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렘 23:5~8, 마1:18-25, 요일4:13-21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인 넷째 주일이다. 주님의 임박한 오심을 고대하며 교회들은 강단에 준비된 네 개의 촛불을 밝힌다. 태아의 생명으로 치면, 만삭에 찬 기한을 맞이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자 우리는 여태 어떤 대비를 하며 지내왔는가? 그는 우리 왕이시다! 이 부분에서 자성과 적절한 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곧 시작될 그리스도의 절기인 성탄절(聖誕節)기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시는 왕을 온전히 맞이하면,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침 지금은 대통령의 각 부처 업무에 대한 순시(巡視)를 생중계 속에 진행하고 있다. 전 국민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이는 여러모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 이 시청(視聽)을 통하여 우리 국민은 누구나 나라의 각 부처의 하는 일들과 그중에서 중요한 현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위하여 각 부처는 지금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관심 있게 살필 수 있다.
이에 각 부처의 책임자와 실무자는 대통령을 향해 현안 보고에 전념(專念)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각 부처와 담당 책임자의 역량과 대처 능력과 현황도 자연히 공개된다. 그 바람에 어떤 부서장은 칭찬을 받게 되기도 하고, 어떤 부서장은 부실하고 무능한 대응과 태도에 질책을 당하면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부실한 인물은 이전 정권에서, 세칭 ‘낙하산 인사’로서 부서의 책임자로 와있는 사람들인 듯하다. 그들 중에는 특히 친일 계열의 뉴라이트 형(型) 기관장인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그런 인물들이 교육분야, 인권분야, 언론분야, 보훈분야 등에서 전문적 실력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건강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 우리 국민에게는 매우 큰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뜻을 갖고 진행하는 대통령의 송곳 질문에 그들 상당수가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닌 현문우답(賢問愚答)할 가능성이 커서, 피차에 마찰과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하지만 다수의 진통이 있더라도, 그래도 국가의 전문 분야는 정치적 자리 할당에 따른 것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질서가 이번 기회에 보다 더 확실히 자리잡힌다면 큰 유익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값진 혈세(血稅)가 그런 편향되고 우매한 자들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대하면서, 우리 자신도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맞게 된다.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곧 우리가 영접할 다시 오실 메시아는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다는 차원보다는, 세상과 우리를 심판(審判)하러 오시는 분이시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오늘의 세 본문 내용을 살피고, 오시는 메시아가 어떻게 오시고,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 지도 크게 주목해야 하겠다.
메시아의 오심은 오래전,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었다. 선지자는 나라인 유다가 패역으로 인해 망하기 직전인 바로 그때, 메시아 구원자의 도래를 예고했다. ‘때가 이르리니,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나 왕(王)이 되어, 이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은 구원과 평안을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렘23:5-6). 그 뜬금없이 들리던 예언은 그 후에도 오랜 세월 흘렀다.
하지만 그 예언은 때가 되니 드리어 그 본체를 드러냈다. 그 성취를 바로 마태복음이 전한다. 예고된 메시아는 한 아기로 태어나는데, 그 어미는 숫처녀 동정녀(童貞女)의 몸으로, 성령이 그에게 잉태하게 하면서 생긴 생명체였다. 의로운 사람 요셉이 그와 정혼한 남편이었으나, 그러나 잠자리를 하지 아니한 처지에서, 배가 불러온 약혼녀를 아내로 맞이해야만 하였다. 주의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아이를 ‘예수’라 부르라 하고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전달과 함께, 그가 자기 백성에게 구원자가 될 인물임을 수태고지(受胎告知)한 까닭이었다. (마1:18-23)
요한서신서는 그렇게 구원자로 활동하시다가 하늘로 떠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그와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여기에서도 핵심은 여전히 성령(聖靈)이시다. 아버지 요셉의 인간적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면서, 성령으로 잉태한 약혼녀 마리아를 아내로 맞으며 끌까지 다윗 가계를 보전하게 하고, 예수의 가계 혈맥을 존속시킨 그 성령을 우리가 받고 의지하며, 그의 인도함 속에서 하나님 자녀 되어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럴 때 나타나는 특징 몇 가지가 드러났다. 첫째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아들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16-18절). 그때의 사랑은 실재적 사랑으로서 나를 사랑(아가페적)의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함을 드러내는 사랑에 들어가게 한다. 그러면서 그 사랑의 힘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게 한다(19-21절). 이 점은 무엇을 말하는 일인가?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데에는 그가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받아야 하고, 그의 내주(來住) 안에서 깨닫고 믿어 살게 되는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히 오시는 메시아 주님의 영접을 받게 된다는 점을 말해 준다.
1. 구약 / 렘23:5-8 /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義)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王)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를 행할 것이며 ---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
여호와께서는 악한 유다의 목자(왕)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선고하시면서도, 그 나라와 백성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희망적인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곧 언젠가는 다윗의 후손 중에 지혜와 정의와 공의를 펼쳐서 백성과 나라에 구원과 평안을 안겨 줄 왕(王)을 보내실 것이라는 예고의 말씀이었다.
1) 그때 나라를 망친 왕은 시드기야인데, 그는 여호야긴 다음으로 왕이 된 자로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왕하24:17-25:21 참조).
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언젠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다윗이라는 위대한 이름에 걸맞은 인물이 등장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5-6절). 여호와가 지목한 후손은 ‘의로운 가지’로써, 그는 왕이 되어 지혜로 다스리며 세상에 정의(just)와 공의(right)를 행할 존재가 되리라 하셨다. 당시의 왕과는 아주 상반된 새 왕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다. 5절의 ‘가지’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슥3:8, 6:12에서는 ‘싹’이라고 번역하여 되살려 쓴 것이다(사11:1-5 참조).
3) 그의 시대가 되면 유다는 구원(救援)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화(平和)를 누리며 살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The Lord Our Righteousness)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 그 일이 너무도 놀랍고 새로워서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 첫머리인 ‘출애굽 시절의 하나님 이름’ 대신에, 제2 출애굽의 역사인 바벨론 등의 여러 제국(帝國)의 굴레에서 해방을 안겨주신 ‘구원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살게 될 것임을 예고하셨다(7-8절 참조).
4)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여호와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판단한다(행2:36, 롬1:3-4 참조). 실제로 다음의 복음서는 그 예언의 성취(成就)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상황을 전해 준다.
2. 복음서 / 마1:18-25 / ” 다윗의 자손 요셉아 ---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본문은 앞의 16절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다. 인간 아비의 몸을 빌어서 오신 분이 아님을 전하려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보도는 여러모로 일반인의 것과는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 :
1) 그는 숫처녀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셨다(18-19, 23절). 이는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이기도 했다(사7:14 참조). 그녀에게는 약혼남인 요셉이 있었으나,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한 처지에서 잉태된 일이 드러났기에, 그 충격과 갈등은 매우 컸다. 이에 본래 의(義)로운 사람인 요셉은 약혼녀의 잉태 사실을 간음죄로 몰아가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버리고자 했다(19절). 하지만 그런 요셉에게 주의 천사가 태어날 아기에 대하여 예고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는 사건임을 알려주자, 그는 결국 마리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2) 아기 예수께서 요셉의 아들로 받아들여진 일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요셉이 본래 다윗의 후손임을 활용하여, 아기 예수가 그에게 양자(養子)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법적으로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었음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3) 메시아 예수는 누구의 씨로 잉태(孕胎)된 분인가? 바로 성부의 영이신 성령(聖靈)의 직접적인 작용을 통하여 잉태된 신비한 생명이었다(18절). 이 부분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는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신 친 아들이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같은 성령을 받은 이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될 수 있게 하였다. 둘째는 그는 인간의 죄성(罪性)을 가진 피의 상속자로 오신 분이 아니시기에, 그 자신이 죄에는 무흠(無欠)한 이로 살 수 있었고, 종국에는 죄인들을 위한 대속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는 점이다.
4) 이름도 중요했다. 그의 이름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이름인 예수였다. (21,23,25절) 히브리 이름은 예수아(긴 꼴 이름은 여호수아)를 헬라말로 적은 이름이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해 주신다’인데, 본 21절에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으로 전하고 있다. 죄와 죄의 결과에서 건져내신다는 뜻으로 풀고 있다. 이 예수가 ‘임마누엘(lmmanuel-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불린 곳은 이 본문이 유일하다(23절). (본 교단의 직영 신학교인 한신대학은 이 임마누엘을 학교의 이름으로 정하고 있다).
3. 서신서 / 요일4:13-21 / ”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요한서신의 저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당시의 적(敵) 그리스도와 이단의 세력인 영지주의(gnosticism)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고 지켜내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편지를 썼다. 그들은 인간을 연약한 존재나 죄인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온전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영적인 지식만 깨닫게 되면 완전한 존재가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고 전파하면서, 그러기에 예수나 성령의 존재 필요성을 아예 거부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본문은 그런 거짓 논리에 대한 반격(反擊)과 함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떤 믿음의 논리와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살아야 하는 지를 강력하게 설파하고 있다. 이제 이 내용의 핵심을 살펴보자.
1) 성령(聖靈)을 받지 아니하면, 인간의 예수에 대한 이해와 그의 존재를 향한 믿음이나 그의 말씀을 좇아 살게 될 힘과 능력과 지혜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13-15절). 그것은 이미 복음서 증언대로 예수의 탄생 자체가 성령으로 잉태된 연고 때문이고(마1:18),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보내실 성령 보혜사가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그들을 인도하실 것임도 전하신 까닭이다(요15:26-27, 16:5-15, 행1:8 참조). 이는 인간 스스로의 구원의 불가능성을 규정한 말씀이다.
2) 성령의 내주(來住)가 될 때,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받게 되는가를 본문은 전한다(14-19절). 먼저 메시아 예수가 하나님이 성령으로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알게 하고 믿게 한다. 그러면서 주저 없이 자신의 입으로, ‘예수는 내 구주이시다!’라고 시인하고 고백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그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내 아버지이시다는 점도 알고 믿게 하며, 담대하게 고백하게 한다. 그 까닭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의지하기 때문이다(마6:9 참조).
3) 무엇보다도 함께 믿는 형제들과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게 한다(20-21절). 이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게 되고, 주의 자녀인 우리도 당연히 그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받은 사랑과 축복을 받지 못한 이웃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이 조상 아브라함 후손의 도리임도 믿기 때문이다(창12:3 참조).
o 성탄의 계절이 임박했다. 구세주 예수님을 사모하고 고대하는 깨끗하고 신실한 마음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마음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성령의 임재와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그 성령 보혜사만이 우리를 예수께 제대로 인도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의 가르침도 깊이 되새기자. 마땅히 우리가 집중하여 갖추어야 할 영적 채비들이다. 예수님이 내 주님이시고 우리를 구하실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시인하고 입술로도 고백해 보자. 주님을 모르고 사는 주변의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 나의 행동이 더욱 필요하다. 아울러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행동도 필요하다. 성탄과 연말연시의 기쁨과 축복도 함께 나눌 시간을 가져보자. 주님이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도록 기쁘게 전하는 기회가 되게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