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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6) - 세 분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신학교육주일

관리자 2023-02-06 (월) 18:19 9개월전 171  

본문)  마 14:1~12, 출 6:2-9, 계 12:7-12   


주현절 여섯째 주일이다. 봄을 알리는 입춘(立春)도 지나고 이월의 한복판에 들어가고 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의 젊은 여성 동역자인 임보라 목사가 갑자기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되어서, 그 여파와 충격이 우리 한국교회와 교단 안에도 컸다. 목사라도 누구나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가는 지 오는 지 모르게 대부분 조용히 움직이다 떠나는 데, 이번의 임목사의 소천 사실은 그 충격과 여파가 큰 게 사실이다. 사인은 모르나, 그의 죽음이 준 메시지는 매우 크다.  


왜 그런가? 그는 한국교회 안에서 그 누구도 가지 아니한 길인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인권과 보호를 위하여 줄기차게 앞장서서 일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그는 교단의 내부는 물론, 보수교회가 대세인 한국교회로부터 ‘이단(異端)’교회와 목회자란 오명까지 뒤집어쓴 체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시련의 세월을 흔들림이 없이 그들 소수자들의 곁을 지키며 복음의 사명을 감당해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이 시대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하고 있는가’를 계속 되묻게 하여 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교단 내부의 줄기찬 반대와 공격은 그에게 큰 부담과 아픔(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성소숫자 문제와 그들을 위한 선교활동이 비성서적이라는 공격과 함께, 그런 활동이 우리 교단이 가진 진보적 색깔에다 이단적 색깔까지 덧칠되어, 그렇잖아도 취약한 교단의 성장과 교세를 허물어뜨릴 것이라는 내부적 공격들도 거셌기 때문이다.  


좋게 보면, 모두가 우리 교단을 사랑해서 나온 반발이라고 보지만, 그 내용에 들어가면 부분은 틀리고 부분은 수긍할 것도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의 처신과 목양의 행보는 늘 우리에게 이것을 질문해 주었다. 예수가 누구신지, 선교가 무엇인지, 교회는 어떤 곳인지, 이 시대 그리스도인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그 중에서 우리 기장은 과연 교회들 중에 어떤 교회여야 하는 지를 늘 질문해 주었다. 그게 우리에겐 괴롭고 아프면서도 신선했다. 


이런 질문은 주어진 현상을 정당시하고 우선시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믿고 의지하는 성서와 진리가, 그리고 예수께서 보여주려는 세계에 눈이 뜬 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귀중했다. 지금 우리의 진정한 고민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교세에 비하여 많이 허약한 우리 교단이라는 데에서 나온 건가, 아니면 우리의 출애굽 정신을 상실하여 다시 애굽의 노예 시절에 부스러기처럼 먹었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한 데서 나온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고민은 생산과 창조로 이어지겠지만, 어리석은 고민은 퇴보와 낙후로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득권자인 율법주의자들은 세상을 이분법으로 몰면서, 이웃 사랑을 외면하고 오히려 수많은 민중들을 죄인들로 몰았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들로부터 매도당하고 밀려난 사회적 죄인들을 가슴에 품으셨고, 심지어 부정한 무리들이 살던 사마리아도 계속 찾으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찾고자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우리 기장이 부르심을 받은 자리가 바로 그 예수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마침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제정한 신학교육주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실 자리가 어디이며 그 대적자인 사탄이 탄식하며 쫓겨날 자리가 어디인지를 제대로 보아야만 한다. 제자리가 아닌 엉뚱한 자리를 우리의 것으로 삼으려하는 한, 우리는 계속 헤매게 될 것이다. 이게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과제이다. 그리고 고인 임 목사의 죽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세 본문의 흐름은 서신서인 계시록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었던 전쟁이 있었고, 그 결과가 하늘엔 평화이지만 땅에는 전쟁과 고통으로 이어진 상황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하늘의 승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당신의 승리를 위하여 혼란과 고통에 빠진 이 낮은 세상에까지 찾아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고 그 밑에서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신다. 그런 눈으로 복음서와 출애굽기의 내용도 살핀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무엇인가? 우리의 생존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성령과 악령의 싸움, 참과 거짓의 싸움은 하늘에서부터 먼저 있었고, 그 승리도 있었듯이, 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믿으며(마6:10) 사는 일이다. 그럴 때, 그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시고 보호하시며 승리를 안겨주시는 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아래의 본문 분석과 흐름은 본 홈페이지, 원장코너-설교자료-2020.2.11.자, 주현절(6)에 기록된 내용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1. 하늘에서도 있었던 싸움 : 패배 후 땅으로 밀려난 사탄 


오늘의 계시록 증언은 우리에게 하늘에서 있었던 매우 놀라웠던 사건을 알린다. 그것은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는 소식이다(7절).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참 놀라운 증언이다. ‘하늘은 본래 부터 오직 평화와 기쁨과 생명만 가득한 곳이다’라는 우리의 보편적인 상식과 전제를 깨뜨리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정보는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준다. ‘하늘이 누리는 평화와 생명과 기쁨은 악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얻어낸 열매이지, 결코 그냥 주어지고 것이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또 다른 영적 메시지도 전한다. 하늘의 그런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기업으로 누리려고 하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그냥 주어지기만 바라는 것이 답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땅에서부터 어둠과 악의 권세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낸 승자여야만, 하늘의 그 기업을 상속(相續)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더 살펴보자. 


1) 그 전쟁은 천사장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큰 용과 그의 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다(7-8절). 그 용(龍)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면서, 온 천하를 꾀는 자였다(9절,사51:9, 시74:13-14참조, 권고용 서적, <사탄의 생태>.제임스 칼라스. 1979. 컨콜디아사). 


☞그 용은 창조 시부터 에덴동산에서만 분열 조장한 것이 아니라, 에덴 밖에서도 꾸준히 분열과 갈등과 대립의 현장들을 주도하였다. 그가 나라를 흔들면 나라가 분열되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분열되며, 공동체와 교회에 들어서면 교회와 교인들도 분열되었다. 그는 수많은 분열과 대립의 이유들을 가지면서, 모두를 갈등하고 혼란하게 만들었다. 


2) 욥기에서도 보면, 그런 그가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사역할 때에도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게 하였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밤낮 참소하던 자였다(19절). 종국에는 그가 하나님까지도 의심하고 형제들까지도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들었다. 하늘나라까지도 의심 천국으로 만들려했다. 


3) 그런 그가 한순간 하늘에서 쫓겨났다. 그 용의 부정적 행태를 지켜보시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세력들의 공격 때문이었다(10-11절). 그들에 대하여 하늘 소리는 이렇게 전한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 그의 성자이신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권세, 그리고 성령에 의한 어린 양의 보혈의 힘과 말씀에 의지한 순교자들의 목숨을 내 놓은 믿음의 힘의 연합에 밀려서(10-11절), 결국 그 용의 세력은 천상에서 퇴출되고 말았다(8-9절). 그러니, 하늘과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어떠하겠는가? 즐거워하게 되었다(12절). 평화와 생명의 요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용은 어디로 쫓겼나? 바로 땅으로 쫓겼다! 혼자가 아니라, 용이 그의 하수인(마귀/악마/귀신 등)들과 함께 땅으로 쫓겨났다. 그러면 땅은 어찌 되는가? 마귀의 최후의 요새(要塞)가 되고 말았다. 더 물러날 곳 없이 최후까지 그의 ‘꾀는 능력’을 쏟아 부을 무대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세상이 격동하고 요란한 참 이유이다. 희망은 바로 여기에서 부터이다. 하늘의 승리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런 위기의 빠진 세상(땅)을 마귀의 활동 무대로만 맡겨 두실 수 없었다는 점이다. 


4) 그 점에서 오늘의 계시록 증언은 놀라운 복음을 예고하였다.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憤)내어 세상으로 내려갔다’. 사탄은 무엇을 먼저  알았다는 것인가? 자기를 내쫓은 하늘의 메시아가 자기들이 머문 지상의 땅에까지도 내려와서 자기들을 가만두지 않고 자기 활동을 제어(制御)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다(12절,하). 


2. 성자 예수 앞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 마귀 세력(헤롯) :


그렇다. 하늘의 패배자인 사탄의 사전 인지(認知)력은 정말 놀랍도록 정확했다. 그것은 하늘에서 자신을 쫓아내셨던 그리스도가, 그 자신이 인지했던 대로, 나사렛 예수의 몸을 입고 자기가 당시의유대의 독재자인 헤롯을 앞세워 마음껏 왕 노릇하고 있었던 유대 땅에까지 내려오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성육신은 연약한 인간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으나, 마귀에게는 사형선고였다. 


1) 헤롯의 예수 소문에 대한 반응, 즉 예수는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라고 토로한 것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들어와 있던 사탄의 예지(叡智)에서 나온 것이었다(1-2절 참조). 하늘의 권세자인 그리스도에 대한 쓰라린 추억에서 나온 것이었다.


2) 헤롯에게 예수는 세례 요한을 생각나게 하는 존재였다. 예수님은 요한의 선포를 좇아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온 백성에게 선포하셨다. 이런 예수의 천국 선포는 마귀의 추종세력인 헤롯에게는 최대의 공포였다. 이미 그 안에 있는 마귀는 천국의 위력과 그 능력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예수 앞에서 쫓기고 있는 존재였다! 그게 어디 헤롯뿐인가? 사탄의 모든 하수인들인 악령/마귀/귀신/악한 세력들 모두는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무조건 엎드려 빌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에서다(막1:23-24참조). 


3) 헤롯은 이미 패배감에 떨었다. 선지자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순교의 제물로 삼았는데-, 이는 이미 큰 용이 하늘에서부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의 피에는 이기지 못하고 쫓겨난 전적(前績) 때문이었다(계12:11절 참조). 무엇보다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헤롯에게 참변을 당한 세례 요한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당신과 복음을 위한 소중한 제물로 공인하시고 그를 가슴에 품으셨기 때문이다. 


☞ 그렇다. 하늘의 권세자는 당신을 위한 희생자를 꼭 품으신다! 그러기에 하늘과 그 안에 속한 자들(성령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즐거워하여야 한다! 출애굽기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모습은 그 아주 귀한 사례이다. 


3. 성부 하나님의 자기 백성 기억하시고 돌보시기


구약도 성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배려와 챙기시는 모습을 담고 있다. 400여년 넘도록 대제국 애굽의 노예로 짓눌려 탄식하며 신음하던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하셨다. 오직 능하신 하나님 당신만이 어둠과 용의 세력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빼내어 당신의 진정한 백성들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을 그곳에 개입하게한 매체(媒體)가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탄식과 신음 소리(부르짖음)이었다(5절). 


☞ 그들의 신음(탄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조상들에게 일찍이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언약 하신 바’에 대한 약속을 기억케 했다(5절.하). 그래서 주님은 그들 용의 세력들을 형벌로 심판하시고 그 어떤 대가의 속량(贖良)도 치루셔서도, 그들을 그곳에게 빼내어, 당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그들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셨다. 이 모든 일들은 모세를 앞세워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애굽의 무거운 멍에에서 빼내고 건지며 약속의 땅에로 인도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하시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7-8절). 


결론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온 땅 전체의 주님이시다. 그런 하나님과 가까이함이 복 중의 복이다. 잊지 말자. 사탄은 언제나 곁에서 우리를 노려본다. 참된 백성으로 사는지, 사이비로 사는지-. 조그만 틈이 보이면, 감시자요 분란자로 우리를 계속 흔들어댄다. 정신을 차리자. 하늘의 패배자인 사탄의 노리갯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특히 우리 역사 속에 위선과 거짓 세력으로 행세하는 사탄의 행태를 깊이 경계하며 그의 분열책에 넘어가지 않게 살자. 믿음의 훌륭한 전사인 고 임보라 목사를 기억한다. 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도 이제 사랑과 믿음으로, 주님의 자녀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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