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1:21-28, 사29:17~24, 행8:4-13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나,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을 보면, 뭔가 뿜어져나오는 기운, 힘같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영어로 ‘아우라(Aura)’라고도 표현합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고,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힘, 말입니다.
성령강림절 열째 주일 세본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이 숨겨지지 않고, 가려지지 않는 힘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숨겨지지 않는 이 능력을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으로는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계명, 즉 지식으로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사29:13)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교회생활은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사람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돌아보아, 겸손한 자. 하나님을 마음으로 경외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구약 본문을 보면, 토기장이와 진흙이 어찌 같겠으며, 물건을 지은 이가 지음받은 이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타당한지 묻습니다. 상식적으로 답이 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대답이 뻔한 질문을 이사야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들이 하나님인 양 착각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과 판단에 하나님을 끼워맞추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내 생각과 경험과 판단에 하나님의 뜻을 끼워맞추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니, 그것이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귄위있는 모습이었다고 증언해 줍니다. 전하는 말씀이 권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도 고치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키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일부러 소문내고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권위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4:20)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셔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시니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응답받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우리의 마음도 바꾸십니다. 믿음없음에서 믿음으로, 의심에서 확신으로, 거짓에서 진실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인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이 그러했습니다. 한낯 마술사에 불과했던 시몬이 빌립의 전도를 보고,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이렇게 믿는 사람의 마음과 삶을 바꿔놓습니다. 입술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심을 드러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하나님의 권위는 그것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숨김없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경험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방법과 목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과 목적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로워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