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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9-2) - " 나의 사랑 나의 조국 대한민국 " / 평화통일주일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08-10 (토) 18:23 3개월전 257  

본문) 레19:9-18/ 롬12:9-21/ 눅6:32-38   성령강림아홉째(평화통일)주일

 

8.15 해방 74주년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오늘은 이 민족이 출애굽 한 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해방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일본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임진왜란을 비롯한 침략전쟁과 36년간 무력으로 강점했던 과거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납득할만한 진정어린 참회나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최근에 정상회담과 잦은 접촉으로 평화통일을 향한 문을 열어가고 있지만 견고한 불신의 장벽은 아직 허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두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풀어가야 할 가장 큰 과제를 안고 몸부림 중에 있습니다. 경제력과 기술로 앞선 일본은 통상보복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은 무력시위로 우리를 향해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평화통일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본문 말씀은 공히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일방적인 경제보복에 들어간 일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는 이 시기에 하나님은 ‘이웃사랑’의 말씀을 과제로 주신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 그 사이에서(롬12:9-21/ 눅6:32-38)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을 때,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때,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우주적 사역의 초점이 바로 “나”를 향한 사랑의 섭리였음을 알 때 비로소 우리가 존재 자체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사랑으로부터 이웃사랑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 인간관계의 단절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고 사랑하지 않으며 이웃을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은 이웃을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게 되고(레19:18) 자기사랑은 이웃사랑으로 확산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원수 사랑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미성숙한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입니다. 내게 필요한 사람들만 사랑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삼아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됩니다. 마침내 참 사랑은 모든 장벽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분노와 미움으로부터 자유하며 완전한 해방과 구원을 얻습니다. 더 이상 분쟁은 없습니다.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사랑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갑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듣고 ‘악’과 ‘불의’까지 사랑하면 큰일 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12: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사랑이요 건강한 사랑입니다. 악과 거짓을 용납하면 사랑이 병들고 무너집니다. 거짓 사랑은 더 파괴적이고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나라는 두 길이 교차(cross)되는 곳에 세워집니다. 하나의 길은 모두를 품고 모두를 용서하며 모두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 된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의 허물을 덮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길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길입니다. 악을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사랑을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고난을 경험한 나라중 하나입니다. 지정학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늘 한반도에서 부딪쳤습니다. 5천년 역사 가운데 한반도 북쪽에 있는 강대국들에 의해, 해양세력인 일본에 의해 많은 침략과 약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강대국들에 의한 침략전쟁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민족은 그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고 항상 일어섰다는 사실입니다. 강한 나라에 굴복하지 않았고 망하지 않았으며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 역사가 단절된 적이 없이 반만년을 견뎌왔습니다. 일제 36년간 국권을 상실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기력한 국가 지도자들이 나라를 포기한 적은 있어도 국민이 나라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3.1운동입니다.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우리는 일본 황제의 신민이 아니라 당당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의 국민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어떤 압박에도 일본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저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적처럼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은총을 주셨고 국권회복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세계인들은 한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난 나라 중에 경제부흥과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칭찬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해방 후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자마자 일어난 6.25전쟁으로 한반도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또 일어섰습니다. IMF사태로 온 나라가 경제적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지만 세계에서 제일 단기간에 그 위기를 극복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우리나라를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약한 나라들을 침략하는 큰 나라 강한 나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힘을 키워서 이웃을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어떤 강한 나라, 포악한 침략 앞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나라, 굴복하지 않는 나라, 반드시 고난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는 참으로 ‘강한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를 침략했던 나라를 보복하지 않는 나라, 우리보다 약한 나라를 정복하지 않는 ‘평화의 나라’로 세워주셨습니다. 또한 모든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절망과 아픔 속에 있는 모두에게 용기와 새 소망을 주는 ‘섬김의 나라’로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이 특별한 역사를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가 일제의 압박 속에 있었던 1929년 ‘동아일보’에 그의 시 ‘동방의 등불’을 기고해서 우리 조국 코리아를 마음으로부터 응원했습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 되리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법

 

우리가 맞이한 여러 위기 속에서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본의 불의한 경제보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존감을 지키는 일입니다. 경제적 유, 불 리가 아닙니다. 누가 힘이 세느냐가 아닙니다. 무엇이 옳으냐의 문제입니다. 민족 자긍심의 문제입니다. 일본이 갑자기 세계의 무역질서를 깨고 경제보복조치를 한 이유가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일본은 우리 정치와 경제를 지속적으로 하위레벨에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경제의 미래 핵심 산업동력인 반도체분야를 정조준해서 집중 공격했습니다. 여기에서 밀리거나 눈치 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여전한 제국주의적 공격을 감행하는 불의와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반만년동안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민족을 세우고 또 세우셨던 존재이유를 지키는 싸움입니다. 이 비열한 일본의 의도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것이 일본을 참으로 사랑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출신으로 현재 일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경제학교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여기서 지면 다시 더 크게 공격해 옵니다. 밀리면 안 되고 최선을 다해 싸워서 서로의 피해가 적어도 50대 50정도는 가야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공격할 의지를 스스로 꺾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서로의 정파적 유익을 떠나 일본의 이 무례하고 불법적인 오만한 경제보복에 맞서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점입니다. 경제력에 있어서 충분히 견딜 만 할 만큼 우리 경제가 튼실해졌고 오히려 잠시의 어려움을 잘 견뎌내면 더 튼실한 경제로, 일본을 앞서는 경제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들이 나오고도 있습니다. 

 

“No Japan!”이 아니라 “No 아베!”로

 

일본의 침략적 야망에서 나온 무역보복을 극복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심으로 일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나라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응집력이 놀라울 만큼 커지고 매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어 그 위기를 잘 넘기는 기질이 있습니다. 이일이 터지자마자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의 무역전쟁에 대항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No Japan!”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손색없는 구호와 포스터를 순식간에 만들어 날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이나 일본 국민까지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명령입니다. 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극우세력인 아베총리와 그 배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소위 ‘일본회의’ 소속의 정치인들, 일본의 혐한 극우세력의 불의한 공격의 예봉은 꺾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혐한 극우세력에 동참하지 않는 일본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No Japan!”이 아니라 “No 아베!”로 가야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랑입니다. 사실 일본 내에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빠지지 않고 순수하게 한국을 이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일본 일각에서는 “#좋아요_한국”이라는 해시태그가 번지고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정책을 반대하며 국민끼리는 서로 미워하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응답하여 한국에서도 “#좋아요_일본”이라고 해시태그를 붙이고 ‘일본비판’과 ‘아베비판’을 구분하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일본 사랑입니다. 불의까지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는 미워하나 일본국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극우적 보수정권에 비판적인 양심세력들과는 오랜 시간을 두고 선한 교류와 연대를 지속적으로 쌓아가야 합니다. 태산을 허무는 일이 한 삽의 흙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오랜 친구들입니다.

 

사랑으로 치유되는 길(레19:9-18)

 

이웃사랑은 우리의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함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레위기법전은 우리에게 이웃사랑의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곡식을 추수할 때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고 떨어진 이삭과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라는 것입니다.(레19:9-10) 이는 자신이 베푸는 선행이 사실상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게 할 뿐 아니라 그 선행을 받는 사람 또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일용할 양식을 스스로 거두어들임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참 사랑은 지극히 작은 자(억압, 착취당하는 자, 품꾼, 귀먹은 자, 맹인, 장애인, 가난한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레19:13-16/ 눅6:32-34) 작은 자들은 어떤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요, 우리의 필요를 만족 시킬 수 없는 이들이며 오직 우리의 도움과 선행을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선하게 풀어가면서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사랑하고 위로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가해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무고한 월남양민들의 학살에 대한 진정한 회개입니다.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나 보상을 원한다면 우리도 우리로 인해 동일한 고통 속에 있는 베드남의 학살 양민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실한 회개와 사과, 그리고 배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삼하 21장에는 다윗 왕 시대에 무고한 기브온 주민을 학살한 사울의 죄로 인해 3년간 가뭄이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재앙은 다윗이 그 학살에 가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의 목을 메어단 후에야 그쳤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땅에 와서 온갖 험한 잡일을 하면서 불편부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외국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해 주는 일입니다. 먼저 이 일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악한 일도 정의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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