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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3-2) - " 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06-28 (금) 17:07 4년전 3339  

본문) 창 32:22-32, 엡 3:14-21, 마13:44-52

 

1960년대 하버드대학의 개혁을 주도했던 내이턴 M. 푸쉬(Nathan M. Pusey) 총장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노래, 철저히 믿을 수 있는 신조, 목숨을 걸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 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칠 수 있는 ‘꿈과 비전이라는 깃발’입니다.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있어야 청년은 행복합니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슴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자신의 열정을 태울만한 사랑을 발견할 때 젊음은 빛이 납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다 드릴 수 있는 ‘정의와 진실이라는 신조’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수고하여 얻은 모든 것,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당장 다 버리고 포기할 만큼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힘이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정상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소중한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누가 가장 자유 한 사람입니까? 내 마음대로 내 원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자유를 다 내 놓고 그의 종이 될 만 한분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에게 스스로 매인 사람입니다.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분(창32:22-32)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할 만큼 소중한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포기함으로 하나님을 얻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빼앗은 사람입니다. 그는 배고픈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았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 이삭에게서 형 에서에게 부어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밧단 아람에서 사기꾼 라반에게 속아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간을 종노릇 했지만 결국 멋진 뒤집기 한판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야곱은 누구를 만나도 어떤 일을 당해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얍복강 나루에서 대단한 적수를 만났습니다. 씨름꾼은 샅바를 잡아보면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단번에 압니다. 이번에 만난 적수는 야곱이 감히 겨룰 수 없는 강자입니다. 기술은커녕 숨도 못 쉴 정도입니다. 얼마나 강한지 자신이 상대의 손아귀에 꽉 잡혀버렸습니다. 그가 휘두르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단 번에 그 분이 모든 것 위에 계신 분, 만유의 통치자. 창조자, 크고 능하신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씨름기술로는 이 분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분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에게 지는 것, 그분에게 얻어맞아 마침내 그의 힘의 근원인 환도 뼈가 위골되도록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에게 죽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요, 그분에게 지는 것이 내가 이기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철저히 무너지는 것이 다시 사는 것을 아는 순간, 그의 옛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때 그를 압도하시던 하나님의 천사가 손을 놓고 “네가 이기고, 내가 졌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비로소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자기를 세웠던 “야곱”이 자신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죽이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입니다. 예수를 믿어 우리 옛사람은 죽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내 자유를 포기할 만큼 소중한 분(엡3:14-21)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속사람의 강건함과 풍성함”으로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출세와 성공이 아닙니다. 내 욕망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유와 모든 욕망을 다 버릴 만큼 소중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번째 기도는 성도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열정의 충만, 자신의 욕망, 정욕의 충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는 자기의 능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계시는 것입니다. 나그네처럼 잠시 거주하는paroikeo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항구적으로 정착해야katoikeo 합니다. 집주인이 오랫동안 머물러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당에 채소를 심고 집을 고치고 청소합니다. 부엌에서 밥하고 요리합니다. 온 집을 다스리고 새롭게 만듭니다. 세 번째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의 사랑에 우리의 생각뿐이 아니라 우리 의지까지 뿌리박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포기하고 육체의 소욕을 던지고 죄를 이깁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에 붙들려 살고,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 다스리시는 삶을 살며, 우리의 열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려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원대로 살면 망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인 자가 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공자에게는 안회(顔回)라는 애제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평생 공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며 배우고 섬겼습니다. 안회가 공자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장 포목점에서 주인과 손님이 싸우는 걸 보았습니다. 1자(尺)에 3전씩 하는 옷감 8자를 놓고 손님이 23전이라 우기고 주인은 24전 내라고 합니다. 안회가 손님에게 24전이 맞다 해도 우깁니다. 공자님말씀이라면 믿겠지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틀리면 손님은 자기 목숨을 내 놓고 안회는 자기 명예의 상징인 관(冠)을 내 놓는 조건으로 공자를 찾아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제자에게 "네가 졌다. 관을 벗어 주거라." 그럽니다. 실망한 안회는 다음 날 집안일을 핑계로 스승을 떠납니다. 공자는 말없이 종이에 몇 자 글을 써줍니다. “千年古樹莫存身 천년고수막존신, 殺人不明勿動手 살인부명물동수” 안회가 한참 가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쏟아집니다. 큰 고목나무로 달려가 커다란 구멍에 몸을 숨겼습니다. 문득 스승이 써준 글이 떠오릅니다. “千年古樹莫存身”(천년 묵은 나무에 몸을 숨기지 말라) 혹시 하며 나무를 빠져 나와 걸음을 옮기는 순간 고목나무에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공자의 글이 아니었으면 죽은 거지요. 집에 도착하니 깊은 밤입니다.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내가 홀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함께 자고 있어요. 아내가 딴 남자를 불러들인 것 같아요. 격분해서 호신용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보검을 뽑아 듭니다. 그 순간 벼락같이 스승이 써준 두 번째 글이 생각납니다. “殺人不明勿動手”(명확히 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살인하지 말라) 그래서 칼을 내려 탁자에 올려놓고 촛불을 켭니다. 자세히 보니 아내와 함께 누운 이는 안회의 착한 누이동생이었습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안회는 공자에게 달려갑니다. "스승님의 두 마디 때문에 제가 살고, 아내가 살고, 누이동생이 살았습니다. 어떻게 미리 아셨습니까?" 공자가 말합니다. "별 것 아닐세. 어제는 날씨가 너무 건조하고 더워서 천둥 번개가 칠 것을 예상했을 뿐일세. 그리고 고향으로 떠나는 자네 표정을 살펴보니 왠지 네게 실망하고 분한 마음이 가득해 보였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보검이 유독 눈에 들어오더군. 그 뿐일세! 그러나 한 번 잘 생각해 보게. 내가 23이 맞다고 하면 너야 그저 관 하나 내 주는 것뿐이지만 24가 맞다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하지 않겠나? 그 후로 안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자를 떠나지 않고 평생을 섬겼습니다.

 

미련 없이 다 팔아 얻은 보화(마13:44-52)


지금도 쌀을 사러가는 사람은 쌀팔러간다 하고 쌀을 팔러가는 사람은 쌀 사러간다고 합니다. 쌀은 곳 돈이었기 때문에 쌀판다는 것은 돈을 팔아(지출) 쌀을 매입한다는 뜻이요 쌀을 산다는 것은 쌀로 돈을 사서 벌어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쌀(돈)은 팔수록 우리 집 쌀독의 쌀은 많아지고 쌀이 많아서 시장에 쌀을 살(팔)수록 돈이 많아졌습니다. 쌀은 이래도 저래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요 복이었습니다. 쌀만 있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밥해서 먹고 팔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마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마13:44-52 말씀은 그 중에서 세 가지 비유의 말씀입니다.  첫 비유인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의 비유(마13:44)에서 농부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보화가 묻힌 그 밭을 삽니다. 소작농을 하는 농부의 소유는 평생을 모은 그의 전 재산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비교할 수없는 보화를 얻기 위해 미련 없이 자기소유를 다 팔아버립니다. 그건 팔아 없애는 게 아닙니다. 더 좋은 걸 사고 얻는 것입니다. 기쁘고 좋은 일입니다. 두 번째 비유인 진주장사(마13:45-46)의 비유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난 진주장사가 그동안 소중하게 모았던 작은 진주들을 아낌없이 송두리째 팔아 그 값진 진주를 삽니다. 그동안 모았던 진주들, 하나하나 수고와 땀과 헌신이 들어간 소중한 것들을 미련 없이 팝니다. 그러나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진주를 얻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어부의 비유는(마13:47-50) 어부가 던진 그물을 건져 올려 고기를 잡는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 위에 잡은 고기를 놓고 고르기를 시작합니다. 이게 더 어렵습니다. 열심히 골라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미련 없이 다시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우리는 아깝다. 그렇게 수고했는데 저걸 그냥 버리다니 그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섞여 있으면 전체가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골라내 버려야 비로소 남은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더 좋은 가치를 얻기 위해 못된 것은 골라 버리는 것입니다. 

장사는 투자입니다. 장사를 잘하는 것은 작은 것을 투자하여 그보다 큰 것을 얻고 값싼 것을 투자하여 그보다 값비싼 것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한한 것을 투자하여 영원한 것을 얻고 보잘 것 없는 것을 투자하여 영광스러운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크고 영광스러운 것을 얻는 것이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눈물을 쏟고, 땀을 쏟고,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서라도 얻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오늘도 밤을 새워서라도 만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당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려도 아깝지 않는 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 함석헌선생의 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운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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