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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7)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관리자 2020-05-20 (수) 07:38 16일전 78  

본문) 요 16:16~24, 사 32:9-18, 행 1:12-26

 

부활절기 셋째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한다. 이때 부활하셨던 주님은 어디에 계신가? 이미 본향(本鄕)인 하늘로 떠나셔서 이 땅에는 계시지 않는다. 다만 이 땅에 남은 것은 그가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진지하게 당부하셨던 유훈(遺訓)의 말씀들이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이 남아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주의 말씀과 주의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 이후의 시대의 흐름을 결정지을 주역(主役)이요 핵심(核心)들이 되었음을 말한다. 

 

이때부터 세계사와 구원사의 흐름은, 기존의 인간 중심의 흐름과는 달리, 이 둘의 움직임에 따라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즉 예수의 말씀과 그의 증인들의 활동이 새 역사 형성의 양축(軸)이 된 것이다. 주님이 남겨주신 말씀은 새 역사의 행동과 그 방향을 규정하는 방향타(方向舵)가 되었고, 사도들과 교회들은 그 말씀의 진리를 전하고 입증하는 행동대(行動隊)가 되었다. 이 세상은 이 둘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비로소 하늘의 구원을 맛보게 되었다. 

 

오늘은 마침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도시.농어촌 선교(宣敎)주일이기도 하다. 이 선교주일을 우리 교회들은 어떻게 맞이해야할까? 먼저는 자기 교회가 처해 있는 위치인 도시와 농어촌 교회로서의 특성(特性)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면서, 거기에 걸맞는 선교정책 수립에 보다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도시와 농어촌 교회들의 상호 연대(連帶)와 협력(協力)의 선교를 강화시켜가는 일이다. 이 점에 매우 중요하다. 

 

대체로 도시교회는 농어촌 교회들의 희생의 열매인 경우가 허다하다. 농어촌의 수많은 이농인구가 도시로 대거 유입(流入)되면서, 농어촌 교인수는 계속 줄어들고, 도시교회는 계속 배불러왔기 때문이다. 도시 교회는 이런 현상을 마냥 즐겨서는 안 된다. 어떤 형식이든, 상호 선교적 협력과 연대로 서로 돕고 보완하는 상생의 선교망(網)을 구축해 가는 일이 필요하다. 교회는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는 공동체가 아닌가? 눈이 떠야 한다. 방법은 많다. 중요한 것은 개 교회 차원뿐만 아니라, 노회와 총회가 이런 귀한 일에 앞장서야만 된다. 

 

오늘 세 본문들은 인류사에서 새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등장한 하늘의 선물인 교회 공동체의 출현과 그 본래적인 실체를 다시 주목하게 한다. 절기상으로도, 이 부활절 전후해서 교회들이 노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인사 및 선교적 현안을 처리하고, 특히 교회에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인물들을 교체하는 예식들을 집행하는 일들은 오늘의 말씀과도 부합됨이 확인된다.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하늘로 떠나심으로 인해 제자들이 겪게 될 심리적 걱정을 예견하시면서, 그 상처받을 마음을 상쇄시킬 더 큰 선물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안위하시는 예수의 모습도 담았다. 성격상 제자들은 마치 임산부와 같은 성격의 격변을 경험할 것으로 보셨다. 기다리던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고통은 잊고 충만한 기쁨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서신서는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좇아서, 행동하기 시작한 예수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 모습은 이전의 저들의 모습과는 판이(判異)하게 달랐다. 그들은 더 이상 엠마오나 갈릴리나 디베랴가 자기들이 돌아갈 곳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자기들이 갈 곳은 바로 예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지침(指針)을 주셨던 예루살렘이었다(행1:4상). 

 

뿐만 아니다. 그들은 마음으로도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스승을 죽였던 도시이기에 공포의 지역이기도 했던 그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주님이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보혜사 성령을 일심으로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행1:4하). 비로소 몸과 마음이 주님의 분부하신 말씀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무리들이 되어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놓았음을 보여 준 것이다. 그게 중요했다!

 

그곳의 모임은 사실상 지상 교회의 모태(母胎)였다. 그들 모임의 흐름은 교회의 기본이 될 큰 지침을 제공한다. 교회의 각론(各論)적인 접근이 아니라, 총론(總論)적 요건들을 보여 준다. 즉 예수의 증인이 되고 그의 뜻을 펼치는 선교를 하고자 하는 교회 공동체들이라면, 모두가 기본으로 삼아야할 부분들을 굵게 제시해 주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모이는 교회를 지향한다(13-15절.상). 사도(목회자)의 말씀 선포를 중시한다(15-20절). 필요한 인력을 세워서 선교의 힘을 효과적으로 강화시킨다(21-26절).

 

그렇다면 새 역사를 이루실 성령은 언제 누구에게 오시는가? 바로 예수와 그가 분부하신 말씀에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하며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오신다. 누구든 예수를 가볍게 여기고 그의 말씀을 무시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오시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예언서는 ‘마침내 위로부터 오시는 성령’(15절)이 과연 어떤 자에게 오시는지, 그리고 오셔서는 어떤 판도(版圖)의 세상을 이루어내실 것인지를 예고하셨다. 이는 앞으로 곧 닥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변화될 세상의 미래 영적 기상도(氣象圖)를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이 예언은 오순절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과 시작된 교회들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복음서를 보자

‘당신의 떠남이 제자들 모두에게 유익(有益)이다’는 확실한 입장으로 가지고(요16:7), 제자들의 예상되는 근심과 불안을 다독거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따뜻함을 준다. 

 

1) 제자들 사이에는 조금 전 예수께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신 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였다(16-18절). 

 

2) 예수님의 그 말씀에 거론된 ‘떠나심’은 당신의 죽음을, ‘다시 오심’은 재림 및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통한 당신과의 만남과 현현(顯現)을 의미하였다. 떠나실 때 제자들은 슬픔과 깊은 근심에 빠져들게 될 것이나 세상은 환호하고 기뻐하게 될 것으로 보셨다. 하지만 제자들의 그 근심은 분명히 잠깐으로 끝난다. 마치 임산부가 아기를 낳는 순간, 해산의 고통에서 해방되듯, 제자들도 약속된 보혜사인 성령을 받게 되는 순간-,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계속 만날 수 있게 되고 빼앗길 수 없는 기쁨에 얻게 됨으로서,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리라고 예고하셨다. 

 

3) 그런 설명과 함께, 주님은 그 기쁨을 얻고 또 충만히 누리고 살 수 있는 방법 하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를 향한 기도(祈禱-Pray)였다! 기도는 성격상 구하는 행위요 구한 것을 받게 하는 매체이며, 받은 것을 지속하고 누리며 사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기도는 결국 성도들 사이에 믿음의 차이(差異)를 만들기도 한다.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힘을 기도자에게 베 푸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본래 습관을 좇아 기도생활을 하신 분이셨다(눅22:39). 제자들에게는 기도의 모범을 가르치시고 당신의 그런 기도 생활을 보여주셨으나 본격적인 기도 요구는 지금 이별을 앞둔 시점에서 제기하셨다. 바로 기도하여 받는 삶을 살아갈 것을 적극 요구하신 것이다(23-24절). 

 

왜 그랬을까?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를 요구하신 것이다. 특히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늘 아버지로부터 무엇이든지 받으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신 것이다. 그렇다. 기도 없는 사역자와 증인은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통로인 기도가 끊어진 인물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서신서를 보자

주님을 떠나보낸 제자들의 모습을 전한 곳이다. 자신들만 남아 있게 된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처음 우려(憂慮)했던 근심과 걱정, 실망과 낙심에 빠져 들었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가? 그 점에서 누가복음은 놀라운 증언을 했다.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with great joy) 예루살렘에 돌아갔다’고 전한다(24:52). 즉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답게 결코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도리어 기쁨으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1)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무리들은 그들이 머물던 다락방에 집결하였다(13-14절). 전체 인원(人員)은 무려 약 120여명이나 되었는데-, 그 주요 인사들은 대략 이러했다. 

- ① 제자들11명-가룟 유다 제외 ② 여자들(눅8:1-3,23:49참조) ③ 어머니 마리아 ④ 예수의 아우들-야고보가 큰 역할을 한다(12:17,15:13,21:18,고전15:7참조) ⑤ 기타

 

2) 그들은 미래의 교회(敎會)가 취할 모습들, 세 가지를 보여 주는 행동을 취했다(14.하-26절) 

 

① 모두가 마음을 함께 하여, 오로지 기도(祈禱)하는 일에 힘썼다. 이 행동은 주님의 마지막 분부에 따라서, 하늘 아버지께 약속하신 보혜사를 보내주시도록 구하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② 사도 베드로의 가르침과 선포가 시작되었다.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대표 제자로서 공인받은 후에, 본격적으로 주님의 무리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치기 시작한 것이다. 목양(牧羊)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무리들은 이제 그의 영적 권위를 존중하고, 그의 말씀의 가르침을 좇아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 베드로는 성령강림에 앞서서, 자신들의 인적 진영(陣營)을 정비하고 구축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것은 동료였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갔던 가룟 유다의 끔찍한 죽음의 흔적을 씻어내고(16-19절 참조), 새 이스라엘의 12지파를 계승하는 의미를 가진 12제자단, 즉 12사도들의 진영을 보완(補完)하므로서, 새롭게 열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잘 대응하여야 한다는 말씀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베드로가 말씀의 묵상 중에 시편(詩篇)에서 접한 내용들을 통하여,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인한 비참한 죽음이나(시69:25) 그로 인하여 그가 가진 소중한 직분을 다른 이가 취할 것이라는 사건들(시109:8) 모두는, 이미 다윗의 시편에서 예고된 사안들이었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통한 깨달음과 발견을 무리들에게 전하였고, 그 말씀에 따라 이제 유다의 몫을 대체할 새 인물을 선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선언한 것이다(15-20절 참조). 

 

③ 인물 선출에 들어갔다. 자격(資格)이 있어야 했다. 사도(使徒)의 자격이기도 하였다(21-22). 

☞ 주 예수와 또한 제자들과 함께 늘 동행(同行)하던 사람이어야만 한다(21절).  

    주 예수의 고난과 부활까지도 증언할 사람이어야만 한다(22절). 

☞ 이 조건에 합당한 자격자들이 두 명 나타났다 – 바사바 또는 요셉 & 맛디아였다.

☞ 선출 방식은 합심 기도(24-25절)와 제비뽑기(26절)였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에 통용되었던 방식으로서, 그 결과를 하나님의 결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잠16:33, 레16:8-10, 대상24:5-18,31 눅1:9 등등)

☞ 최종 선출자는 맛디아였다(26절). 그는 당당히 12사도의 반열에 들어선 자가 되었다. 

 

이런 10일간의 준비 속에서, 일행은 더욱 기도에 힘쓰며 성령강림을 간절히 대망하며 지냈다. 

 

구약을 보자

전체 내용은 두 가지 차원을 담고 있다. 앞부분은 나태와 안일한 마음으로 자기만족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복종하지도 않고 지내는 이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예고했다(9-14절). 뒷부분은 그럼에도 여호와는 당신의 영(靈)을 부어주셔서, 이 세상을 아름다운 동산과 세상이 되게 하리라는 회복(回復)의 예언도 전하고 있다(15-18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이들과 그들 미래에 부어주실 축복의 예언을 여기에서 그렇게 전한 것이다. 

 

1) 이 두 상반된 갈림길은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의 목소리(음성/말씀)를 듣고, 그에 귀를 기우리느냐 여부에 있다(9절). 곧 그 말씀과 경고에 두려워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느냐 여부에 있다(10-12절).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심판이, 주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주의 성령이 임하기 때문이다.  

 

2) 주의 영을 받는 이에게는 놀라운 선물이 부여된다. 가시와 찔레가 가득한 삶이 평안과 안전을 누리는 삶으로 변한다. 빈곤한 삶이 충만한 삶으로, 슬픔의 삶이 기쁨의 삶을 입게 된다. 정의와 공의가 함께 하면서, 평안과 안전을 누리는 삶을 선사 받는다(15-18절). 그러므로 이런 성령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된다. 

 

결론이다

성령강림을 대비하는 기도의 시간대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그러기에, 그 분의 말씀에 언제나 민감하게 응답하면서 살아가야 하겠고, 교회 공동체의 가르침과 교훈들을 좇아 서로 하나 되어 살아가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주님을 증언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상의 교회들이 보이는 각종 이탈이나 허약한 모습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주님의 말씀과 삶을 전력을 다하여 기쁨으로 따르고 증언하는 일에 있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자. 나부터 건강한 주의 일꾼이 되도록 엎드리자.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소중한 직분들을 어둠의 세력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게 하자. 전심으로 성령과 말씀으로 깨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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