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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11-1) - " 긍휼함으로 " / 전완기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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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11-1) - " 긍휼함으로 " / 전완기 목사

관리자 2019-08-22 (목) 09:33 27일전 86  

본문) 서신서(2:1~13) 구약(57:14~19) 복음서(14:1~11)

 

오늘 복음서 본문은 어디서 본 것 같아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주 복음서의 말씀 (12:9~14)과 내용이 똑 닮았는데요. 지난 주 복음서는 (12:9~14)으로 (3:1-6; 6:6-11)에 기록된 평행본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만난 한쪽 손 마른 사람이었고, 오늘 본문은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만난 수종병 든 사람입니다.[수종병(dropsy)은 전염성 독혈증의 하나. 대장균의 혈청에서 산생되는 독소가 장으로 흡수되어 일어난다. 신체의 조직 간격이나 체강(體腔) 안에 림프액, 장액(漿液) 따위가 많이 괴어 있어 몸이 붓는 병을 말함. 대부분의 질병이 그러하듯이 심해졌을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병이기도 함] 우리는 지난 주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 회복되어진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역시 수종병 든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 회복되어진 사건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모두 안식일(주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에 긍휼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긍휼 [矜恤]이란 1.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 2.가엾게 여겨서 돕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휼한 마음은 이웃을 대할 때 나의 입장이나 가치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 즉 이웃의 상황을 헤아려 살펴주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처럼 성령강림 절기를 지내는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한 일 특별히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성령강림 절기의 마지막인 열한째 주일을 지내며 긍휼한 마음으로 우리가 이웃을 향하여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에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말씀에 귀 기울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서신서를 보겠습니다(2:1~13)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시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의 차별은 공동체를 서로 분리시키고, 피차간에 시험에 들게 합니다(1~4). 사람의 외모에 근거해서 차별하는 것은 악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차별 없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조건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교회와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믿음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상 주시며, 영적인 은사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비록 나의 삶이 가난하다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만큼은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사회에서 천대받던 부류였습니다. 사회에서도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오히려 그들을 차별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농락하고 압제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습니다(5~7).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부유함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우상숭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핵심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고 살피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내 자신도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함을 입어 영적인 자유함과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다시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8~13). 긍휼이 여김을 받아 복음을 누리고 있는 자답게 긍휼과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긍휼을 베푸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57:14~19)

 

본문에서는 이사야가 놀라운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상문화를 제하여 버리신다는 것(14)

둘째, 다시는 우상문화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완벽한 장치를 마련하신다는 것(15) 더불어 그와 같은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16)

 

선민들조차 우상문화에 물들어 산당제사와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영과 혼이 완전히 말살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인간들에게 끝까지 진도하시며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길을 내어주시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과 혼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식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영과 혼을 살려서 다시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한 일을 수행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를 향하여 긍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창조주의 마음이 창세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우리가 함께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14:1~11)

 

오늘 본문의 상반부는 예수님께서 수정병든 사람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회복시키신 사건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으니 이제 후반부에 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두령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아마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강론을 듣고 감동을 받아 초대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소중히 지킵니다. 가족과 함께 지키고, 회당을 다녀와서는 두 세 가정이 함께 모여 전날 준비한 음식을 놓고 빙 둘러앉아 오찬을 들며 얘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본문 중에서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는 말씀으로 보아 식탁 분위기가 좀 썰렁했음을 예상 볼 수 도 있겠지만 어떻든.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려고 앉았는데 보니 누가 상석에 앉느냐는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신 예수님께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쉬운 요령을 가르쳐 주십니다.

1. 절대로 상좌에 앉지 마라. 높은 자리에 안 앉으면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2. 가장 낮은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것입니다. 더 낮아지지 않을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더라도 먼저 올 경우 말석에 가서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벗이여, 올라와 앉으라고 너를 높여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말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한 진리입니까? 그런데 이처럼 쉬운 진리에도 교만으로 어두워져서 부끄러움을 당하니 얼마나 꼴사나운 일입니까? 자리에 앉는 것까지도 겸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마음속으로도 겸손하고, 밖으로 나타나는 행동도 겸손하고, 말씨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11까지 보면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겸손하신 예수님을 높이셔서 만왕의 왕을 삼으십니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땅 아래서나 모든 무릎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벧전 5:5에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해본 대로 겸손하기가 그리 쉽지 만은 않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처음에 언급한 우리가 이웃을 향하여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중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서신서는 긍휼한 마음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차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은 비록 범죄하였으나 긍휼한 마음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니 복음서의 말씀에 등장하는 긍휼하신 예수님 처럼 내가 먼저 긍휼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섬기는 것이 선한 일이지 않을까요?

 

결론입니다.

 

차별 당하지 않으려면, 차별하지 말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이 아닌 성령님을 의지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거 되는 것이 가능해 질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일을 위해 내가 먼저 긍휼한 마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차별 없이 긍휼함을 입은 자답게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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