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문) 마 2:1~12, 사60:1-14, 갈4:1-7
오늘은 2025년도 우리 구주(救主) 예수님의 탄생 기념일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의 탄생을 축하(祝賀)하며 영광(榮光) 돌리고 경배(敬拜)드려야 할 때이다. 그의 탄생으로 이 세상과 인류는 기존의 세상 질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과 세상을 맞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의식은 물론 그를 구주로 영접한 믿은 자들의 것이겠지만, 그러나 불신자라도 예수를 존경하는 이들도 그의 존재의 무게와 역할을 공감하고 있다.
오신 예수께서 이 지구촌에 안겨 주신 굵직한 생명과 삶을 위한 교훈 몇 가지를 헤아려본다 :
1) 인간들에게 사랑하며 사는 삶을 일깨워 주셨다.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인간이었다. 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시작된 삶의 틀이었지만(창12:2-3), 그 후손들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사는 지옥의 삶을 이어가자, 결국 그가 친히 세상에 오셔서 구원받은 인생의 모델이 되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보여주셨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대속한 죽음을 통해 이루신 일이었다.
2) 왕(王)의 참모습을 보여주셨다(요18:37).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진정한 왕으로 오셨다. 그 왕은 군림하고 명령하며 통치하고 제압하려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무지에서 깨우치고 불필요한 멍에를 벗겨주며 모든 백성이 서로 간의 공존 공영 공생하도록 정의 평화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머릿돌 왕으로 오셨다. 모든 불의와 거짓 허위 의식을 제거하고,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부터 희생하는 본을 보이는 참 지도자요 구원자로 오셨다.
3) 하늘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음과 땀과 피와 눈물을 쏟으며 살아갈 세상과 시간대가 모든 인간에게 균등하게 부여 되어 있음을 알려 주셨다. 그러기에 사람은 주어진 인생을 막무가내로 살면 안 되고,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 존재임을 깨달아, 머잖아 삶의 종국에 맞이하게 될 하나님 앞에서의 칭찬(稱讚)이나 심판(審判)을 엄중히 대비하여야 함을 일깨워 주셨다. 곧 짧은 인생의 길을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간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로 압축해 주셨다.
4) 이런 삶의 실현과 완성을 위해 주님은 그 길잡이와 도우미로서, 말씀과 성령을 주셨다. 그 말씀은 인간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는 양식이었다(요14:6). 그 말씀은 모세의 율법(律法)이나 선지자들의 예언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온전하게 하는 복음(福音)으로써(마5:17), 누구나 그 말씀을 믿고 좇으면 영생을 얻고 축복을 받게 하셨다. 주님은 당신의 성령인 보혜사까지 보내 주셨다(요15:26). 그래서 주님이 주신 말씀과 뜻을 헤아리게 하고, 깨닫게 하며, 믿고 행동하도록 힘과 능력과 지혜도 더하여 주셨다. 무엇보다도 이 성령은 예수의 몸체인 교회(敎會)를 세우게 하셔서, 온 세상 만민이 주께 돌아와 하늘 백성이 되게 이끄셨다.
5)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며 살게 하셨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들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채워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셨다(마6:33). 그래서 자기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비결을 안겨 주셨다. 이런 복된 삶의 고착화를 위해,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자신들은 그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곧 기도를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며 살게 하셨다. 복낙원의 길을 활짝 여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놀랍고 귀한 메시아 예수께서 이런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시려고 아기의 몸으로 오시는 길은, 매우 좁고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그만큼 기득권을 가진 세상의 어둠의 권세들이 그의 행보와 등장을 막아내려고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성탄절 세 본문은 아기 메시아의 탄생이 처음부터 얼마나 거센 역풍을 만났는지와 함께, 그럼에도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손길은 얼마나 다채롭게 펼쳐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곧 메시아의 탄생은 그 일의 호스트(host)가 되어야 할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단호한 의지를 밝히기 위하여, 우주(하늘)의 별을 동원하시기 시작했고, 이방인 현자(賢者)들의 마음과 눈을 열어주시면서, 그 성탄 사건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취하셨다. 그 바람에, 첫 번째 성탄은 처음부터 우주적(宇宙的)이요 세계사적(世界史的)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된 일이 되었다.
그 바람에 아기 예수의 성탄은 처음부터 유대인 중심의 구원 축제 차원을 넘어서, 온 세상의 믿음과 마음이 열린 모든 자들의 구원의 축제가 되는 사안임을 드러난 것이다. 비록 동족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고 거부하면, 그들은 메시아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계 만민 그 누구라도 오신 주님을 기뻐하며 영접하고 경배하면, 그 누구나 하늘 구원의 잔칫상에 초대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새로운 구원의 공식이 선포되었다.
즉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의 혈통적 우선주의나 선민사상도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함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신 메시아 예수의 말씀과 뜻에 받느냐 못 받느냐 여부였다(요6:35-40참조). 요한이 선포했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가 영생의 핵심 요인임이 드러났다. (요1:12-13절).
이런 증언은 먼저 복음서에 나타난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에서 입증되었다. 그리고 구약 이사야 예언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포로 생활로 형편없이 망가졌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때가 되면 온 세계 만민의 성지와 순례지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 영광을 회복할 것임을 놀랍게 예고하였다. 그뿐 아니다. 서신서는 성탄 하신 메시아 예수께서 베푸신 구원의 밥상도, 유대인 공동체가 아닌 이방인 교회 공동체에 의하여 풍성히 즐기게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흐름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예수의 성탄은 그의 탄생지인 유대 땅 이스라엘이 아닌 그곳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예수의 성탄을 더욱 기뻐하고 축하한다. 그 행렬에는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도 함께한다. 세계 교회와 신도들은 여전히 예수께서 탄생하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성지로 알고, 설레는 가슴으로 찾고 순례한다. 또 다른 동방박사들의 모습들이요, 또 다른 이사야 예언의 성취된 모습들이다.
1. 복음서 / 마2:1-12 / ”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는 무리와 그를 거부하는 무리의 대응하는 행태들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1) 동방박사들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 별의 안내를 받고 매우 먼 길을 순례하며 찾아온 일, 유대에 와서 헤롯과 일행을 찾아서 공개적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거침없이 물은 일, 그들의 정보를 받아서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메시아를 찾아뵈었던 일, 별의 인도를 보고 크게 기뻐한 일, 세 가지 귀한 예물을 드리면서 엎드려 경배한 일, 최후에는 신의 지시에 따라 헤롯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고국으로 직행한 일들은 그들의 메시아를 향한 믿음과 충성심이 얼마나 크고 고매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영적 교훈을 보자.
① 많은 학자들은 이들을 당시의 페르시아의 고등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나 박사급 이상의 위상을 가진 이들로서, 천문학에도 탁월한 식견을 가진 현자들로 본다. 그런 그들이 메시아를 자기 종교 안에서가 아니라, 어디가 되든 그 본체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찾아 나선 그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들이야말로 오신 예수가 온 세상의 빛이요 생명임을 입증하였다.
② 매우 오랜 순례길을 감당한 모습이 신비스럽다. 그 먼 길과 사막과 광야를 꿰뚫고 상당히 오랜 세월을 순례하며 서쪽 변방에까지 별을 따라온 그들의 순례는 그야말로 모든 정성과 마음을 쏟아낸 씨름이었으리라. 그들 세 명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순례길을 돕고 되도록 협력해야 할 도우미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요된 경비도 엄청났을 것이다.
③ 그들의 지고지순한 신앙이 놀랍다. 자기들의 경배와 예물을 드릴만한 존귀한 분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라는 사실을 전력을 쏟아서, 행동으로 증언한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들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이후에 전개될 아기 예수의 애굽의 피난살이를 돕는 매우 적절한 헌물이 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 이집트의 곱틱(Copts) 정교회 공동체 탄생으로 이어지게 한 마중물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사19:19-22 참조).
2) 반면에 헤롯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대응은 그의 탄생 소식에 매우 큰 충격에 휘말렸으나(3절), 그 대응은 아주 소극적이었고 간계(奸計)하고 폭력적(暴力的)이었다.
① 헤롯 왕은 궁금한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후, 아기 메시아를 죽이려는 계책을 가졌다. 대제사장과 유대 학자들을 긴급 소집하면서, ‘그리스도 출생지에 관한 자문과 대답을 접한 후, 동방박사들에게는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한 후에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이유는 맹렬한 질투심 때문에, 그곳에 가서 아기 메시아를 죽이고자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② 헤롯의 자문에 응답한 학자들은 이미 예언에 대한 지식으로, 오실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 오실 것이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삼상16:1,17:12,15, 삼하5:2,미5:1 참조). 하지만, 그들은 오신 메시아를 찾아서 경배할 만한 행동하는 신앙인이 아니었다. 가장 비생산적인 신앙인의 전형일 뿐이었다. ‘알고도 행함이 없는 신앙’을 가진 ‘죽은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2. 구약 / 사60:1-14 / ”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본문은 오랜 포로 생활로 인한 가난과 압제와 슬픔과 곤경에 가득한 땅, 예루살렘과 시온의 미래에 관하여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완전히 판을 바꾸는 내용이었다. 자기들이 그때부터 세상에 빛을 발하리라는 말씀 때문이다(1절). 그 원인은 뭔가? 빛 되신 여호와가 그들 위에 오셔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이다(2절). 그러면서 나라들이 찾아오고, 왕들이 이 광명으로 나아오게 된다(3절). 실로 천지개벽의 세상이다!
그 격변(激變)의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다. 이방 나라들과 왕들이 유대 자체보다도 먼저 그 영광(榮光)의 빛을 알아보고, 수많은 보물과 예물들을 손에 들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온다. 그것도 동서남북에서 몰려오고, 재물들과 가축들도 함께 오며, 제물들을 드리며 여호와를 찬송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 바람에 오랜 세월 궁색했던 예루살렘과 성전이 부요해지고, 동시에 주를 전하는 이방 세계의 선교지가 되는 영광까지도 누리게 된다. (4-7절, 8-9절 참조).
무너진 성은 이방인 노동자들이 몰려 와 중수(重修)하고, 성문은 24시간 개방되어서 사람들로 붐빈다. 백성들의 거처도 레바논의 최상급 목재로 만든 곳이 되는 영화를 누린다(10-13절). 그뿐 아니다. 예전에 그들을 괴롭히고 멸시하던 자들의 후손들이 그들 앞에 엎드려 사죄하며 ‘당신들이야말로 여호와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고 고백하게 된다(14절). 이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오실 메시아 때문에 전개될 상전벽해의 새 역사의 모습이리다.
결국, 이 예언은 복음서의 이방인 고위층 인사인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는 모습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메시아 예수의 빛과 영광이 머무는 곳에는 사람들도 모이고, 멸시 대신에 영광이 따르고, 궁색함이 풍요로움으로 대체되는 축복이 집약된다는 점을 확증해 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수에게는 빛과 생명과 구원과 영광의 향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꽃 핀 곳에는 벌과 나비가 몰려드는 것과 당연하지 아니한가!
3. 서신서 / 갈4:1-7 /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는 오신 메시아 예수로 인하여 신분에 큰 변화를 겪은 존재들이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 믿게 되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었다. 감히 죄인이면서 종이었던 존재들이 예수를 영접한 단 하나의 이유로 인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혈통으로도 아니고 육정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영접한 일로 그렇게 되었다(요1:12-13).
그 바람에, 우리는 신분상의 지위와 명분도 얻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유업(遺業)을 이을 자’란 지위이다(1,7절).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견인하고 있다. 최종 유업을 상속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종같이 섬기고 충성하며 산다. 자격과 내용을 보전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명분에 어긋나고 손상될 처신은 삼가야 한다. 내주하신 성령과 동행해야만 한다.
o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헤롯과 같고, 유대인들과 같은 허세들이 주변엔 가득하다. 타협은 금물이다. 다시 확인해 보자. 성탄하신 주님은 내 안에 계시는가?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있는가? 부디 동방박사들의 열정과 주님 사랑과 충성의 영성을 본받도록 하자.
주님은 영광이시고, 향기이시며, 빛이시다. 그를 제대로 모시고 살면, 세상의 염려와 걱정은 극복된다. 그 영광과 빛이 있으면, 그곳엔 사람들이 결집 되고, 필요한 재물도 공급되며, 환경들도 형성되고 공급된다. 그런 체험자들이 되자. 그런 증언자들이 되자. 그런 행복자들이 되자. 이번 성탄을 통하여서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