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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후(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신년주일

관리자 2024-12-31 (화) 22:21 3일전 33  

본문) 마3:13-17, 사66:18-23, 계21:22-22:5 



오늘은 성탄 후 둘째 주일이다. 짧은 성탄 절기의 끝 주일이다. 하지만 을사년(乙巳年)인 2025년을 여는 새해 첫 주일이기도 하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지난 해를 보내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신 모든 설교(說敎) 동역자들에게 남다른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기쁨의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한다. 뱀띠라서 별로 때에 대한 호감을 못 갖는 분들이 많겠지만, 성경에서 뱀에 대한 우리 예수님의 한마디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절)는 지침을 그의 파송자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진짜 어려움이 중첩된 목회 현장에서의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지혜라 생각된다. 행 6장에서도 교회가 힘겨워졌을 때, 가장 필요한 인력이 바로 성령충만하고 신실한 믿음이 있는 것과 함께 지혜를 갖춘 일꾼들이었다. 그곳은 물론 집사들 세우는 경우였으나, 지도자인 목회자에게는 더욱 지혜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고 본다. 오늘날 지혜롭지 못한 목회자들도 많아서 우리 현장 교회가 매우 곤경에 처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부디 성령 충만과 함께 지혜까지 충만하여, 우리가 섬기는 교회 현장과 관련된 모든 선교 현장들이 만사형통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는 축복의 멋진 해가 되도록 기도하자. 특히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교회와 목회자들의 지혜로운 처신과 증언들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추하지 않고 성별된 이름의 소유자로 사역하도록 겸손히 행하자.


오늘 우리가 받게 되는 세 본문 말씀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성탄하신 예수의 등장으로 이 세상의 질서, 특히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질서가 어떻게 새로운 틀을 구축하게 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배우게 되는 말씀들로 보인다. 


그중에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아브라함의 자손, 그러면서 구원받은 자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장 기초적 단계가 되는 물세례의 의미와 그 중요성에 관련된 영적 메시지가 새삼스럽게 전한다. 이런 물세례에 관련된 성경의 증언은 결코 옛것이 아니고 가볍게 듣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전에 받은 물세례의 흔적과 의미를 다시 되새기면서, 거기에 부합된 삶을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서 말씀은 포로기를 마치고 귀환한 유다인들과 동행자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며, 그 영광의 은혜를 보고 누리게 되면서 시작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신 여호와를 향한 예배자들의 삶의 새 관계가 설정될 것을 예고한다. 그러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도 거론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지상의 백성들 사이에서 교제를 위하여 연결 사역을 감당할 인물군들이 등장할 것도 예고한 내용이다. 정기적으로 나올 때로 알려 주셨다. 곧 성회로 모일 때인데, 바로 매월 초하루(월삭)와 매 안식일이다. 


그러면 계시록의 무슨 내용인가? 그렇게 하나님과의 예배와 교통을 이어간 사람들이 그 단계를 지난 후인 하나님 나라로 이어지게 될 삶에 대한 증언까지 소개된다. 그곳은 지상의 것과 같은 것들은 넘어선 모습이다. 계시록의 증언을 보면, 지금의 지상의 것은 모두가 일시적인 것들로서 그림자요 하늘에게 만날 세계는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본체(本體)가 상존하는 곳이다. 


주목되는 것은 그곳에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는 점과 동시에 들어가게 되는 자격자들에 관한 증언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불가한 자는 속된 것, 가증한 것,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반면에, 그곳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게 허락된 자들은 조건이 딱 하나이다. 곧 그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된 자들이다(27절). 


그렇다면 그들의 이름이 언제 그곳에 기록된 것일까? 매우 궁금한 부분이다. 우리는 그 궁금증을 오늘의 세 분문 내에서, 곧 복음서의 내용에서 강조된 물세례에 관한 증언에서 풀 수 있다. 우선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 하늘 입구에서 심사받은 후에야 등제된 것이 아니리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훨씬 그 이전인 우리의 지금의 이 지상에서의 삶의 과정에서 이미 내 이름을 이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그곳 하늘에 까지에도 등제해 두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받은 교회에서의 물세례 때문이다! 


잠시 세례를 복기해 보자. 우리가 이 땅에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공동체 앞에서 죄를 회개하며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면서 물세례를 받으면, 그때 내 이름은 주의 몸된 교회의 세례받은 자의 교인명부에서 등제 되는데, 바로 그 이름이 지상의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인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록에까지 유효하게 이어진 결과라고 본다. 이는 주께서 말씀하신 영적 원리,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마18:18)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상의 물세례와 영원한 나라에서의 생명록에 오른 이름은 하나라는 결론이기도 하기에, 우리의 물세례의 가치와 무게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큰가를 인식하게 해준다. 


1. 복음서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해 임하심을 보시더니 “


본문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가셔서 요한의 물세례에 직접 참여하신 사건을 전한 곳이다. 물의 예식은 그 이전에도 바리새인의 전통에서 존재했다고는 보지만, 요한처럼 회개의 징표요 새 삶의 다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징표로서의 물세례 행위는 새로운 이정표를 구축하는 갱신 운동이었다고 본다. 특히 요한의 강력한 영적 말씀의 카리스마가 커서, 전국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수많은 백성이 참여하는 흐름에 우리 예수께서 친히 함께하신 것이다. 


이런 예수 동참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세례의 역할에 따른 가치와 무게감을 하늘에서도 직접 공인(公認)하셨음을 말한다. 그것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예수님이셨기에(요3:5 참조), 이 물세례 행사에 당신이 친히 참여하신 것은 그야말로, 새 삶을 취하려는 모든 인간에게는 그때부터 피할 수 없는 구원의 필수적 코스(질서)가 되고 만 것이다. 세계교회가 취한 입(入)교인의 공적 필수코스로 자리한 첫 과정이 됐다. 그러기에 교회 출석하지 않다가 죽게 된 모든 이들에게는, 죽기 전에라도 이 물세례만은 꼭 받고 가려는 마음을 품게 할 정도의 최후의 관문(?)이 되기도 했다. 


1) 요한은 자기 앞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려는 예수님의 모습에 당황하면서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어찌하여 당신이 내게로 오십니까’라며 극구 사양했다(14절). 그것은 세례는 본질상 죄인을 위한 구급(救急) 조치였기에, 흠이 없으신 예수님의 참여는 격에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요한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2) 오히려 요한에게 ‘이제 허락하라’고 명령하시듯 요구하셨다(15절).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덧붙이셨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義)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큰 자가 작은 자와 함께 이루시는 이 물세례 예전이, 바로 인간 되어 오셔서, 연약한 인간을 돕고 새롭게 거듭나도록 협력하시려는 당신의 이 영적 사업을 이루는 일이 됨을 주께서 친히 설명해 주신 것이다. 이는 요한이 시작한 이 물세례라는 구원을 향한 첫 다리 구축(構築)을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온 천하에 입증해 주신 것이다. 


3) 그렇게 해서 물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신 예수님에게 하늘의 아버지는 그를 인정하고 축복하시듯 놀랍고 아름다운 선물 두 가지를 안겨 주셨다. 하나는 성령이셨다. 그것도 비들기 같은 성령이셨다. 이는 앞으로 연약한 인간으로써 악한 세상 현실과 치열하게 싸워야하실 당신의 아들에게, 성령이 순결함과 함께 승리하시도록 아버지가 안겨 주신 응원꾼이었다. 또 하나는 거친 세상에서 화목 제물의 사역을 펼쳐가실 당신의 아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뜨거운 격려였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는 모든 세례자를 위함도 된다. 


2. 예언서 / 사66:18-23 / ”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


본문은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기의 온갖 시련을 넘어서서, 이제 귀환한 백성으로, 거듭난 존재들로 다시 초심의 아브라함의 후손의 회복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미래의 청사진을 담아 주신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의 적용 대상은 혈육상의 이스라엘만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행위와 사상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함께 받아 여호와의 영광을 함께 맛보게 된 모든 세계인들을 포함한 내용들이다. 


이런 구성을 위하여 여호와는 이런저런 연속된 일련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보내기도 하셨고 또한 모으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이 세상의 참 구원자이시고 역사의 주이심을 알리셨고 보여 주셨다. 동시에 그중에 그 마음과 영혼이 열린 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불러 모으셨다. 자연스럽게 선교와 섬김의 활동을 통하여 세상 안에 당신의 백성 그룹을 조성하셨다. 그 바람에 숱한 이방인 예배자들이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셨다(20절). 


규모가 커지면서, 소위 글로벌(global-세계적인) 주님이 되시면서, 여호와는 그들을 위한 영적 관리체제도 함께 구축하시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셨다. 본문의 후반부는 바로 그런 새로운 구원의 영적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소개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지금의 우리 교회 일반에게는 시행되고 있는 유형이기도 하기에, 우리의 뿌리를 찾는 기쁨을 안겨 준다. 


1) 첫째는 당신과 백성들(회중) 사이를 가교할 역할을 수행할 인물군(人物群)을 만드셨다(21절).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다. 이들은 지금의 교회의 성직자와 그를 돕는 가족들이다. 이들이 바로 모세와 아론저철 하나님과 백성들의 중재자요 가교(架橋)역할을 수행한다. 


2) 둘째는 모일 자이다. 바로 성도군(聖徒群-회중)이다(22절). 이들의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여 여호와 앞에 서게 될 자들이다. 그의 자손들과 함께 그의 이름이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될 무리들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그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바로 물세례를 받으면, 입교한 공식적 이름으로 보인다. 아니 영원한 나라의 생명록에 기록된 그 이름의 주인공들이다. 


3) 셋째는 집회 내용이다. 성별되고 구별된 이들은 수시로 여호와 앞에 성회(聖會)로 모여야 한다. 맺어진 관계를 잇고 강화하며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한 것이다. 그를 위하여 여호와가 제시하신 회집(會集)은 두 가지였다(23절). 하나는 매월 초하루 모임이다. 소위 월삭(月朔) 모임이었다. 그리고 매주마다 모이는 안식일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모든 혈육(생명체)들이 여호와 앞에 나와서 예배드려야 하는 때이다. 이것이 우리가 주일을 성수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3. 계시록 / 계21:22-22:5 / ” 무엇이든지 속(俗)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生命冊)이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본문은 하나님께서 신앙 때문에 밧모섬에 유배당하고 살아왔던 당신의 종인 요한을 하늘로 부르셔서, 그곳이 어떤 곳이며 누가 그곳에 와서 살게 될 것인지를 안내하며 소개한 내용이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미리 알게 하는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해 준 내용이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들이다. 


1) 그곳의 특징은 성전(聖殿)이 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서 보는 일정 규모의 건물형 성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과 어린 양께서 그 성전이 되어있는 곳이었다(22절). 그리고 해와달 같은 광명체가 필요치 않고, 하나님에게서 비치는 영광의 빛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곳은 밤이 없는 곳이었다(25, 22:5절). 수정 같은 맑은 생명수가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와서 강좌우에 생명나무를 충만히 맺게 함으로써, 그곳의 거주자들이 영생을 누리게 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게 되어 그 어떠한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곳이었다(22:1-3참조). 


2) 그러면 그런 좋은 곳에는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 들어 가는가? 들어 갈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올릴 영광과 존귀를 드리며 살아온 자들이었다(26절). 그러기에 평소의 예배의 삶이 얼마나 천국 입국에 필요한 요인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동시에 들어갈 자는 그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회개의 징표로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으면서 그의 이름을 지상 교회의 장부에 올린 사람을 말한다. 반면에 저급한 생활에 빠져 살아온 자나 가증한 우상을 숭배해온 자나 거짓말을 일삼아 살아온 자들이 못들어 갔다. 


3) 그곳은 하나님과 그 어린 양 보좌가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를 섬기는 종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데,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었다. 


o 우리는 새해 새 삶과 새출발을 다짐한다. 이는 새로운 복을 받아서도 가능하지만, 그러나 이전에 받은 물세례와 같은 구원의 선물을 재삼 소중히 여기며, 거기에 부합된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으로서도 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름은 이미 하늘 생명체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물세례란 구원의 선물을 받은 자로서, 이제 걸 맞는 이름값을 하며 살아가기를 힘쓰고 다짐하자. 하나님의 향한 예배와 경배드리는 일에 더욱 정진하자. 세속의 유혹에 단호하게 거절하자. 매사에 거짓을 버리고 교회를 섬기며, 복음의 일꾼답게 살자. 하늘 백성에 걸맞게 코드를 맞추어 살아가자. 새해는 아브라함의 참 자손의 길을 즐겁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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