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렘 1:4-10, 행 9:1-19, 마 9:35-10:1
성령강림 후 둘째주일인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환경주일입니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지금 환경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봄을 느껴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건너뛰는 기상이변을 겪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춘추복(春秋服)이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고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지금 벼랑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를 탄 것처럼 파국(破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멈추어야 하는데 멈출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금 여기서’ 절제하는 ‘생명 살림’의 길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벼랑으로 내달리는 지구 열차를 멈추게 할 하나님의 일꾼들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일꾼들을 부르는 하나님
예레미야서 1장은 예레미야의 소명(召命) 기사입니다.
예루살렘의 근교인 아나돗에서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예레미야는 주전 626년경 남왕국 유다의 요시아 임금 13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나이 어린 예레미야를 불러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聖別)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두려워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며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이라고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말할지니라.”고 하시며,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하시면서 용기를 갖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시면서 아직 어려서 말할 줄을 모른다고 사양하던 예레미야를 강하게 붙드셨습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은 범죄하다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망하고 남(南) 유다만 남은 상황이었는데도 요시아 임금의 신앙적 열정과는 달리,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하면서 겉으로만 드러내는 형식적 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저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면서 많은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례미야는 나라가 다시 바벨론에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리고 백성들의 죄악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부짖으면서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그 어려운 시기 아직 나이가 어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할 당신의 종으로 예레미야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담대함을 갖도록 격려하시고 지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예언자로 하나님께서 그 입에 말씀을 담아 주시겠다고까지 하시면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과정은 모세와 비슷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그도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하며 사양을 하려고 했습니다.(출 4:10)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하시며,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는 사람은 그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받들 수 있는 겸손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불러 쓰십니다.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직무를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실력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며 가르치시고, 후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복음의 일꾼으로 들어 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겸손함과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우리를 들어 쓰시려 하십니다. 우리가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겸손하게 받으며 순종하게 되면 주님이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자기 실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뛰어나서 하나님이 일을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비록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능력 주실 줄 알고 ‘아멘’하면서 순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서신서 말씀 사도행전 9장은 이방인들의 전도자 바울 사도의 소명기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예수님에게 맞서서 기독교인들을 앞장서서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가 수리아의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들을 회당에 가서 잡아올 수 있도록 공문(公文)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이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비치자 바울은 땅에 엎드러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렸고, 바울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이를 자가 있느니라”하며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도록 일러주었습니다. 바울은 일어나서 주님이 시키는 대로 다메섹으로 들어 갔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시내로 들어가서 아나니아를 만났습니다.
아나니아도 기도 중에 주님이 환상 중에 바울이 올 것을 일러주셨습니다. 아나니아도 바울의 교회에 대한 박해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했지만 주님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일러주셔서 바울을 만나 영접하고 그에게 안수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안수하면서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어 복음의 전도자로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일꾼들을 불러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복음의 ‘훼방자’였던 바울과 같은 사람도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으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부족하지만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을 입은 ‘택하신 그릇’입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많은 면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서 겸손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바울처럼 충실하게 감당하는 일꾼들이 됩시다. 주의 일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감사하며 섬깁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성령의 능력을 입혀주셔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4)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복음서 본문 마태복음 9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여러 마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중에 많은 가난하고, 병들어 힘들게 살아가는 민중들을 보시고 불쌍하게 여기시며 저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보시고 저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지쳐있는 저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저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불러서 권능을 주시며 예수님과 함께 일할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마 10:1)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사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민초(民草)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의 신음하며 고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진정한 목자 같은 지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도자들을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로 구분하셨습니다. 삯꾼 목자는 양들을 돌보지 않고 이리떼나 사나운 짐승들이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그 양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와 같은 일꾼들이 지금 절실히 필요합니다. 삯꾼 목자는 돈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오래전에 어떤 의사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왜 다른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버는데 아빠는 돈이 없느냐?”고 묻더라는 푸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저는 ‘이 의사야 말로 진짜 의사다’하는 생각을 하고,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보다 더한 칭찬과 존경의 말은 없겠는 데요?” 그랬더니 그는 “왜요?”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일 우리 아들이 우리 아빠는 목사이지만 돈을 많이 벌어주어서 우리 자식들에게 많이 물려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하고 말했다면 “그 말이 제게 욕이 되겠어요, 아니면 칭찬이 되겠어요?”하고 물었더니 제 말을 알아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제가 또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빠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이지, 돈 버는 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입니까, 아니면 삯군입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손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맡은 자리에서 잘 감당하며 충성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5) 맺음
하나님은 온 세계 여러 곳에 많은 일을 벌려 놓으시고 지금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헌신적인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돈 때문에 일하는 일꾼 말고, 정말 가슴 뜨겁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몸을 던져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하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하고 응답했던 것처럼 선뜻 대답하는 소명자들이 바로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일꾼으로 사용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가슴 뜨겁게 사명감을 품고 겸손히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응답합시다. “나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여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