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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총회선교주일

관리자 2025-06-03 (화) 10:49 3일전 72  

본문) 행 2:1~13, 욜2:23-32, 눅11:5-13


오늘은 성령강림절 둘째 해의 원(原) 주일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를 구세주로 믿는 교회 공동체를 지구상에 탄생하게 한 성령(聖靈)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날이다. 그 바람에 우리 교회는 예수 탄생을 경축하듯이, 예수의 보혜사(보혜사)로 오신 성령의 강림도 축하한다. 특히 강림하신 이날은 구약의 삼대 절기들인 유월절과 오순절(칠칠절)과 초막절(장막절) 중에서, 첫 열매 수확을 감사하며 지키던 오순절이었다.


이 오순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시내산에 도착해 십계명을 받은 날과도 연결된다(출19장).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오순절을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받은 날로 기념하며, 그들의 신앙적 유산을 재확인하는 때로 받는다. 이 율법 수여 받은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여서, 그들은 이날을 매우 중요한 날로 간주한다.


신약에서도 이 오순절은 매우 중요하다. 이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던 중, 바로 이날에 성령이 그들에게 강림하신 것이다. 이 성령강림 사건은 초대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기독교회가 이 지구촌에 본격적으로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만이 아닌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날이며. 두 집단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언약이란 공동 유산을 공유하고 있음도 알게 한다.


성령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선교(宣敎)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요 그의 능력이시다(행1:8).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기도 하다. 그 특성을 보면, 성령은 당신 자신이 독자적인 새 일을 하시거나 말씀하기보다는, 성부와 성자가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거나 그 예고하신 일들이 성취되게 하신다. 성부의 구약 예언과 성자의 복음서 말씀들이 성령의 활동장인 신약의 서신서에서 전해지고 성취되어서, 이 땅에 그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래서 인간은 이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본질적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전능성과 거룩성에도 접근하기가 불가하다. 그러기에 반드시 성령을 받아서, 그의 능력과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나아가는 방법은 따로 없다. 항상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세계는 열려 있기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된다(눅11:9-13 참조). 


오늘 주일은 특히 본 교단의 총회선교주일이기도 하다. 본 교단이 지난 38총회(1953.6.10.)에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란 새 개혁 교단으로 출애굽한 이래, 이제 어연 72회 총회를 보내면서 맞이한 매우 뜻깊은 기념 주일이기도 하다. 


때마침 우리나라는 지난 6월 3일에 실시된 대선(大選)을 통하여, 작년 12월3일에 있었던 내란(內亂) 세력들을 심판하고 제21대 새 대통령까지 선출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한국 개신교단에서는 유독 우리 교단만이 총회적인 참여를 통하여 그런 내란 세력을 심판하고, 새 민주 정부의 등장을 견인해 왔다. 이 일들은 분명 성령의 인도하심이라 믿는데-, 이제 우리의 선 자리를 당시의 총회 선언문 4가지 사항을 재확인하면서, 되새겨 본다.


1)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 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2) 우리는 건전한 신앙을 세움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3) 우리는 노예적인 의존 사상을 배격하고 자립 자족의 정신을 함양한다.

4) 그러나 우리는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 병진하려는 세계교회 정신에 철저하려 한다.


이런 선언은 마치 율법 종교인 유대교에서 복음 종교인 기독교가 출애굽한 것과도 유사하다. 만일 예수가 율법에 묶여서 그곳에 머물렀다면, 그는 결코 세계 만민의 구주가 될 수가 없었다. 기장의 출애굽은 그래서 귀하다. 그리고 건전한 신앙 구축과 신앙 양심의 자유의 확보를 천명한 일도, 반드시 성령의 새롭게 열어주시는 예배와 신학이 수용됨으로써, 우리 교회와 신학이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계속 발전 성장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어서, 그 가치가 크다.


노예적 의존 사상의 배격과 자립자족 정신의 함양 선언도 귀하다. 이는 우리 상황과 여건에 부응하고 응답할 수 있는 교회의 신앙고백과 선교의 자주화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과 의지로 우리는 타 교단에 비하여 일찍 선교사의 틀에서 벗어나 민족 차원의 선교관을 갖춘 자주 자립 교회를 지향할 수 있었다. 주체적 교회상을 확보한 일은 큰 일이다. 


그리고 신학의 고립주의 역시 피해야 할 일임을 분명히 했다. 온 세계교회와의 연대를 통하여,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선교 전선의 일원이요 전위대 역할도 자임했다. 그 바람에 우리에게는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민중신학과 민중교회>가 생산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독재 시절 당국의 탄압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일원이 되어, 인간의 전 생활영역에서 일하시는 전적인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하는 아주 특별한 교단이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 교단은 그동안 거리에서, 평화와 통일전선에서, 환경에서, 인권과 민주화에서, 민중의 고난 현장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교회란 독보적인 진리 수호의 길을 밟아 왔다. 그러기에, 이번 새 대통령을 배출한 곳(성남 주민교회)도 우리 기장임도 생생히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교회, 어떤 신앙인들을 사용하시는지를 생생히 확인시켜 주셨다. 

특히 이번에 사이비 기독교 세력인 전광훈의 태극기 부대 세력들에 맞서서, 정의, 평화, 생명의 신앙고백을 받들어 꾸준히 저항하고 기도해 온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신 것이다. 망가진 기독교 불신 풍조에서도, 우리 기장은 희망의 ‘남은 자’임을 보여 주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 교단의 행보와 응답의 모습에는 적잖은 아쉬움과 비판받을 요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38선언서의 내용을 기억하며, 출애굽 공동체로서의 우리 정체성과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에 순복하면서, 더욱 굳세게 믿음과 선교 행진을 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더욱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항상 선히 이끌어 주시는 보혜사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성서적 증언에 다시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이는 오늘날도 여전히 일하시는 그 분을 우리가 다시 만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서신서 / 행2:1-13 /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


성령의 강림은 확실히 이 세상 기존 질서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온 대(大)사건이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절대 가능하지 못한, 그래서 오직 창조주이자 전능자만이 가능하신 일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그것은 세계 만민이 누구나 자기가 원하고 바라면, 전능자요 은혜자인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 놀라운 차원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신인식(神認識) 차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대변혁이었다.


사실 그간의 신과 인간은 상호 접촉이 불가(不可)의 위치에 있던 존재들이었다. 신은 언제나 높은 데에 계시고, 존엄하고 거룩하며. 신령하고 불가해적(不可解的)인 존재로 각인되어서, 연약하고 미련한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항상 두렵고 떨리며 그 앞에서는 철저히 엎드려야만 상대할 수 있었다. 모세 시대 만해도, 백성들의 접근을 엄격히 금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성령도 아주 특별한 이들(왕-제사장-예언자 같은)에게만 부여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틀의 대변화도 역시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며 열어주셨다.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주시면서부터였다. 아주 낮은 자로 오시되, 평생을 온유하고 겸손한 자로 사셨고,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두려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친하게 부르며, 기도하도록 안내하셨다. 관계 개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십자가에 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주시면서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의 사람과 자녀로 나아가 살아가게 길을 활짝 열어주신 일이었다. 


이 일이 왜 그리 중요할까? 신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때, 인간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란 찬송가사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능자인 신에 대한 뜨거운 믿음으로 살아갈 때, 그래서 신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때, 그가 직간접적으로 받는 삶의 변화와 축복은 상상을 넘어선다. 그는 진정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큰 일’(행2:11)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바로 그를 받은 자들에게, 자신 스스로에게는 물론 세상을 놀라게 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선물들을 안겨 주셨다. 그때의 그들 120명은 승천하신 주님의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에 의지하여(행1:4-5), 한곳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있었는데(1:14), 오순절 아침에 그들로서는 존재가 새로워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였다. 


1) 하늘로부터 임하신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으로 그들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면서, 그들 모두가 각각 다른 나라의 언어(말/방언)를 말하기 시작하였다(1-4절). 새 언어, 새 가치, 새 존재와 삶을 말하는 자들이 역사의 지평에 등장하였다. 


2) 대 소동(騷動)이 일어났다. 그것은 당시 오순절을 지키려고 해외 디아스포라들(교포)이 예루살렘에 체류 중이었는데, 바로 그런 경건한 사람들이 예수 제자들의 방언 소리를 듣고 그 신기함에 더욱 놀라고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외국 한곳에서만 온 자들이 아니였다. 무려 중동,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지역에서 온 약 15개국 출신 교포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 모두가 다 함께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놀람의 이유는 세 가지였다(5-12절). 


3) 하나는 제자들의 방언이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의 방언이고, 그것도 서로 다른 지역 언어들이었음에도, 저들 제자들은 그들 모두가 다 알아듣게 말하였다(6-11절,상). 다음은 그런 외국어 방언들을 말하는 자들의 출신이 자기들이 무시해 온 갈릴리 천민(賤民)들이라는 점이었다(7절). 셋째는 그 방언의 내용과 뜻이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11절). 


4) 성령의 뜻은 분명했다. 예수와 그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자 하심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도록 이끌고자 하였다. 그런 일에 지금 이 놀라운 경험에 접촉한 해외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그때부터 앞장세워 사용하시려 함이었다. 이는 언어와 문화적 이해와 하나님 이해도에서 이들은 가장 적합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계기로 율법은 성령을 통하여 복음의 옷을 입고, 온 세계로 날갯짓하게 되었다.


2. 구약 / 욜2:23-32 /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다 --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본문 요엘 예언서는 성령의 이러한 대중화(大衆化) 시대가 머잖아 실현될 것을 예고한 내용이었다. 결코 성령강림이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계획하시고 예고하신 은총의 사건이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이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 온 세계 만민을 품는 시대, 모든 세대 계층을 품는 시대, 모든 육체의 장벽들을 허무는 시대를 열리라는 예고의 말씀이 있었음을 전하는 내용이다(28-29절). 


그 예언이 바로 예수 승천 후, 오순절 아침에 하늘 문이 열리면서 이 땅에서 성취된 것이다. 그야말로 갈릴리 민중들이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집단으로 받게 되면서부터 시작하여, 유대 디아스포라들의 입술의 증언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까지 넘어서 세상 땅끝까지 그 은혜와 구원 생명의 물결이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애매모호하게만 생각하던 만민들이, 예수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로소 뵙기 시작한 것이다. 가까이 계신 임마누엘의 주를 만나게 됐다.

그야말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라’(28-32절)는 요엘의 예언이 오순절 사건과 그 결과를 통하여 성취된 것이다. 


3. 복음서 / 눅11:5-13 / ”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않겠느냐 “


이제 중요한 과제는 이런 귀하고 소중한 성령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 모시는 일이다. 이 과제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그 방법과 길을 가르치셨다. 곧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적극적 행위의 기도(祈禱)였다. 


본질상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간절히 구하는 일에는 외면하지 못하신다. 그것도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는 더더욱 피하질 못하시고 허락하신다. 그때 가장 우선적인 선물이 제공되는 데, 그게 곧 당신을 뜻과 힘을 대변할 성령이시다. 이 성령을 받게 되면, 인간은 자신이 구하는 것 그 이상을 받게 되고 큰 은혜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명심하고, 이제 우리 모두는 이 강림 절기에 성령의 체험자로서 거듭나야 하겠다. 


o 성령강림으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시고 가까이서 돌보시며 가장 좋은 것을 향유하게 하시려는 하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 모두는 성령 안에서 자신을 개방하시고 누리게 하고 싶어 하시는 이 하나님을 적극 사랑하자. 방법은 그를 찾고 의지하는 기도하는 삶이다. 지금은 바로 그런 때이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새 시대와 새 삶을 이루자. 그러면 모든 것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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