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40:17~38, 빌 1:3~11, 마 18:15~20
주님의 평화
성령강림절 열한 번째 주일,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해방은 도적같이 왔고, 나는 그 도적 앞에 벌거숭이로 서 있었다.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살을 에는 듯한 수치심이었다." (채만식 민족의 죄인 중에서)
해방이 도적 같이 왔다는 표현은 생각지도 못했던 해방이 왔다는 뜻이겠지요. 해방을 갈망하던 자들은 자력으로 해방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이고, 해방은 불가능하다고 체념하고 일본에 굴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의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선물로 주어진 해방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를 세우는 기회였습니다. 그 열망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일은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낳았고 오늘까지 그 아픔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평화통일 주일로 지킵니다. 그 길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읽은 세 본문에서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공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언약 백성의 새 역사의 길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출 40:17~38)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출40:17)
모세와 이스라엘은 성막이 완성된 후, 새해 첫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언약궤를 지성소에 두고 휘장을 늘어뜨려 증거궤를 가려서 구별하였습니다. 성소의 기구들 상, 등잔대, 분향단, 번제단, 등을 성별하여 놓았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수족을 씻고 회막에 들어갈 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마쳤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 위에 충만하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구름이 성막 위에 떠 오르면 이동하고 멈추면 행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여정에 함께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애굽을 탈출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으로 세상 가운데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언약공동체가 거주할 땅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징으로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은 위대한 기적도, 전쟁도 아닌 “말씀대로 한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마칩니다. 해방은 애굽을 떠난 것으로는 완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예배하며, 순종하고 하나님의 듯을 펼치는 공동체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 일에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7번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19, 21, 23, 25, 27, 29, 32절)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 이루어집니다.
둘째, 풀무불 가운데 있는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빌1:3-11)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힘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중에 기록한 옥중 서신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중(행 16:11-40) 유럽 대륙에 최초로 세운 교회로서, 유럽 선교의 교두보가 된 곳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교회가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강력한 지도자가 감옥에 갇히고,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지도력의 혼란이 일어나고, 교회 내부의 갈등까지, 교회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바울은 기쁨으로 편지를 씁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안심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자”라고 합니다. (빌2:18) 그가 옥중에 있으면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1:6)
복음의 역사와 복음 공동체의 형성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기에 하나님이 완성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소망을 잃지 말고 힘써 주의 일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그 착한 일에 빌립보 교인들이 처음부터 함께 했다고 상기시키며 감사했습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빌1:5)
“복음 안에서의 참여”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참여”(κοινωνία, 코이노니아). 이 말은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복음을 함께 짊어지는 동역. 재정적 후원 고난의 연대 선교적 협력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하나님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풀무불 같은 시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뻐하고 일할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역사와 복음 공동체 형성에 빌립보 교인들이 처음부터 함께 했음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성도를 사랑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내용은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9-11)
우리의 삶도, 교회도 풀무불 같은 고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일, 옳은 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다가 겪는 어려움입니다. 그때 바울의 이 권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견디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도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마18:15-20)
마태복음 18:15-20절은 중보기도의 권세와 하나님 임재의 약속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은혜의 관점에서 읽어보고자 합니다. 말씀 전체의 문맥에서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내 계획, 욕심, 목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죄인을 돌이키게 하는 것",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죄악에서 돌이켜. 실족하지 않고, 주의 뜻대로, 주의 기뻐하심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가서 권고했을 때 듣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회개를 권고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럴때 이방인처럼, 세리처럼 여길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라. 그 사람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말씀처럼 작은 자, 잃어버린 자,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을 주께 돌이키도록 기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나님은 해방의 언약공동체를 위해 말씀을 따라 행진하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구원과 복음의 공동체가 고난 중에 있을 때도 지키시고 함께 하십니다.
선한 일을 위한 중보기도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통일 주일입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평화통일의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합시다.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주님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신자본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교인들의 노령화, 인구감소의 위기 속에 있는 교회, 하나님이 지키시고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그 길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