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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10-2) - " 죽이는 법을 넘어 살리는 법으로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19-08-17 (토) 09:26 4년전 3029  

본문 – 갈5:1-15, 출31:12-17, 마12:9-14

 

1)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입니다. 법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각종 사회적 범죄로부터 보호해주고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법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힘을 가진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지켜주는 반면에 힘없는 사람들을 법의 억압하고 강제하는 역기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선한 의지를 통해서 만들어진 법이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역기능을 발휘한 사례들을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법이 오히려 사람들을 옥죄고 억압하며 나아가서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악한 자들의 도구가 된 사례들이 수없이 믾이 있습니다. 법 자체가 사회를 통제하고 억압하여 가진 자들의 이권을 지켜주고 약한 자들을 수탈하려는 목적에서 제정된 악한 법들도 많이 있지만 선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악하게 해석되고 사람들을 괴롭히며 사람들을 죽이는 법으로 악용된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은 안식일 법을 비롯한 율법을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주셨는지 그리고 그 법을 사람들이 어떻게 악용했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법을 어떻게 해석하시고 법의 근본 취지를 살리셨는지를 세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소유냐 존재냐>에서 안식일 법 해석 -에리히 프롬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그의 말년에 쓴 <소유내 존재냐>(To Have or To Be)1980년대 초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책입니다. 이 책에서 프롬은 소유 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과 존재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구분하며 참된 행복을 위해서 존재양식의 삶을 살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 내용 중에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내용들을 하며 구약의 아브라함과 모세의 삶이 소유의 삶이 아닌 존재의 삶을 추구한 것임을 말하고 특별히 안식일 법을 소개하며, 안식일 법은 존재의 삶을 위해 주어진 법이라는 점을 부각하여 설명한 것을 인상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안식일제도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안식일에는 경제활동이 제한되어 있으며, ‘아무것도 파괴되어서도, 아무것도 건설되어서도 안 되는날의 의미를 실현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안식일에는 개인은 그가 마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며 존재 이외의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다. 즉 기도하고, 공부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사랑을 하는 등 그의 본질적인 힘만을 표현한다.”라고 해석함으로 안식일 제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법임을 밝혀줍니다. 에리히 프롬의 생각은 원래의 안식일 법은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법이었다는 것입니다.

 

3) 약자들을 위한 안식일 법 출애굽기 31

이스라엘은 한 곳에 정착하기 이전 오랜 유랑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서 노예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출애굽 이후 새로 안정된 땅에 정착해서 살게 될 경우 자신들이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당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어왔습니다. 그러한 저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법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법이 바로 안식일 법입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 출애굽기 3112절 이하의 말씀은 성막에 관한 규례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을 주십니다. 이 안식일 규정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만일 이 안식일 규정을 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이라는 무서운 벌칙규정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안식일 규정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과 결부지어서 창조의 기념일로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고 이날은 모두 안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안식일 규정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중 4계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서의 안식일 규정에서는 네 아들이나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합니다. 결국 이 안식일 법은 약자보호법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은 나아가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만드는 법 곧 사람을 살리는 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예로 일하는 사람들은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압받는 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가야하는데 적어도 이 안식일 만큼은 쉴 수 있도록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법으로 모든 사람들이 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4) 사람을 죽이는 법 예수님의 안식일법 해석(마태복음 12)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과 안식일 문제로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안식일 법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하는 규례들을 만들었습니다. 토라에 미슈나를 더하여 여러가지 금지 사항을 규정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밭갈이, 파종, 수확, 건물의 건축과 해체, 방직, 바느질, 사냥, 도살, 망치질, 요리, 빵굽기, 글쓰기, 불을 켜는 것과 끄는 것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슈나 규정은 안식일에 얼마까지는 걸어가도 괜찮고, 그 이상 가면 죄가 됩니다. 그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거룩하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바느질을 두 번 하면 괜찮고, 세 번하면 죄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규정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고 차별하여 죄인으로 낙인찍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만든 법이 사람을 비인간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드러내놓고 문제를 제기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을 비벼 먹은 일을 두고 시비를 걸어오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던 시절 규례를 어기고 성소의 제단에 진설한 진설병을 먹은 것을 예로 드시면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7-8)고 하시며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것이 더 잘못이라는 점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보라는 듯이 치료하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시는 휴머니스트로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법보다 더 큰 법이 없음을 확실하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율법의 조문에 얽매어서 사람들을 옭아매는 법에서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무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평상시에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규정이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것을 예수님은 거부하신 것입니다.

 

5)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 5

갈라디아서는 복음과 율법, 믿음과 행위에 관한 사도 바울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할례문제를 놓고는 조금치도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유대교의 할례주의자들에게 겁니다. 유대교주의자들에 있어서 할례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표지(sign)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할례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은 복음전도의 문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굴레를 씌우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이 죽음을 통해서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버리고 할례의 굴레를 다시 뒤집어쓰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또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할례냐 무할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5:6)

 

6) 맺음 -살리는 법, 죽이는 법

법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바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2:27)는 말씀을 하신 것을 우리가 깊이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법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해 만든 법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것입니다. 사람들을 살리는 법을 사람들을 죽이는 법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을 죽이는 신앙이 아니고 ,사람들을 살리는 신앙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건강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화석화된 죽은 법조문을 넘어서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고 선언합니다.

 

사랑보다 더한 법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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