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2:1~12, 사60:1-14, 갈 4:1-7
성탄절이다. 절기로서는 성탄절의 시작이지만 오늘의 경우엔 성탄일 자체이기도 하다. 교회력으로서의 성탄절은 년 중 7절기 중에 가장 짧다. 단 12일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성탄일-성탄 후 첫 주일인 송년주일이 걸쳐 있고, 간혹 성탄 후 둘째 주일인 신년주일도 맞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올해는 1월 첫 주까지만 성탄절기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송년과 함께 맞이한 성탄절이기에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코로나 판데믹의 큰 위협의 그늘을 통과하는 듯해서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충격과 아픔은 지난 대선에서의 윤석열 정권의 등장이라고 보인다. 그가 지난 6개월간에 보여 준 대통령으로서의 행보와 처신은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위험한 모습들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것이 너무 우려가 되는 사항이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믿기에 다행이지, 그들의 처신만보면 더욱 가슴 아프다. 무엇보다도 지난 10.29 이태원 참사에서의 158명의 참사자들과 그 유족들과 충격을 받은 국민들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흡사하다. 국민과의 공감대가 전혀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무리들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노동자들 대하는 모습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모습도 너무도 반 인권적이다.
그는 이미 이전에 자신이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을 포기한 것은 오래되었고, 언론 탄압이나 야당과 이전 정권 탄압에 전념하고 있고, 무자격들을 각 기업체의 요직에 심기에 몰두하고 있다. 협치의 포기는 물론, 검찰공화국의 위세를 확장시키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독재자와 왕권의 위세 과시에 거침이 없다. 이런 모습은 정상적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5년 임기도 금방인데, 어쩌자고 그렇게 덕과 지혜를 팽개친 고압적 지도자의 길만 가는 걸까?
이런 국가적 난국에서 맞이하는 성탄이기에, 우리는 저 베들레헴 말구유 낮은 곳에 아기로 오신 메시야를 다시 주목하게 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아드님이시고, 이 세상에는 왕(王)으로 오신 분이신데, 그 존귀한 분이 사람도 아닌 가축들의 밥통을 빌어서 탄생하신 일 자체가 지축(地軸)을 흔들기에 충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왕들과 권력자들을 향한 강한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었다. ‘지도자는 모두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인정을 받으라!’
성탄은 세상의 왕들의 갈등과 충돌로부터 시작된 날이었다. 왕들이란 누구인가? 왕의 왕으로서 아기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두 왕들이 맞섰다. 하나는 유대의 당시 왕인 헤롯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 동방에서 이 아기를 찾아 경배하려고 찾아온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었다. (참고로 기독교전통에서는 이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을 왕들로 본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헤롯은 전혀 모른 체 맞이했으나 박사들은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찾아온 것이다.
헤롯의 충격이 컸다. 자기들만 몰랐다는 것에 대한 충격에서가 아니라, 자기 말고 또 다른 왕이 자기 영역 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충격이 컸다. 그것도 외국의 최고의 외빈들이 경배하려고 찾아와 물을 정도의 왕의 탄생이라서, 헤롯 진영은 비상사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측근들 회의를 거쳐서 오실 왕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이다는 사실을 확인한 헤롯은, 박사들에게 그곳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8절).
분명한 교훈이 있다. 여호와는 당신을 사모하는 자에게 당신의 얼굴을 비추신다. 하지만 미워하거나 불신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모습을 가리신다. 사실 고대 중동 세계에서는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 통치자에 대한 기대가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위대한 인물들의 탄생을 지시하는 별들에 대한 사상이 있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야께서 오신다는 종말론적 믿음과도 맞물려 있던 주제였다.
그 기대에 부응해 박사들은 한 이상한 별(星)을 보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곳 유대 베들레헴까지 찾아 온 것이다. 온 세상의 구세주의 탄생은 이렇게 범세계적인 사건이었고, 하늘과 땅이 동원된 우주적 사건이었으며, 타(他) 종교인까지도 경배하고, 가축까지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 들여야 하는 사건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지근거리에서 가장 일찍 깨닫고 찾아와 경배해야할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놀랍고 기인한 일, 곧 동방 박사들 같은 외국의 왕들이 찾아와 오신 아기 왕에게 경배하는 일이 발생할 것에 대한 예고는 이미 이사야 예언자에게서부터 있었다.
이사야서를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때, 나라들과 왕들이 그의 광명으로 나아올 것을 계속 예고하였다. 나올 때 재물도 가져오고(5절), 그 집을 영화롭게 하며(7절), 섬길 것이라고 하였다(10절). 심지어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12절)고까지 선포했다. 이는 그가 인류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짓는 지렛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신 내용이어서, 실로 매우 큰 예언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신서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사람과 오신 후의 사람의 차이와 변화된 모습을 소개한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미성년 자녀처럼 살았다.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렸기에 종과 다름없이 지냈고, 초등학문 이수자로서 지냈으며, 율법의 엄격한 타율적 훈련을 받으며 지냈다. 하지만 오신 주가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져주시고, 성령의 선물까지 안겨주시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자녀가 되었고, 상속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의 성탄, 주님의 성육신 사건은 이 지구촌의 대변혁을 견인하였음은 물론, 그를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질적인 존재 변화와 가치 상승과 영원한 축복을 안겨주는 사건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제 세 본문 자체의 내용을 통해 그런 부분들을 확인해 보자.
1. 복음서 / 마 2:1-12 /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
예수님은 헤롯 왕 때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그 날의 특별한 사건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그들의 별의 인도를 받고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으면서 자기들은 그에게 경배하러 왔음을 밝힌 일이다(1-2절). 이들은 누군가? 다양한 설이 있지만, 대체로 점성가, 지혜자, 이방 민족의 대표들, 그리고 왕들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아무튼 이들은 매우 오랫동안 이상적인 세상을 열어 줄 위대한 인물의 도래를 고대하며 기다리던 인물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란 현지에서 접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그 당시의 고등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신봉자로서, 깊은 종말론 신앙으로 이상적 세상을 열어 줄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린 현자들로 보였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별을 보고 가슴 설레는 마음을 품고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매우 긴 여행길에 올라서 이곳 팔레스틴 유대 땅까지 순례해 온 일은, 실로 종파와 인종을 뛰어넘어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경배였음을 보여준다. 오신 메시야는 인간이 쳐논 어떤 장벽이나 배타성에도 구애 없이 경배 받을 주이심을 보여주셨다.
정작 마음에 충격을 받고 극도로 불편해진 인물은 유대 왕 헤롯이었다. 자기만이 왕이어야 할 곳에 갑자기 새 왕의 탄생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기 왕이요, 이방나라의 국빈급 인사들이 들이닥쳐서 경배 드리겠다고 하는 행보에 난리가 난 것이다(3-4절). 겨우 진정하고 그 장소를 알아냈으나, 헤롯의 마음엔 이미 그 아기 새 왕을 죽이고자 결정한 후였다. 정적(政敵)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는 이렇듯 탄생에서부터 공권력의 배제 대상이었다.
예언에서 확인된 메시야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이었다(미5:2). 다윗 왕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그곳은 아주 작은 고을이지만, 거기에서 온 백성의 목자로서 한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고 예고된 곳이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실 큰 왕이 그곳에서 탄생하실 것이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곳에 지금 요셉 마리아 부부는 호적하려고 고향을 찾았는 데에다, 임신된 아기를 해산해야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관이 없어서 구유에서 해산해야만 했다(눅2:7,16).
동방박사의 구유 성지 방문은 별들의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9-10절). 그들의 그곳 경배 행위는 모든 예배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주님을 사모하며 경배드리려고 찾아온 순레자의 마음에다, 엎드려 경배 드리는 자세에다, 준비해간 예물을 바치는 모습들은 모든 예배자들의 전형(典型)이 된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이 바친 값비싼 예물들인 황금, 유향, 몰약들은 그후 예수가족의 애굽 피난살이와 그 이후의 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된 성물이었다고 보인다.
특히 별의 인도함을 보고 박사들이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10절)는 표현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성령의 지시를 좇아서 다른 길로 귀국하는 모습은 매우 훌륭한 신앙인의 마음가짐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12절). 주님을 향한 마음에는 최고의 기쁨으로, 그러나 불의한 권력자들을 향한 마음에서 불복종(不服從)의 자세로 각각 자신의 신앙을 표시한 모습이 매우 신실한 주의 종들이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본받아야 될 자세이다.
2. 구약 / 사 60:1-14 /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신천지가 예고된 본문 내용이다. 이 말씀을 받게 된 유대인과 예루살렘에는 여전히 가난과 곤경과 압제와 슬픔이 흘러넘치고 있었는데, 이런 가슴 벅찬 희망의 소식이 그들에게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것 대변화의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이 몸소 자기 백성에게 오시는 일 하나 뿐이었다(영광).
1) 선지자는 외친다. 떠나간 민족들은 아직도 제국의 열방 국가들에 흩어져 있지만,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데려오시되 재물과 함께 돌아오게 하셔서, 세계의 중심 국가를 이루시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마침내는 세계의 순례지가 되게 하실 것임을 예고하신 것이다. 본문 내용에 따르면, 여호와의 움직임에 따라서 세계의 인력과 부와 영광이 흐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태양의 빛이 있는 곳에 모든 생명체들이 집결되어 번영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2) 여호와의 빛과 광명이 비치는 곳에 나라들이 나아오며 왕들도 모여든다(3절). 백성들이 몰려오고, 먼 곳에 흩어진 아들과 딸들이 안기어 온다(4절), 그렇게 모인 곳에 기쁨과 화창함이 가득하고, 바다의 부와 외국의 자본들도 들어온다, 숱한 낙타들이 가득해지고, 금과 유향을 가지고와서 여호와를 찬송하며, 외지의 양떼들도 공급되고 주의 제단에 올릴 제물도 풍성해진다. 주의 영광의 집(성전)이 영화롭게 된다(5-7절).
3) 떠나간 이스라엘 자손들의 환국이 비들기들이 보금자리로 날아드는 것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지중해 섬들과 유럽의 각지에서 자손들이 보화를 싣고 와서 거룩하신 여호와께 드리려 하는 자들이 많아진다. 이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이전의 범죄의 대가를 치루고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게 되면서, 오히려 이방인들의 인력도 끌어오고, 그곳 왕들도 이끌어와 이스라엘을 돕고 섬기는 자들이 되게도 하였다(9-11절).
4) 그 바람에 세계의 권력의 지도(地圖)가 재편성 된다. 그들을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되고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된다(12절). 이전에 그들을 괴롭히고 멸시하던 자들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온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14절).
이런 놀라운 존재와 가치와 힘과 역량과 수준의 상승은 오직 여호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오늘의 말씀은 이런 실재 상황이 오실 메시야 예수를 믿고 섬기는 자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펼쳐졌음을 전하고 있다. 그 점에서 서신서의 증언은 매우 큰 자료이다.
3. 서신서/ 갈 4:1-7/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모든 사람들은 미성년(未成年) 자녀처럼 살았다. 외견상으로는 노예나 종의 신분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후견인 아래에서 지냈다. 모세의 율법도 그 중 하나로서, 우리의 초등교사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1-4절).
하지만 인간되어 오신 예수께서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가르치시면서, 특히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지워주심으로서, 우리 믿는 자는 비로소 장성한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3:13). 우리 안에 오신 보혜사 성령이 그렇게 해주셨다. 성령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롬8:15-17참조). 그래서 우리를 종이 아닌 아들이 되게 하시고, 하늘 아버지로부터 영생을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되게도 하셨다(5-7절).
모두가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하신 은혜 때문에 얻어낸 축복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죄의 종이나 율법의 지시 아래 끌려 다니는 자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법을 행사하며 살아가자.
o 주님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만나 주신다. 동방 박사의 그 믿음과 경배의 영성을 우리도 무장하도록 힘쓰자.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의 영광과 빛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다양한 복들을 주신다. 자녀라는 신분의 상승의 복, 재물의 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기업으로 상속하는 복까지 주신다. 부디 성탄의 놀라운 은총을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