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슥 8:18~23, 행 11:1~18, 막 7:24~30
오늘은 성령강림후 셋째 주일, 총회 선교주일입니다.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지향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에서 선교는 근본적으로 교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본다면 “세상 속에서 구원의 선교를 성취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성부를 통해 역사하는 성자와 성령의 교회를 포함하는 선교이다.” 그러므로 선교란 세상을 향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운동입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샘솟게 하십니다.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는 곧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는 그 소명과 본질상 선교적입니다.
오늘 읽은 세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은 슬픔과 탄식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회복하십니다. (슥8:18-23)
스가랴서 8장 18절-19졀 말씀입니다.
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할 때 그들은 1년에 네 번씩 금식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금식은 그때 한 네 번의 금식을 말합니다. 넷째 달 금식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 4월 9일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섯째 달 금식은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기원전 586년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왕하 25:8-9). 일곱째 달 금식은 멸망 당시인 시드기야 왕 11년인 기원전 586년 7월에 유다 총독 그달랴와 수많은 유다 백성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렘 41:1-10). 열째 달의 금식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 성중에 굶주림이 시작된 날인 시드기야 왕 9년, 곧 기원전 588년 10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이 네 번의 금식은 비극을 기억하는 슬픔과 탄식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탄식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으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그 약속이 우리의 꿈이 되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믿고 기도하고 일하는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기쁨의 공동체가 될 때 사람들은 그 일을 하신 하나님을 찾고 교회를 찾아오게 됩니다. 20-22절 말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회복하신 교회의 비전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나도 교회 갔으면 좋겠다.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유다 사람 한 사람의 옷자락을 이방사람 열명이 붙잡는다고 했습니다. 열이라는 숫자는 만수입니다. 구원의 놀라운 소식이 많은 열국 가운데 확장되고 열국들이 유대로 몰려오는 모습을 그려 보여줍니다. 수많은 이방인이 유대인들과 연합하여 구원의 공동체가 확장되어 가는 놀라운 비전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이 일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며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약속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차별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탄식을 기쁨으로 회복시키십니다. 회복된 우리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기쁨의 공동체가 되면 만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려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 일을 기뻐하고 화평과 진리를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선교를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리십니다. (행 11장 1~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말씀대로 성령이 임했고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전히 예루살렘과 유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들과 교제를 금하는 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 벽을 하나님이 허물어 주십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큰 그릇이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베드로는 단호하게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먹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어찌 네가 속되다고 하느냐?"
그 의미를 헤아리던 베드로는 하나님이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를 방문하고 세례를 베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방인과 함께한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이방인)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11:17)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는 이 말은 강하고 담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법과 문화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초월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만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기를, 우리의 복음전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복음이 퍼져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인간적인 여러 가지 문화와 관습과 편견과 선입관으로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선교를 가로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모든 벽을 허물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막 7:24~30)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배타적인 유대민족의 틀을 깨뜨린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자기 믿음만 옳은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것이 틀렸다고 증명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온 인류를 죄와 슬픔과 탄식에서 구원하시고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그것이 선교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증언하는 마가복음 7장 24-30 말씀은 앞의 문맥(막 7:1~23)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정결법 등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방인들을 배제하려는 유대인들 법을 깨뜨리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메시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과 함께 움직이고 있기에 모든 가로막는 장벽들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강력한 임재 앞에 무엇이 필요한가? 믿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믿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사람들의 관습이나 법, 제도롤 보면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곤고함에서 벗어날 길도 없습니다. 신의 은총을 받고 딸의 곤경을 해결할 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은 그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딸을 고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할 메시아”임을 믿었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다는 믿음의 고백은 예수가 구원자임을 믿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귀신들린 딸을 구원할 메시아임을 믿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복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시고 전파되게 하십니다. 그 일에 우리를 쓰십니다.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믿고 증거하십시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