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6:13~20, 출 19:1-6, 벧전 2:4-10
주현절 일곱째 주일이다. 절기의 마지막 주일이자, 사순절 직전 주일이기도 하다. 민속절기로는 우수(雨水)여서, 겨울 추위도 보내면서 봄맞이를 대비해야할 시기로 접어 들었다. 이런 때, 지난 6일 이웃 나라인 터어키의 튀르키예 지역과 시리아에서 발생한 진도 7.8의 강진으로 인한 대참사는 온 세계를 공포와 슬픔의 도가니에 빠져 들게 하였다. ‘지구의 종말이 온 줄 알았다’는 어느 현지인의 증언은 그 때의 참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전한다.
우리 시야에서 보여진 그곳 아파트와 빌딩들이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모습은 실로, 상상을 넘어서는 참변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죽게 된 사람들과 이재민들이 수 십 만에 달한다고 한다. 일기 역시 추위가 심해서, 생존한 이들도 거주지 불안, 식량 부족, 실종 가족에 대한 충격 등등으로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존 위기에 몰린 현지인들의 공세 때문에 치안 불안도 심각해 진 듯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들은 분명 강도만난 이웃들이다. 세계인들이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일은 마땅하다. 비록 그들이 우리와 모든 것이 달라도, 그들의 모든 삶이 강진이란 재난의 강도를 만나 송두리째 빼앗긴 상태로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기에, 우리 역시 그들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할 때이다. 어떤 형식이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나눌 수 있어야 하겠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눅10:37)는 예수의 지시를 좇아야 할 때이다.
오늘은 마침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을 대비하는 말씀들로 가득하다. 사순절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애를 보내신 기간으로서, 그 때의 주님의 행보는 당신을 죽이려는 이들의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여정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말씀은 주님이 함께 동행 할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려는 말씀들이다. 이는 마치 지난 3년간의 제자 수련을 마치고 졸업 시험을 통하여, 최종 합격자들을 배출하시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상대로 치룬 졸업 시험의 주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였다(15절). 그러면서 정답자에게는, 주님이 그에게 칭찬 및 격려와 함께 자격증(資格證)을 수여하신다. 이런 모습은 구약의 내용과 서신서의 내용에서도 비슷하다. 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제를 부여하시고 거기에 부응하는 무리들에게는 백성의 자격증을 주신다. 성령께서도 과제와 함께 그 과정을 합격하는 자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신다. 그래서 그 자격증을 수여받은 이들이 그 때부터 주의 이름과 권세로 하늘의 역사를 땅위에서 펼치며 일한다.
사실 요즈음의 한국교회들 중에는 예수 없는 교회들이 많다는 소리들이 높다. 왜 그런가? 예수와 그의 말씀을 내세우긴 하지만, 설교 강단은 계속 기복(祈福)주의적 설교만 무성하고 예수의 마음과 말씀과는 상관없는 설교자의 자기 이야기들만 풍성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예수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신자, 예수 냄새는 전무한 체 오직 세속적 행태만 보여주는 교인들만 많아서, 교회가 세상에 생명과 감동을 못주고 대신 실망만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연고로 본다. 재학만 했지, 졸업을 못한 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연고 때문이다. 당연히 예수 믿는 자의 정체성이 허약하다. 자긍심도 부족하다. 아는 예수께서 안겨 주신 능력과 기술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우리는 오늘에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배워서 베드로처럼, 모세처럼 산돌이요 모퉁잇돌 같은 복음의 능력자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1. 복음서 / 마16:13-20 /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당신의 때가 되신 예수님은 이제 시선을 제자들에게 집중하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당신을 자신의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인식했을까? 확인이 필요했다. 그 내용과 함께 수준도 확인하셔야만 했다. 주님에게는 제자들이 당신의 미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던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라는 질문은 제자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라, 당신의 남은 여정을 마무리할 방향을 결정지어야 되는 물음이기도 했다.
정답이 나오느냐, 오답이 나오느냐가 아주 중요했다. 지난 3년간에 양육해낸 당신의 제자들의 답변은 당신의 지내 오신 사역의 답장이자 증언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보아야지, 단순한 스승 랍비로 보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그러기에 제자들의 답변을 기다리는 순간은, 예수님에게도 짧지만 매우 긴장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입을 열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6절).
기다리던 정답이 터져 나왔다. 시몬의 그 고백은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남은 새 출발을 힘입게 밑받침함과 동시에, 제자들 전체와 예수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보게 되는 합치된 시각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즉시 만족감을 드러내시면서, 시몬을 축복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주님의 이 베드로 칭찬에는 두 가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베드로 자신의 영광이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그가 복 받은 인물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 복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아들의 신분을 제자 베드로에게 알게 해주셨던 복이었다. 마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계명과 율법을 알려주신 것과 흡사하다. 이는 베드로의 위치가 아주 달라졌음을 알린 내용이기도 하다. 또 하나, 주님은 그의 앎이 혈육에 의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신다. 은총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에, 결코 교만할 일이 아님을 전하는 주님의 견제도 함께 주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출현을 예고하신다(18절). 이 약속의 성취는 부활 이후의 것이지만, 주님의 이 말씀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전거(典據)가 되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敎會-/에클레시아/헬)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여기서 ‘베드로’란 이름이 자연인 시몬에게 부여된다. 그 의미가 바로 바위, 곧 ‘반석(盤石-petra)’이다. 아람어로는 ‘게바’가 된다(요1:42,고전15:5참조). 음부(陰府)의 권세는 ‘죽은 자들의 나라’의 세력을 말한다. 결국 허무와 파괴의 세력은 부활하신 분의 교회를 파괴할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할 부분이 있다. 이 반석은 개인 시몬인가, 그의 고백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여기에서 카톨릭과 개신교회의 입장이 달라진다. 개인 베드로로 보는 곳은 카톨릭이다. 그들은 지금도 로마 교황청과 바티칸 성탄을 베드로성당으로 본다. 교황을 베드로의 후예로 본다. 하지만 우리 개혁교회는 반석을 그가 고백한 신앙고백으로 본다. 그것은 그의 고백 자체가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이고, 교회는 그 고백 위에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주의 교회에 권세(權勢)들이 부여되었다. 천국 열쇠가 주어졌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게도 풀리는 그런 권세가 부여되었다(19절). 이것은 주님이 지상에 세운 당신의 교회에 하늘과 땅을 열고 닫을 전권을 위임(委任)하신 일이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해석함을 통하여 그러한 권세를 행사한다. 이 매고 푸는 전권은 하나님의 뜻을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차원의 것이다(5:1-2,7:24-27참조). 추방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한다(18:15-18참조). 치리권과 설교권으로 하나님 나라의 출입을 결정한다.
2. 구약 / 출 19:1-6 /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게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본문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행진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 3개월 만에 시내 산에 도착하여, 여호와 하나님과의 첫 대면에 들어간 현장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앞에서의 복음서의 제자들과의 질의 응답하는 모습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모세를 중재자로 삼아(3절)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言約) 체결에 들어가신다.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다.
1)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 오기까지의 삼 개월에는 르비딤의 놀라운 경험이 있었다. 두 가지였는데(출 17장), 하나는 맛사 또는 므리바 사건으로 불리우는 물 사건이다. 므리바에 마실 물이 없어서 폭등에 가까운 일이 발생하자, 여호와께서 호렙 산의 바위 위에 반석을 쳐서 백성의 목마름을 해소시키셨다. 또 하나는 그곳에 아말렉이 쳐들어와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면서 첫 전쟁을 치루게 되었는데, 그 때에는 모세는 손들고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싸움을 이끌면서 대승하였다.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 칭한 경험들이 있었다.
2) 본문은 그런 생생한 여호와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경험한 백성들을 상대로 여호와께서 영원한 언약을 맺고자 하신 것이다. 이를 위해 여호와를 뵙고자 모세가 시내 산으로 올라오자 여호와께서는 야곱과 이스라엘 집 모두를 상대로 하여, 언약 체결에 들어가신다(3-6절).
3) 먼저, 여호와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이곳까지 인도하셨는지를 회상하게 하셨다. 출애굽을 통하여 그들을 종살이에게 해방시키시고 지난 3개월간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그들을 마치 독수리 날개로 그들을 업어 그곳까지 인도하셨는지를 백성들이 보았음을 상기시키셨다.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가 어떤 신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시려는 조치였다.
4) 여호와는 당신을 알리는 계시(啓示)를 하셨다. ‘온 세계가 다 당신에게 속하였다’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5절, 상). 이는 여호와가 세상 만물의 창조주요 조물주이시며 주인이시다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호와는 애굽에서의 노예살이에서 갓 해방되어 나온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언약을 맺고자 하신다고 밝히셨다. 그것은 그들 조상들과의 오랜 맹세를 지키고자 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5) 언약의 조건은 간단명료하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는 일이었다’(5절). 잘 듣는다는 말은 들은 말씀에 복종(服從-obedience)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불복종하고 거역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에 복종하면 살고 불복종하면 죽은 민족이 되겠다고 언약을 맺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는 언약 체결로 인한 복과 새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주셨다.
6) 모든 민족 중에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5절,하). 이는 예수께서 교회를 당신의 소유인 ‘내 교회’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신 모습이다.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당신의 소유로 삼겠다는 것이다. 버리지 않겠고, 계속 지키고 돌보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 얼마나 든든한가! 또 있다. 당신에게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6절). 제사장 나라란 입장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복을 온 세상 만민에게 전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동시에 거룩한 백성은 탁월한 여호와의 말씀과 율례와 지혜를 좇는 데에서 나온 열매이다.
3. 서신서 / 벧전 2:4-10 / “ 너희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예수께서부터 직접 교회의 반석이라는 별칭을 득했던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Living Stone)으로 보면서(시118:26,사28:16에 의거), 그를 주로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이 신령한 집인 교회가 되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권고한다(4-5절). 이 제사는 하나님 경외와 형제 사랑 안에서 나타난 삶의 행실이며(1:15-1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이기도 하다(출19:6).
그런데 이 보배로운 모퉁잇돌은 믿는 자에게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는 보배이지만, 불신자에게는 걸려서 부딪치고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7-8절, 롬9:33 참조). 베드로는 불신자들의 자유의지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피할 길이 없음을 그렇게 증언했다(8절.하 참조) 그러면서 믿는 자, 곧 모퉁잇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확실한 신분들이 있다. 바로 ‘택하신 족속-왕 같은 제사장-거룩한 나라-그의 소유된 백성’된 신분들이다. 그래서 그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신다(9절). 이런 체험은 시몬 베드로가 주님께 고백할 때 놀랍게 체험한 바 있었던 사실이다. 그렇게 주의 백성이 됨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공로나 노력이나 업적에 의해 얻어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10절, 마16:17,하 참조).
o 사순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가 예수의 교회를 이룬 지체들로서, 우리에게 은혜로 부여된 여러 영적 신분들을 소중히 인식하고 거기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예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확고히 믿고 살고 있는 무리들이다. 그러기에 주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며 그의 소유요 거룩한 백성으로 행동하며 살아가자. 모퉁잇 머릿돌 예수의 기이한 돌봄과 은혜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