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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1-1) - " '불감증'에 걸린 우리에게 " / 송종근 목사 (환경주일)

관리자 2020-06-04 (목) 18:32 3년전 1236  

본문) 행 2:37~47, 눅 12:8~12, 민 11:24~29


  언제부턴가 구원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방식대로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우리가 바른 길 걷고 있는가?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되묻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칭찬받고, 사랑받던 교회들이 이제는 걱정이 되고, 지적받는 현실이 되었고, 성도라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들의 삶이 세상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닥쳐온 코로나 19의 위기는 우리들의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확산의 여파로 현장 예배를 멈추고,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면서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돌아보는 귀한 계기가 된 것이죠.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은혜인지 깨닫고, 그것이 우리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19의 현 상황은 불감증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거룩한 기회이기도 하고, 안일한 신앙에 빠져 있던 우리에게 주신 “찔림”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찔림”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해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세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세 본문을 통해 “찔림”에 대한 거룩한 답을 얻는 시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장차 제자들이 겪게 될 상황에 대한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박해와 고난 가운데 살 것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면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제자들은 시인하고, 제자들이 부인하면 자신도 부인할 것이다 말씀합니다. 일종의 경고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말씀은 제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장차의 고난과 박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목할 말씀은 10절입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역하고, 자신을 부인한 자들을 향해서는 용서받을 수 있다 선언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선언 배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보내주실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용서의 선언이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과정에서 나타난 제자들과 성도들의 갈등과 방황에 대한 용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측근인 제자들조차도 그 와중에 부인하고, 거역했던 상황이 이를 반증합니다. 반면 오늘 복음서는 성령을 거부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한 심판을 경고합니다. 예수님 당시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이 펼치신 수많은 이적과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 하는 행위 가운데 성령이 함께 하사 귀한 능력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놀라운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이들 중에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귀신의 힘을 빌어 사람들을 속인다 폄하한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고, 사탄의 역사로 치부한 행동에 대해 오늘 예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갖는 의미에 대한 상징적인 선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역사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 땅의 백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 아래 성령을 통한 이적과 기적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적과 기적을 통해 반신반의하는 백성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육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입니다. 곧 성령의 역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 아래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고,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부하는 것으로 오늘 예수님은 간주하고, 경고했던 것이죠. 이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 12절을 통해 덧붙여진 예수님의 약속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제자들이 장차 겪게 될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고, 직접적으로 개입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활동했던 예수와 동행하신 성령께서 이적과 기사로 함께 하셨다면, 그 큰 뜻을 받들어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게 될 제자들의 미래에도 성령께서 동행하며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성령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말씀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 민수기의 말씀은 출애굽 당시 모세를 도울 조력자를 세우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시작한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다가 지쳐 하나님 앞에 차라리 나를 죽여 주소서 항변 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70명을 세우라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그 명령대로 70명을 장막 주변에 둘러 세우니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사 예언하도록 허락하신 사건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오늘 모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하락하사 예언하게 하셨다 증거합니다. 곧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재 한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장로들은 예언하게 되었고, 성령이 떠나시자 예언을 멈추게 되었음을 오늘 민수기의 말씀은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70명은 그들의 의지에 따라 이 자리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능력을 구하거나 기도해서 귀한 능력을 허락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성령을 받고, 예언하게 되었음을 민수기는 보여줍니다. 마치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이 위정자들 앞에 섰을 때 그 말을 성령께서 가르치리라 하신 약속처럼 오늘 70명의 장로들도 그들이 할 역할을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인도하신 것이죠.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70인의 장로로 택함 받은 자 중 ‘엘닷과 메닷’이 장막 주변에 있지 않았음에도 진중에서 예언했다는 증언입니다. 그들이 왜 장막 근처로 나오지 않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도 그들의 자리에서 예언했다는 것이죠.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말리소서’ 권유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 엘닷과 메닷은 지도자의 명령에 불복한 자요, 질서를 무너뜨리는 존재로 생각됐던 것입니다. 철저히 모세의 통제 아래 능력이 행해지고, 역할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호수아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어찌보면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우리 안에서, 우리 교회에서 기적이 나타나고, 이적이 나타나는 것은 기뻐하지만 다른 교회에서, 다른 이들이 기적을 경험하고, 이적을 경험하는 것에는 매우 비판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일명 내로남불인 것이죠. 내 안에 일어나는 역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이지만, 다른 편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사탄의 역사는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질입니다. 왜요?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우리 교회가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돋보여야 하니까요. 다른 이들의 능력이나 업적을 낮추어야 내가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속내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 아래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나야 그 권위가 흔들리지 않는데, 오늘 엘닷과 메닷은 그 통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벗어났으니 그들은 그 거룩한 능력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호수아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단칼에 여호수아의 판단과 생각을 거부합니다. 그리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백했습니다. 곧 이 놀라운 역사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면 누구나 선지자가 될 수 있고,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놀라운 이적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름 받은 우리는, 택함 받은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사용 받는 도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면 세상 모든 백성들이 그의 도구가 되고,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하나님이 택하시면 모세와 같은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지, 그 뜻을 받드는 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성령강림 사건을 목격한 자들의 변화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부인하고, 인정치 않았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목격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오늘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찔림’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애써 부인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 ‘찔림’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들의 무지함에 대한 ‘찔림’이었습니다. 그럼 이 찔림은 어떻게 온 것입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베드로를 인도하사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케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그 설교를 듣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셨던 것이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임하사 놀라운 방언의 은사를 허락하셨던 성령께서 이번에는 그들을 목격하고, 설교를 듣던 이들에게 임재하사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이는 결과로 인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찔림 받은 이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향해 ‘어찌 할꼬’ 물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화답한 것이죠.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에서 돌아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찔림’에 움직이고, 돌아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나타난 ‘찔림’은 지금껏 그들이 믿어왔던 과거에 대한 부정이고, 그들의 신앙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바로 잡겠다는 결단인 것입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찔림을 느끼면서도 인정하지 못하고, 돌아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현실은 그 찔림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요? 그 찔림을 주시는 주체가 성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를 인정했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례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게 되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 가운데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갔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거룩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증인이 되시게 하시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폈던 세 본문의 말씀은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해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에 따라 주체적으로 활동하십니다. 마치 예수께서 마지막까지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 희생과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셨던 것처럼, 성령님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 땅에 있는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사 거룩한 하나님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그 성령님의 역사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역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찔림이 있으면 그 찔림대로 회개하는 것이고, 이끄심이 있으면 그 이끄심대로 나아가 증거하는 것이고, 역사하심이 있으면 그 역사대로 이적과 표적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 하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최근 교회가 위기라는 말이 많습니다. 이는 코로나 19의 확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온 우리들의 잘못 때문이기도 합니다. 불감증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삼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우리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살아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는 성도’들 되는 것입니다. 그 인도하심에 따라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의 칭송을 받고, 구원 받는 성도들을 더하는 교회가 될 때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예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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