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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8)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1-07-14 (수) 11:32 2개월전 78  

본문) 롬 13:1~7, 신 8:1-20, 마 22:15-22 


강림 후 여덟째 주일이다. 장마철이 깊어졌고, 장마가 가시면 무더위가 기승(氣勝)을 부린다. 폭우(暴雨)와 폭염(暴炎) 사이를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감당하기 힘겹고 답답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것들 모두는, 우리 환경에 모두 요긴한 것이다. 우리 환경의 체질(體質)과 인간의 체력(體力)의 강화를 새삼 요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비만 잘하면 보다 강해진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주축 세대도 크게 변화했다. 세계에서 유래 없는 낮은 출산율(出産率)을 기록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급속한 고령화(高齡化)시대에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경제력과 생활력과 학력이 고령화를 밑받침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는 이제 매우 심각한 수준에 접어든 것이다. 이제 60-70대를 노인세대라고 판단하기에는 왠지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40-50대가 젊은이들로 보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급변한 시대에 자기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고 부응해 가느냐에 있다. 특히 우리 교회들의 대응에서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예컨대, 지금의 교회는 노인들로 급속히 채워져 가고 있다. 반면에 출산율 관계로, 어린이부와 청소년부가 더 이상 교회의 중심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에는 어떤 교육 시프트(shift)가 필요한가? 


노인(老人)부 내지 노인성경학교를 개설(開設)해야 한다. 이전처럼 어린이들을 돕고 성원하는 후원그룹 수준에 머물면 안 된다. 노인들 자체의 성경공부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 맞이할지 모를 천국(天國) 입성 준비를 단단히 시키고, 주어진 남은 생을 건강하게 할 종말론적 영적 훈련을 잘 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성숙한 영적 품격(品格)을 갖춘 노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루빨리 양산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와 후배들과 후손들도 동반하여 성숙해질 것이다.


사실 성경은 매우 일찍부터 우리 인생의 마지막과 그 이후의 세계를 풍부하게 펼쳐 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존경쟁에서의 승리에 집중하는 바람에, 그런 은혜로운 세계에는 너무도 무관심해 왔다. 그런 바람에 우리는 노년의 삶과 종말 이후의 영원한 세상에 대하여서는 너무 무지하게 살아왔다. 곧 그리스도인에게서 당연히 발산할 존재의 품격인 하늘나라를 상속할 사람들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쪼들리고 탐욕적이고 편협한 인생관의 틀에 갇혀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래로가 괜찮은가? 실로 교회교육 체제에도 새 출발이 필요하다. 


그러면 오늘의 세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우리의 시야에 변화를 주는 내용이다. 하늘과 땅에 동시에 존재하는 두 개의 나라들과 거기에 걸 맞는 두 개의 권위(權威)에 대하여 일깨워 주신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이다. 또 하나는 그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권세들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에는 확실한 질서와 연계(連繫)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권세는 본질적으로 원래적이고 독자적이다. 모든 힘과 질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나라와 그 권세는 종속적(從屬的)이며 가변적(可變的)이다. 


세상의 권위는 항상 스스로 서있지 못하다. 그것은 짧은 인간의 생애와 유관(有關)하다. 바울은 이 점에서 지상의 권세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말한다(4절).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여야 됨을 전제로 한다. 이 말은 만일 이 땅의 권세가 하늘의 권세에 항명(抗命)하는 행태를 보일 때에는, 그에 대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점을 전제(前提)한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안에서는 이 두 나라와 권세들이 엇갈려서 상호 충돌하는 일에 관하여서는 직접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복음서를 통하여 그 흔적(痕迹)만 드러냈을 뿐이다. 


세 본문 중에서 이 두 세계를 함께 보여 준 말씀은 아무래도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복음서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섬길 두 나라를 향한 의무와 행위에 대하여 언급하신다. 그런 중에 구약의 신명기 내용은 하나님을 향해 그의 백성들이 취할 태도에 대하여 필요한 지침을 주었고, 서선서인 로마서는 지상 국가의 공권력(公權力)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특히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세상을 일군다. 우리는 말씀의 지침을 잘 새겨 듣고, 균형 있는 세상살이를 감당해야 하겠다. 


o 복음서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모두에서 나오는 내용이다(막12:12-17,눅20:20-26참조).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합작하여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납세 여부(與否)를 가지고, 랍비인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시험한 것이다. 이 납세 문제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고 있으면서 민족적 자존심이 심각히 훼손당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뜨거운 관심사였음을 보여 준 매우 미묘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본 복음서가 주후 70년에 있었던 제1차 유대 독립전쟁에서 로마인들에게 예루살렘이 무참히 파괴된 이후에 비로소 쓰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즉 이 본문 단락에는 로마에 대항하던 유대인들의 반란이 이미 있었고, 그 결과 예루살렘 파괴도 초래되었던 사건이 일어난 이후였음을 염두에 두면서, 예수의 가르침이 옳았음까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7절 참조)


1) 본문은 나사렛 예수께서 당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얼마나 고단하게 협공을 당하고 계셨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15-16절). 이런 장면은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는 예수님의 자기 고백을 충분히 확인하게 하는 곳이다(마8:20). 까닭은 당시의 주류 종교인이면서 엄격한 유대교도들인 바리새인들과 무자비한 현실 정치인들인 헤롯당이 서로 합작하여 예수님을 공격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그들의 협공의 주제는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였다(17절). 이런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둘 중의 하나만의 대답만 나오면, 그 즉시 예수에게 치명적인 인격내지 사상 공격을 퍼붓으려고 하는 악(惡)함 때문이었다(18절). 거기서 납세 거부하라는 발언이 나오면, 즉시 탈법을 조장한 현행범이 된다. 찬성하면 친(親)로마 세력으로 매도되어, 예수의 위선과 반유대주의적 행태라고 성토 받게 될 것이었다. 


3) 본래 하나님 나라운동으로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계셨던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었나? 갈라진 그들의 마음과 생각들을 하나로 묶어낼 대안을 제시하셨다. 유대인들에게서 납세 문제라면, 빠뜨릴 수 없는 영역이기에, 이렇게 답변하셨다.- 세금 낼 화폐인 데나리온을 보이시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21절)고 하셨다. 


4) ‘바치라 마라’라는 이분법적 접근이나 선택적 접근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라면(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감당해야만할 조세(租稅)와 납세(納稅)에 관한 원론적 규정을 제시하고 나오신 것이다. 두 개의 시민권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과 세상의 권세에게 바칠 납세의무를 감당하라고 요구하고 나오신 것이다. 외눈박이들에 대한 경고였다!


5)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지만, 예수님의 이 답변은 결국 양쪽 모두를 허탈하게 하였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아니 양심의 가책을 당하면서 떠나가게 했다. 까닭은 그들 모두는 사실상 ‘은밀한 비납세자들’이요, ‘은폐된 납세 거부자들’로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정권에 늘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바리새인들은 기꺼이 납세에 응할 리가 없었고, 현실 정치세력인 헤롯당원들은 하나님께 드릴 납세(십일조등) 의무를 지키고 살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6) 이렇게 어긋한 마음과 행동으로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니, 온 나라와 백성들을 향한 그들의 종교나 정치가 과연 잘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하나님께 잘못되고, 세상 정부에도 저항하는 태도를 유발하게 하는 바람에, 그들은 결국 주후70년의 전쟁을 치루면서 무자비한 파멸을 경험하여야만 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지침을 무시한 대가의 참담함을 확인해야만 하였다.


O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원 모두가 외면하고 무시한 두 나라의 시민권에 관한 문제이다. 기본이 허술하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배척하고 미워했으며, 그들의 삶과 운명도 세상나라와 함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A.D70년). 이제 이 기회에, 그 나라와 그 실체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되새김해 보자. 


☞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시민권(市民權)을 보유한 자이다(빌3:20-21). 우리를 십자가에서 속죄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주 예수께서 계신 곳이 바로 그곳이다. 우리가 머잖아 그곳에 이를 때, 우리는 지금의 낮은 몸이 예수의 영광스러운 몸의 형체를 입고 그곳에서 살게 될 곳이다. 


☞ 그런 점에서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땅의 삶은 나그네 길이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노정(路程)에 불과하다(히11:13, 벧전2:11참조). 그러기에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인 지금의 삶을 정신 차려, 진정한 삶을 누리게 될 영원을 잘 대비하는 기간으로 보내야만 한다(히11:13참조). 


☞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었던 족장들은 일찍부터 이 세상의 삶보다 하늘의 본향이 더 나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망 가운데에서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살았다(히11:16). 곧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산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희를 위하여 한 성(보상,상급)을 예비하셨던 것이다. 


☞ 그 나라는 거져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힘이어야만 한다(합3:6, 마26:41,눅1:37,계19:6참조) 이곳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벧전2:11). 특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내 안의 육체의 정욕과 인간적인 욕망을 일으켜 부도덕한 행동에 빠지게 만드는 육체적 자아를 반드시 제어하여야 한다. 최후에 누릴 하늘 시민권자 답게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의 승리에도 규칙과 질서가 있다. 두 나라들의 권세에 복종하는 자세로 사는 일이다. 


o 신명기는 지도자 모세가 머잖아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그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계명의 제 1순위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일이다(1,6절). 그러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깊은 염려까지도 전한다. 바로 그들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하는 점이었다(11-14절). 왜 그 점이 그토록 하나님에게는 중요했나? 그들이 기억에서 하나님을 잃게 되면, 곧장 다른 신들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결국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19-20절 참조). 


1)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야할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고 번성하며 약속된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1절). 이를 위하여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의 생활에 담긴 하나님의 뜻 두 가지를 반드시 헤아려서 기억(記憶)하며 살아야 했다. 


①그를 낮추시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그 마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2절)

②그를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되 그들과 그들 조상이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3,16절). 후에는 예수께서 친히 40일 금식에서 이겨내신 시험이기도 했다(마4:4참조). 


2)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시험을 마치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음으로 간주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고 그 길을 좇고 주을 경외하여야 했다(5-6절). 그러면 여호와는 그들에게 모든 아름다운 소산과 식량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지하자원도 풍성하게 공급하시고, 배부름과 옥토의 풍성함으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할 것을 약속하였다(7-10절,엡1:6,14참조). 


3) 절대 경계사항이 있다. 자신의 번영이나 재물획득이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 얻을 능력 때문임을 시인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얻었다고 교만해져서,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는 일이다(17-18절). 그러면 그의 결말은 분명하다. 가나안족들처럼, 반드시 멸망한다. 


o 또 있다. 지상 권세들에 대한 복종(服從)이다. 그 이유는 모든 권세는 본질상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다(1절). 그러기에 세상 권세자들은 자신의 가진 권세가 신의 사역자요 대리자라는 위치에서 나왔다는 소명의식(召命意識)을 보유해야 한다(1절). 그래서 그는 신의 뜻을 분별하고 헤아리는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권세를 거스리는 일이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으로 알아, 자신의 행동이 심판을 자취(自取)하는 것으로 알게 된다(2절). 


1) 그러기에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반드시 선(善)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악을 행할 때에는 그 권세의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그는 곧 국가의 사법적 권력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 모두에게 진로하심을 따라 보응할 것이기 때문이다(4절). 이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복종이 양심(良心)을 따라 해야 하지, 진노 때문에 나온 것이 되면 안 된다는 점도 명심하라(5절). 


2) 국가의 다양한 대표자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그들에게도 격에 맞게 대해야 한다(7절). 봉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도 타당하기 때문이다. 


o 우리는 두 나라의 백성들이고, 두 개의 시민권을 보유한 자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느 하나에만 선택적 삶을 살 수는 없다. 서로 연계가 되어있음을 명심하자. 우선은 우리가 몸담고 지내는 세상에서의 의무와 책임에 성실히 복무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시민권은 현재의 지상의 삶에서 더욱 가치와 무게가 드러나야만 한다. 그 나라 백성답게 산다는 것을 이 땅과 삶에서부터 드러내는 것이어야 된다. 그래야 예수님의 말씀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 그 직무에 소홀하거나 방기하면, 그 다음의 세상은 절대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심고 저 세상에서 거두는 법칙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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