 용납하시며, 나와 같은 자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자들까지도 함께 포용해 주며,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까지도 안아 주시는 여호와를 알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 큰 새바람이 과연 맞는지 틀리는지를 분별하고, 선택해야 할 시점에 서 있음을 절감했다. 그것도 ’조상 적부터 전승해 온 유대교의 선민(選民)주의와 고립주의를 고수하느냐, 세계 만민을 함께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수용하느냐의 기로에 선 자신들을 본 것이다. 실로 운명이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맞이한 무리들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과 결단의 문제는, 자기들 스스로 해결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육체로는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과 종교를 스스로 뿌리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리와 양심의 주이신 성령께서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철저히 뒤집고 아프게 흔들어 주시고, 그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셔야만 가능했다(겔36:26-27 참조). 그래서 성령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이미 성령을 충만히 받았던 사도 베드로를 그들 앞에 내세워서, 증언하게 하셨다. 


그때 베드로 증언의 요지는 무엇이었나? 요엘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만민에게 성령을 주시리라‘는 예언의 성취가 이번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취된 일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일찍이 죽은 자의 부활을 예고하신 바대로 나사렛 예수가 부활하서서, 그의 영까지 자신들에게 부어 주셨음을 전하면서, 그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그들의 죄악은 정말 큰 죄였음을 강하게 증언했다(행2:14-36 참조).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사도의 그런 말씀에 그를 반응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자세히 밝혀 준 곳이다. 특히 첫 구절에 등장한 ”그들’(37절)은 바로 단순한 예루살렘 주민들이라기보다는 이미 성령의 강력한 도전을 일차 경험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포함한(2장에서) 일련의 경건한 사람들로 보인다. 곧 성령이 보시기도 그들의 마음은 항상 목말랐고,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며, 예루살렘을 순례할 정도의 경건성을 보유한 기경(起耕)된 심령의 소유자들이었다.


결국 이 증언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반응으로. 드디어 성령께서 목표하신 원시 초대교회가 이 지상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회개와 함께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응답하게 된 새 인간, 새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모두가 세상 일반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새 피조물의 모습 속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구약도 하나님의 영이 모세 때에는 어떻게 역사하였는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바람과 뜻과는 현저히 차이가 있었다. 주의 종 모세는 그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당연하다고 보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자기들의 판단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역시 그의 영의 개입으로만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복음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일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성령의 깨우침을 절대 거스르지 말라고 엄명하시는 장면이 나온다(10절). 이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매우 엄중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1. 서신서 / 행2:37-47 /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사도 베드로의 연설은 매우 뜨겁고 격정적이었다. 청중들이 말씀을 듣고만 끝날 수준의 설교가 아니었다. 견딜 수 없는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되면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마음 문을 열고, ‘우리가 어찌해야 하느냐’(Brothers, what shall we do?)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된 회개 운동과 예수 이름으로 받게 된 세례 운동, 그것도 성령 세례에 이르기까지 참여한 자들이 무려 3,000여 명에 이르러 펼쳐졌다. 지구촌에 첫 크리스천 집단이 출현한 것이다. 


생활 문화가 급격히 바뀌었다. 사도들 앞에 모이기 시작했고, 함께 모인 상대를 새 가족으로 영접했다. 그들과의 나눔과 베품과 섬김이 시작되면서, 서로 사랑하는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소유도 가진 것의 기쁨에서, 돌봅과 나눔의 도구라는 의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새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계속 찬양하였다. 그런 모습에 감동한 백성들의 칭송까지 자기들도 함께 하겠다면서, 계속 몰려들어 왔다. 모이는 교회 공동체의 실체가 나타난 것이다. 본문들을 다시 새겨 본다 :


1) 디아스포라 중심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베드로를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37절). 이는 실로 성령의 강력한 도전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그런 기록된 사실들(약속된 성령과 고대하던 메시아 예수)을 전혀 모른 체, 유대교의 선동에 휘말리면서 나사렛 예수를 미워하고 오해하여 그를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일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토록 두렵고 무서운 범죄인 줄을 이제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자신들 범죄에 따른 마음에 찔림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사도들에게 그 구출 방안을 묻게 되어 얻게 된 해답은, 회개와 그 죄 씻음을 위한 용서(容恕)의 물세례를 받되, 그것도 바로 자신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예수의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진짜 더 큰 선물인 성령까지도 받게 되면서,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삶과 마음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되리라고 선포했다(38-40절). 


3) 그들은 사도들의 그 요구에 순복(順服)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죄 씻음을 받는 물세례를 받았다. 무려 3,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당시 예루살렘 전역의 지축을 흔드는 대(大) 역사였다! 그러면서 함께 공동의 새 삶을 경험한 그들은 흩어지지 아니하고, 함께 모여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고, 서로 교제를 나누었으며,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고, 함께 기도하기에 힘쓰기 시작했다. 이는 현대 교회의 전형적인 예배와 성회 형식의 원형이었다. 


4) 뿐만 아니었다. 그들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기 시작했다. 곧 서로 사랑, 서로 대접, 서로 봉사의 태도로 그 모임에 임하였다(44-45절, 벧전4:8-10 참조). 가진 소유물들을 팔아서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누었고, 모이기를 힘썼으며, 식탁 나누기를 즐겼다. 마음의 기쁨을 표명하는 하나님 찬양도 힘썼다. 그런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 이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도 그런 믿음의 생활에 동참하겠다고 몰려왔다(44-47절). 


지구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렇게 당당히 태어나면서 구원의 종교로 시작되었음을 고하는 모습이었고, 율법 종교인 유대교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도 되었다. 


2. 구약 / 민11:24-29 / “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백성의 광야 40년 여정을 이끌어 가는 모세 주변에는 그를 도울 중간 지도자급인 장로 70인이 있었다. 그날에도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자 그들 전체를 소집해 세웠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주변의 70인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는데, 그 바람에 그 장로 모두는 황홀경에 빠져들면서 예언도 하는 경험을 하였다(24-25절). 


하지만 그런 중에도 해프닝 한 건이 발생했다. 엘닷과 메닷이라는 인물들 두 명이 이 전체 모임에 참석하지 아니하고 자기 진영에 머물렀다.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 보내신 영은 그런 행위를 한 두 사람에게도 임하면서, 그들 역시 자기 진중에서 예언을 한 것이다(26절). 이 일은 매우 놀라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 소식이 모세에게 전해지자(27절). 모세의 측근 중 한 사람인 눈의 아들인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강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들의 예언 활동을 중지시키소서’(28절). 이런 여호수아의 건의는 왜 나온 것일까? 그들의 행위에 대한 강한 불만과 그 잘못에 대한 질책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곧 책망과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 예언이 허용되는 일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입장을 밝혔다. 문제를 일으킨 두 장로들에게 까지 당신의 영과 은사를 균일하게 누리게 하신 일은 지극히 마땅하다고 선언했다(29절). 그러면서 인간적 시기니 정죄의 차원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면 안 되는 일임을 밝혀 주었다. 그렇다면, 모세가 그렇게 정리한 연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 불참에 대한 개인적 행위와 그 책임은 결국 하나님께서 처리하실 일로 보면서, 그보다 그 두 장로에게 여호와께 벌주셔서 그들이 주의 영과 예언 분배에서 제외하게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곧 그들의 리더십이 그 일로 행사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그가 맡은 공동체나 지파가, 마치 연좌제(連坐制)처럼, 그 불이익을 오로지 떠안게 된다는 점을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런 부실한 자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영을 더욱 받게 하여, 그 영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잘 헤아려서, 자기를 더 돌아보고 또 자기 공동체를 잘 섬김이 좋을 것으로 보셨음이 분명하다. 


사실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성령과 은사 받게 됨은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기에 그것을 채워주시고 그 일로 보다 좋은 일 하며 살게 하시고자 함이었잖은가 말이다!


3. 복음서 / 눅12:8-12 / “ 누구든지 말로 인자(人子)를 거역하면 사(赦)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


본문은 예수께서 당신에 관련된 추후의 증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미리 지침으로 내리신 내용이다. 곧 지상(地上)에 계실 때의 예수는 당신 자신에 관련한 일련의 세상적 오해나 오인에서 나온 비방 따위들은 얼마든지 허용하신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예수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대망(待望)했던 바로 그 인자(人子)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해 준 성령의 증언이 일관되게 나온 이후부터는, 예수에 대한 그 어떠한 왜곡된 일체의 증언도 결코 용납하지 못할 것임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정리해 주신 것이다.


이 점을 명백하게 하시려고, 예수께서는 사전에 이렇게 알리셨다. 곧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당신도)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8-9절). 무슨 말씀인가? 오직 사람은 예수께 어떻게 입장을 취했는가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는 점을 알리신 것이다. 이 단호한 예수 자신의 증언 때문에, 요한은 그 유명한 선언을 하였다(요3:16절 참조). 


그런 점에서 이 본문은, 십자가에 죽임당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 만민을 위한 유일하신 구세주(救世主)이심을 성령을 통해서 천명한 선언문이다!!! 즉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구원받을 자가 없음을 온 천하에 고지(告知)한 내용이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런 성령의 선언에 ‘아멘’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가는 무리이다.


o 예수로 온 세상과 만민을 하나 되게 하시고, 거기에 ‘아멘’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발상은 분명히 당시 자기들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종교집단들에게는 정말 엄청난 모반(謀反)적 시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령께서는 그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뒤따를 지라도, 예수를 통하여 평화를 이루고, 서로 다른 것을 놓고 싸우고 미워하는 것을 막으며, 도리어 서로 나누고 채워주며 서로 하나 되어 사는 즐거움을 찾게 하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셨다. 당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앞세워 그렇게 하고자 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의 우리가 성령의 응답자가 되어 '예수는 구세주이시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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