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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0-05-26 (화) 19:12 3년전 953  

본문) 행 2 : 1–21, 요 7:37-44, 겔 36:22-28

 

오늘은 성령강림절기를 여는 주일이다. 성령(聖靈)의 강림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다. 특히 이 절기에 우리는 이 성령의 강림이 성자 예수님의 탄생 못지않게 이 세계와 온 인류에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주목한다. 우리는 그 동안 보이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님은 육체적인 한계와 팔레스틴 유대 땅이란 공간의 제한을 엄격히 받으셨다. 비록 그가 그곳에서 메시아의 놀라운 사역과 은혜를 베풀고 계셨어도, 그런 그를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공유해 줄 매체가 없었다면, 그 예수는 만민의 구주가 되실 수 없었다. 그 일은 한계를 가진 인간들만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일하실 영적 도우미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예수께서 예고하셨던 보혜사 성령이셨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전하려는 일, 바로 그 거룩한 일이 오늘 오순절에 성령의 오심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행2장은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을 생중계한 곳이다. 그곳은 땅과 하늘의 두 세력들이 ‘그 거룩한 목표’ 아래 만나고 있다. 즉 예수의 말씀을 받아 예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있던 땅에 속한 120여명과, 하나님과 예수의 영으로서 예수를 온 세상의 주로 세우시기 위하여 오신 하늘의 존재인 성령이 역사적인 도킹(docking)을 한 것이다. 

 

서로 공존과 공유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 두 이질적인 세력들이 이렇게 도킹하며 만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분명했다. 예수란 구원의 백신(vaccine)을 온 세상에 전하여, 죄와 저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하루가 다르게 죽어 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슬픈 인류(人類)들을 구원하시려는 데 있었다(요3:16). 그 일을 위하여 예수는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택하여 훈련시키며 당신을 알릴 증언자들로 세워 놓고 떠나셨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은 그런 제자들의 일들을, 앞뒤와 안팎에서 돕고 협력하기 위하여 지금 그들을 찾아오셨다. 

 

이 둘의 동시연합적인 출격(出擊)이 비로소 성령강림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제 이 둘의 일거수일투족에 의하여 인류는 새 구원 역사를 써가기 시작했다. 예수는 승리하고 악마는 패퇴하는 역사의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 사도행전은 바로 그들의 거룩한 영적 투쟁기(鬪爭記)이다. 

 

특히 오늘의 강림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가 깊다. 바로 우리의 지구촌이 대 유행병(流行病)이란 팬데믹(pandemic)의 창궐로 인하여 수많은 세계인들이 고통하며 허망하게 죽어가는 시점에서, 성령강림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우리의 목표는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일일 수 없다. 그때처럼, 성령강림으로 저주의 시대와 흑암의 위협들을 끊어내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하여 도움이 될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교회사학자-김영호목사 연구)

 

☞ 초대교회에는 제2세기와 3세기에 두 번의 대 전염병이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오랜 세월, 수 천만 명의 희생이 뒤따랐다. 그때마다 로마 황제들은 그 원인을 ‘이방신을 믿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라며 교회를 박해하였다. 그래도 교회는 승리하였다. 이유가 무언가? 

 

① 교회는 그 때를 이웃사랑을 실천할 기회로 삼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감염자들을 보살피고, 소생하도록  음식을  제공하며,  환자가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게 도왔다. 그러다 병이 옮으면 그 아픔을 십자가 사랑으로 기꺼이 품으며 고통을 감내했다.  

② 환자를 사랑하되, 신자들은 물론 이교도(異敎徒)들까지도 차별 없이 돌보았다. 그리스도의 화평의 복음에 근거한 올바르고 제대로 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③ 버려져서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시신(屍身)들 수습에 앞장섰다. 자신들도 도피하여 무덤에 살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고 시신들을 수습하며 거리들을 깨끗하게 하였다. 

④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주님의 부활 신앙을 품고,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불안에 떠는 숱한 병자들에게 희망의 천국 복음을 깊이 전했다.   

☞이런 차별화된 부활 신앙으로, 팬데믹은 도리어 교회를 온 세상의 희망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의 코로라19 팬데믹을 우리 교회를 회복시킬 도구로 삼을 수는 없을까? 가능하다면 그 답을 어디에서 찾을까? 먼저 주의 제자들인 우리 자체를 점검하는 일이 우선이다. 가장 우선할 점검 사항은, ‘성령이 앞세워 함께 일하려고 하시는 대상들이 누구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성령께서는 본래 홀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더불어 일하시고, 되게 하시는 보혜사이시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다음 몇 가지 부분들을 확인해야겠다. 

 

1) 성령과의 도킹을 이룬 사람들이어야 한다(행2:1-4). 즉 성령을 받고 그의 충만함 속에서 성령과 일체를 이룬 사람들이, 성령의 뜻을 과감하게 실천해갈 인물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일찍이 이렇게 단언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절). 따라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성령 받는 문제를 어서 해결해야 만 한다.

 

2) 오신 성령은 세계 곳곳에서 왔던 경건(敬虔)한 유대인들을 먼저 찾으셨다(5-11절). 이들은 누군가? 나라가 멸망당하면서 온 세계로 흩어져 살아온 교포들(디아스포라)로서, 늘 여호와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대망하면서 고국을 방문하거나 고국에서의 은퇴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던 종말론적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유대인이었으나, 그러나 마음과 생활문화는 온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세계인들이었다. 언어,풍습,문화,의식 모든 영역에서 외국인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왔던 본토의 히브리계(界) 유대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구원을 이루려는 꿈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다. 오늘 구약 본문인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사전에 예고된 일이었다(겔36:22-25). 거기에서, 여호와는 흩어진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의 더럽혀진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예고하셨다. 그것도 당신이 부어주실 새 영을 통해서 하겠다고 하셨다. 내용은 두 가지였다.

 

①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고, ② 그 마음으로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된다(26-27절). 그래서 그들은 변화된 마음과 정결해진 삶을 따라, 그곳 이방인들에게까지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며, 그 결과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여주게 하리라고 예고하였다(28절). 이 예언이 지금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해외파 교포들을 겨냥하셨나?

 

☞ 그들 디아스포라들은 이미 예수와 그의 복음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하여, 본인들도 모르게 훈련된 자질과 여건을 오랫동안 축적하여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성령의 일깨우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고대(苦待)해 왔던 그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만 갖게 되면, 즉시 그 사실을 전할 선교 요원이 될 위치에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 오늘날의 이 대목은 국내외에 흩어진 평신도 선교사들과 일반 사회의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힘쓰며 살아가는 평신도들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은 목회자나 선교사들만 쓰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신실한 평신도들도 일깨우셔서 주변을 놀라게 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을 광범위하게 맛보게 하시는 분이시다(엡1장 참조). 

 

3) 공식적인 설교자(說敎者-스피커)의 시대도 열렸다(14-21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결코 막연하고 희미한 분이 아니다. 매우 선명하게 당신을 계시하신다. 다만 당신이 세우신 종과 대언자(代言者)들을 통하여 당신을 전하실 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맛보고 전하게 하신다! 

 

‘설교(說敎)의 시대’도 열렸다. 설교 원조는 예수님이시지만, 성도의 모임체인 기독교회로서의 첫 설교자는 사도 베드로였다. 그는 예수를 모르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들을 상대로 첫 설교를 하였다. 실로 목숨을 건 설교였다. 그 설교의 요지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서 자기들과 같은 평범한 자들에게도 주의 영이 임하셨음을 알리면서, 그들 모두도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얻으라고 외쳤다. 그런데 그 ‘주’가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예수이셨다! ‘그 예수가 온 세상의 구세주’란 첫 설교였다. 

 

4) 지구촌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이 등장했다(21절,9:14,21,22:6,고전1:2참조). 설교에 응답하는 자들이 나타나면서, 예수를 ‘주’(퀴리오스)로 부르는 자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 대상은 무제한이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가 그 만민 초대사(招待辭)였다(21절). 이는 바로 예수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하신 말씀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이상의 핵심적인 요점들을 재확인하기 위해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 자체를 들여다본다.

 

서신서를 보자

성령 시대(時代)를 여는 오순절 아침 9시는 하늘 문이 열리면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거기 모인 120여명 각 사람의 위에 임하는 때였다. 바로 예수께서 약속하셨던 ‘그 보혜사 성령’께서 이 세상에 강림(降臨)하시고 있었다(1-3절).

 

1) 본래 ‘입김, 바람, 호흡, 폭풍’의 뜻을 갖고 있는 성령은, 1차로 그곳에 모인 예수의 무리들 120명에게 충만하게 임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지역 언어들을 말하게 하였다(4절). 

 

2) 그 언어(방언)가 겨냥한 주 대상들은 예루살렘에 체류하던 디아스포라(해외교포)들이었다. 그들 교포들은 신앙심이 매우 경건(敬虔)한 자들이었다(5절). 성령은 그들에게 그들의 출신지 언어로 듣게 하셨다. 거기에는 최소한 15개국 이상에서 모국의 오순절기를 지키려고 몰려 온 큰 무리의 교포들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성령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다. 반응은 엄청났다! 온 무리들이 ‘소동하고, 놀라며 신기해하고, 혼란과 당황 속에 빠져 들었다’(6-8,12절). 

 

3) 충격의 배후에는 두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첫째는 방언하는 자들이 모두 갈릴리인(人)들이라는 점이었다. 갈릴리는 유대의 북부지역으로서, 유대사회에서는 멸시천대를 받는 지역이었고, 무지와 가난과 친(親)이방적으로 차별을 받는 자들의 땅이었다. 그런 자들이 자기 출신지역 외국어로 자기들에게 말을 걸어왔으니,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둘째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있는 일에 충격과 혼란이 더 컸다. 그들 일부는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며 조롱(嘲弄)도 했다. 혼란이 컸기에, 수습과 정리가 필요했다. 

 

4) 사도 베드로의 설교(說敎)가 등장했다(14-21절). 수습과 설득과 선포를 위한 설교였다. 먼저는 그들의 성령 역사에 대한 혼란과 무지에 대한 해명을 했다. 자기들의 이번 방언이나 예언은 성령에 의한 역사로서, 자기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 전 선지자 요엘이 이미 예고하였던 그 예언의 성취(成就)로서 나온 것임을 역설하였다(16-20절). 

 

그러면 어떤 내용의 예언이었나? 말세에 하나님이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터인데-, 그 때는 남녀차별(男女差別)이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이나 인종차별(人種差別)도 없이 모두에게 부어 주리라고 하셨다. 즉 성령의 대중화(大衆化)와 세계화(世界化)를 예고하신 내용이었다. 성령의 차별화가 아닌 대중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차별이나 제한 없이 성령을 받아서, 누구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게 하고자 함이었다(21절). 

 

복음서를 보자

거룩한 이름의 주인공이자, 세상에 생명과 구원을 선사하는 당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의 초막절을 맞이하여, 베데스다에서 물을 긷고 예루살렘 성전에다 뿌리는 예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시면서, 모두가 구원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외치셨다(사12:3,44:3,시78:15-16,겔47:1-2)곧 땅의 물이 인간의 목마름을 해소하거나 구원의 생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자가 받게 될 성령이 인간의 목마름과 구원을 제공하는 것임을 일깨우시면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령을 받게 되리라’고 외치셨던 것이다(37-39절). 

 

오늘 서신서 내용은 그 주님의 외침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성령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주님께서 그들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보혜사로 보내셨던 영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을 받으면서 본인들의 구원은 물론, 온 세상도 비로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기 시작했다. 

 

예언서를 보자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이나 포로생활 등의 치욕적인 수난과 시련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강팎하게 하며 그의 말씀에 귀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여호와께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하셨다. 당신의 영(靈)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같이 완고한 마음에서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영이 지금 오순절에 모인 가족들에게 임하셨고, 지금 경건한 디아스포라들을 향하셨다. 새 사람, 새 세계를 열려는 성령의 약속된 행보였다. 

 

결론이다

성령이 오셨다. 팬데믹의 위협을 확실히 이기게 하시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그 분이 나와 도킹하도록 간구하자.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버림당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도 물론 나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기도에 힘쓰고 말씀 듣고 행하기에 열심을 내자. 경건한 삶은 필수이다. 성령과의 겸손한 동행으로 ‘주’를 드러내며, 내 생애가 주의 큰일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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