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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주일(0-2) - " 팬데믹 시대에 오신 성령 "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20-05-29 (금) 18:49 3년전 1544  

본문) 행 2 : 1–21, 요 7:37-44, 겔 36:22-28

 

오늘은 성령강림절기를 여는 주일입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 성령의 강림이 성자 예수님의 탄생 못지않게 이 세계와 온 인류에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보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왔잖습니까-? 

 

사실 나사렛 예수님은 육체적인 한계와 유대 땅이란 공간의 제한을 엄격히 받으셨습니다. 비록 그가 그곳에서 메시아의 놀라운 사역과 은혜를 베풀고 계셨어도, 그런 그를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공유해 줄 매체가 없었다면, 그 예수는 만민의 구주가 되실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은 인간들만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일하실 영적 도우미가 필요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께서 줄곧 예고하셨던 보혜사 성령이셨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전하려는 일, 바로 그 거룩한 일이 오늘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행2장은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을 생중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땅과 하늘의 두 세력들이 그 일을 위해 만났습니다. 즉 예수의 말씀을 받아 예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있던 땅에 속한 120여명과, 하나님과 예수의 영으로서 예수를 온 세상의 주로 높이 세우시기 위하여 오신 하늘의 존재인 성령이 역사적인 도킹(docking)을 하였습니다. 

 

서로 공존과 공유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이 두 이질적인 세력들이 이렇게 도킹하며 만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란 구원의 백신(vaccine)’을 온 세상에 전하여, 죄와 저주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하루가 다르게 죽어 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슬픈 인류(人類)들을 구원하시려고 만났습니다(요3:16). 그 일을 위하여 예수는 보다 일찍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택하여 훈련시키며 당신의 증언자들로 세워 놓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은 그런 제자들을, 앞뒤와 안팎에서 돕고 협력하기 위하여 지금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둘의 동시연합적인 출격(出擊)이 성령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둘의 일거수일투족에 의하여 인류는 구원의 새 역사를 써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승리하고 악마는 패퇴하는 역사의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그들의 거룩한 영적 투쟁기(鬪爭記)입니다 

 

특히 오늘의 강림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의 지구촌이 대 유행병(流行病)이란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하여 수많은 세계인들이 고통하며 허망하게 죽어가는 시점에서, 이 절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6개월간 코로나 확진자는 570만명, 사망자는 35만명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이 때의 우리 목표는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일일 수 없습니다. 그때처럼, 성령강림으로 저주의 시대와 흑암의 위협들을 끊어내는 데에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도움이 될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교회사학자-김영호목사연구)

 

☞ 초대교회 시절인 제2세기와 3세기에도 두 번의 대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십년이 넘는 오랜 세월, 수 천만 명의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그때마다 로마 황제들은 그 원인을 ‘이방신을 믿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라며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승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차원의 교회의 대응들 때문이었습니다.  

 

① 그 때를 이웃사랑을 실천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감염자들을 보살피고, 소생하도록  음식을  제공하며,  환자가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게 도왔습니다. 그러다 병이 옮으면 그 아픔을 십자가 사랑으로 기꺼이 품으며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② 환자를 사랑하되, 교회 신자들은 물론 이교도(異敎徒)들까지도 차별 없이 돌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화평(和平)의 복음에 근거한, 올바르고 제대로 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③ 버려져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시신(屍身)들 수습에 앞장섰습니다. 자신들도 도피하여 무덤에 살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고 시신들을 수습하며 거리들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④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활 신앙을 품고,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불안에 떠는 숱한 병자들에게 희망의 천국 복음을 깊이 전했습니다.   

☞이런 차별화된 부활 신앙으로, 팬데믹은 도리어 교회가 온 세상의 참 희망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코로라19 팬데믹을 우리 교회를 회복시킬 도구로 삼을 수는 없을까요? 있다면,그 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주의 제자들인 우리 자체를 말씀 앞에서 점검하는 일입니다. 우선할 점검 사항은, ‘성령이 앞세워 함께 일하려고 하시는 대상들이 누구였는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본래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일하시고, 되게 하시는 보혜사이시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다음 몇 가지 부분들을 확인해야겠습니다. 

 

1) 성령과의 도킹을 이룬 사람들이어야 합니다(행2:1-4). 즉 성령을 받고 그의 충만함 속에서 성령과 일체를 이룬 사람들이, 성령의 뜻을 과감하게 실천해갈 인물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찍이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8:9절).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성령 받는 문제를 어서 해결해야만 하겠습니다. 

 

2) 성령은 경건(敬虔)한 사람들을 먼저 찾았습니다(5-11절).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나라가 멸망당하면서 온 세계로 흩어져 살아온 교포들(디아스포라)로서, 늘 여호와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대망하면서 고국을 방문하거나 고국에서의 은퇴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던 종말론적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육신으로는 유대인이었으나, 그러나 마음과 생활문화는 온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세계인들이었습니다. 언어,풍습,문화,의식 모든 영역에서 외국인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왔던 본토의 히브리계(界) 유대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런데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구원을 이루려는 꿈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사전에 예고된 일이었습니다(겔36:22-25). 거기에서, 여호와는 흩어진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의 더럽혀진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예고하셨습니다. 그것도 당신이 부어주실 새 영을 통해서 두 가지를 하겠다고 예고하셨습니다. 

 

①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고 ② 그 마음으로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26-27절). 그래서 그들은 변화된 마음과 정결해진 삶을 따라, 그곳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며, 그 결과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여주게 되리라고 예고하였습니다(28절). 이 예언이 지금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런 차원에서, 그들은 이미 본인들도 모르게 예수와 그의 복음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하여, 훈련된 자질과 여건을 오랫동안 축적하여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필요한 부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고대(苦待)해 왔던 그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만 갖게 되는 일입니다. 그 점만 채워지면, 그들은 즉시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전 세계에 전할 요원이 될 인물들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목회자나 선교사들만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실한 평신도들도 일깨우셔서 주변을 놀라게 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일을 광범위하게 맛보게 하십니다. 

 

3) 공식적인 설교자(說敎者)도 세우셨습니다(14-21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결코 막연하고 희미한 분이 아닙니다. 매우 선명하게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다만 당신이 세우신 종과 대언자(代言者)들을 통하여 당신을 전하실 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을 전하게 하십니다! 

 

‘설교(說敎)의 시대’도 여셨습니다. 원조는 예수님이시지만, 성도의 모임체인 교회에서의 첫 설교자는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모르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들을 상대로 첫 설교를 하였습니다. 목숨을 건 설교였습니다. 그 설교의 요지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서 자기들과 같은 평범한 자들에게도 주의 영이 임하셨음을 알리며, 그들 모두도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얻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주’가 누구입니까?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예수였습니다! 곧 ‘그 예수가 구세주’란 설교였습니다!

 

4) 지구촌에 ‘그리스도인’(Christian)을 등장시켰습니다(21절,9:14,21,22:6,고전1:2참조). 설교에 응답하는 자들 중에, 예수를 ‘주’(퀴리오스)로 부르는 자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 대상은 무제한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21절). 이는 바로 예수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하신 말씀에서 연유된 것이었습니다. 이상의 핵심적인 요점들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 자체를 잠시 들여다봅시다.

 

서신서를 봅시다

성령 시대를 여는 오순절 아침 9시는 하늘 문이 열리면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거기 모인 120여명 각 사람의 위에 임하는 때였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약속하셨던 ‘그 보혜사 성령’께서 이 세상에 강림(降臨)하시고 있었습니다(1-3절).

 

1) 본래 ‘입김, 바람, 호흡, 폭풍’의 뜻을 가진 성령은, 1차로 그곳에 모인 예수의 무리들 120명에게 충만하게 임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지역 언어들을 말하게 하였습니다(4절). 

 

2) 그 언어가 겨냥한 주 대상들은 예루살렘에 체류하던 디아스포라들이었습니다. 그들 교포들은 신앙심이 매우 경건(敬虔)한 자들이었습니다(5절). 성령은 그들에게 그들의 출신지 언어로 듣게 하였습니다. 당시 거기에는 최소한 15개국 이상에서 모국의 오순절기를 지키려고 몰려 온 큰 무리의 교포들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성령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반응은 엄청났는데, 온 무리들이 소동하고 놀라며 신기해하고 혼란과 당황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6-8,12절). 

 

3) 충격 받은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방언하는 자들이 모두 갈릴리인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유대의 북부지역으로서, 유대사회에서는 멸시천대를 받는 지역이었고, 무지와 가난과 친(親)이방적으로 차별을 받는 자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자기 출신지역 외국어로 자기들에게 말을 걸어왔으니, 정말 충격이 컸습니다. 둘째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고 있는 일에 충격과 혼란이 더 컸습니다. 그들 일부는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며 조롱도 했습니다. 혼란이 컸기에, 수습과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4) 베드로가 설교(說敎)무대에 등장합니다(14-21절). 수습과 설득과 선포를 위한 설교였습니다. 먼저는 그들의 성령 역사에 대한 혼란과 무지에 대한 해명을 했습니다. 자기들의 이번 방언이나 예언은 성령에 의한 역사로서, 자기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이 오래 전에 이미 예고하였던 그 예언의 성취(成就)로서 나온 것임을 역설하였습니다(16-20절). 

 

어떤 내용의 예언이었습니까? 말세에 하나님이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터인데-, 그 때는 남녀차별(男女差別)이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이나 인종차별(人種差別)도 없이 모두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즉 성령의 대중화(大衆化)와 세계화(世界化)를 예고하신 내용이었습니다. 성령의 대중화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사람 누구나 차별이나 제한 없이 성령을 받아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받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21절). 더 이상의 제사장이나 교역자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평신도 중심의 종교로 거듭나,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과 구원에 가득하도록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복음서도 봅시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초막절을 맞이하여, 백성들이 베데스다에서 물을 긷고 예루살렘 성전에다 뿌리는 예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시면서, 모두가 구원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외치신 것입니다(사12:3,44:3,시78:15-16,겔47:1-2). 곧 땅의 물이 인간의 목마름을 해소하거나 구원의 생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자가 받게 될 성령이 인간의 구원을 제공하는 것임을 일깨우시면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령을 받게 되리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37-39절). 

 

오늘 서신서 내용은 그 주님의 외침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해 줍니다. 성령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주님께서 그들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보혜사로 보내셨던 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을 통하여 자신들의 구원은 물론, 온 세상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예언서도 봅시다

본래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생활 등의 치욕적인 수난과 시련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강팎하게 하며 그의 말씀에 귀를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여호와께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영(靈)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돌 같은 완고한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영이 지금 오순절에 모인 가족들에게 임하셨고, 경건한 디아스포라들을 향하셨던 것입니다. 새 사람, 새 세계를 열려는 성령의 약속된 행보였습니다.

 

결론입니다

2020년에도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것도 팬데믹의 공포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기뻐하며 나와 도킹하도록 간구합시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버림당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도 물론 나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기도에 힘쓰고 말씀 듣고 행하기에 열심을 냅시다. 여기에 경건한 삶은 필수입니다. 성령과의 겸손한 동행으로 ‘주’를 드러내며, 내 생애가 주의 큰일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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