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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6-3) - " 꽃길만 걸을 순 없다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19-07-19 (금) 15:36 1개월전 107  

본문) 계 2:8~11, 암 5:18~24, 막 13:1~13


오늘날 대다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복에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한다는 논리는 100여 년 전 한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많은 교회들의 공통된 슬로건이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바뀌는 대전환기를 맞이했지만,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이 전통의 명제는 오늘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 우리가 지금껏 알게 모르게 맹신해 왔던 이 논리는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지난 수요일 우리나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명성교회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의 하나요, 장로교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음으로 양으로 많은 기여를 해왔던 교회. 포털 사이트를 뒤덮은 명성교회 관련 뉴스의 핵심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한 재심 판결이 연기 되었다는 보도와 분석 기사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띄었던 제목 “400억 파워”. 명성교회 1년 헌금이 400억이라는 보도와 함께 그 파워를 무시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교회 현실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명성교회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능력이 교단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조문의 적용에서 조차 소극적이게 만들고, 심지어 총회에서조차 그에 대한 판결을 함부로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명성교회가 자칫 교단 탈퇴를 선언하거나, 반발하여 노회나 총회를 보이콧 해 버리면 한 해 예산 400억 파워의 명성교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오늘의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보도와 지적에 대해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부정합니다. 절차상의 논란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런 세상의 시각에 대해 부정한다 해도, 이미 세상은, 이미 사회는 그 시각으로 바라 보고 판단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으로부터 그 진실성을 의심받는 오늘 우리의 현실과 오늘 구약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며, 때마다 절기마다 그에 합당한 번제와 소제를 빠뜨리지 않고 정성스레 드리는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다른 한편으로 풍성한 결실을 위해 바알신을 겸하여 섬기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죠. 입만 열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고백하지만 현실적인 모습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듯 바알도 섬겼던 것이 북이스라엘의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금하셨던 우상숭배를 버젓이 자행하면서도 여호와의 날이 이르러 구원을 갈망하는 북이스라엘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형식적 신앙으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도리를 다했다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400억 파워 앞에 머뭇머뭇 갈등하며 말세를 이야기하고, 구원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의 풍요 앞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들에게 아모스 선지자가 선포했던 준엄한 심판 선언이 바로 지금 우리의 귓가에도 반복적으로 메아리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00억이라는 현실적인 돈과 권력 앞에서 어떻게 판결해야 될까 머뭇거리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깊은 울림이 됩니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는 오늘 마가복음의 선언은 성도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400억 파워 앞에 헌법적 가치의 적용조차 망설이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이끄신다, 책임지신다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400억 파워를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아니라 성령께 맡기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 합당한 결과인가를 고민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죠. 성령께 맡기고 나아갈 때 설사 현실적인 400억 파워를 잃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국교회는 충분히 이기고,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복음서의 이 지적은 우리의 인생이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는 인생이지, 우리들의 계획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룬 모든 것들을 우리의 능력과 우리들의 노력으로 이루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 가능했겠느냐? 되묻고 있는 것이죠.

껍데기만 교회라고, 교회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막대한 예산과 10만 명의 성도가 소속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교회라 말 할 수 없다 지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이지, 세상에 자기를 드러 내고, 자기 권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서신서의 지적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주는 사도 요한의 메시지와 오늘의 현실이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머나 교회 주변에도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들이 있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이라는 생각으로 무장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선민이기에 자신들은 특별하다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그 선민의식으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데 앞장섰으며, 선민으로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도 핍박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사도 요한이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본질은 사탄의 회당이다 지적했다는 점입니다. 곧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맞이 않다는 것이요, 거룩한 선택을 받은 백성들의 삶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핍박하고 압박하는 존재가 아니라 겸손히 이웃을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과 화목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거룩한 선민은 이런 겸손한 행동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높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명성교회 문제는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교단의 문제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와는 교단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며 상황도 다르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명성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처럼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성교회에 대해 바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퇴보하는 결정을 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한국교회는 그 옛날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선언하고 하나님과 바알 둘 모두를 섬기는 우를 범했던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오래지 않아 멸망의 길을 걸었음을 상기해 볼 때 우리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때문에 오늘 명성교회 사태로 촉발된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신앙 안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관행과 생각들을 끊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는 쉼 없이 부흥과 성장을 목표로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달리다 최근 20년간 부흥과 성장의 정체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처음 신앙을 잃어버린 채, 자꾸만 세속화 되고, 물질화되는 우를 반복해 왔던 것이죠. 그리고 오늘 명성교회의 문제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문제가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기는 있지만, 섣불리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머뭇머뭇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어찌 보면 명성교회에 대한 재심의 연기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적나라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세습의 문제에 대한 갈등이 아니라 물질주의, 성장주의 신앙을 버리고 본연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결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애매한 입장을 반복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세 본문 말씀의 지적은 매우 아프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결국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혹, 시련, 핍박의 과정을 겪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앞에 두고 갈등하고 번민했던 아담의 번뇌가 오늘까지 계속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이겨야 생명이 주어지고, 이겨야 진정한 복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이 점에서 인내하는 자에게는 구원과 생명의 과실이 주어지고, 견디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이 주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본질은 꽃길만 걸을 순 없는 것입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꽃길만 걷는다 선전하고 자랑했지만, 성도가 걷게 될 꽃길의 본질은 고난과 핍박, 유혹을 이겨낸 다음에 주어지는 거룩한 영광의 면류관인 것입니다. 고통 없이 승리 없고, 인내 없이 열매도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거룩한 그 길에 반드시 시련과 환란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현실에 예상했던 시련이 찾아온다면 우리들이 보여야 할 반응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고민과 갈등, 번민이 아니라 ~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이구나, 바른 길이구나 마음 단단히 먹자하는 안도와 결단의 자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공히 이 점을 강조합니다고난 다음에, 시련 다음에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17절 말씀을 통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상속자로서 새 생명을 원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전도하기 힘든 시절입니다. 교회의 설 자리가 점점 위축되는 시절입니다.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넘치는 시절입니다.

이 고난과 시련의 시절 우리들이 할 일은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은 고난도 기쁨으로 감내하고 승리로 나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꽃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들의 선택은 물질이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할 말을 책임지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세상에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만드는 거룩한 주의 일꾼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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