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강림후(5-2) - " 여호와의 날, 그 날 " / 6.25민족화해주일 / 장효수 목사 > 성령강림절

본문 바로가기

성령강림절 HOME > 설교올리기 > 성령강림절

[첫째해] 강림후(5-2) - " 여호와의 날, 그 날 " / 6.25민족화해주일 / 장효수 목사

관리자 2024-06-21 (금) 22:29 1개월전 199  

본문) 욜 2:1~11, 살전 5:1~11, 막 4:21~34


1. 70여년이 지나면 우리 민족의 아픔이었던 한국전쟁의 상처가 치유될 줄 알았습니다. 어떤 이유이든지 우리 동족끼리 총칼을 가지고 수많은 생명을 서로 빼앗았던 우리의 아픈 과거를 인간의 망각에 따라 잊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민족적, 군사적 힘을 가지려고 했었던 그 모든 사람들이 이미 떠났기 때문에, 무엇이 허물이고, 무엇이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하고, 손을 잡을 줄 알았습니다. 


2. 그런데 우리는 최근 남한은 북한을 협오하고, 북한은 남한을 극히 혐오하는 상황 속에서, 대북전단의 풍선을 보내고, 오물풍선의 부끄러운 상황을 보며, 메말라버린 남북한 평화와 통일의 샘물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메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6.25 전쟁의 참상(慘狀)을 기억하며, 더 이상의 민족 전쟁을 막고 ‘화해(和解)와 평화(平和)로 뭉쳐진 한 민족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민족화해주일로 지킵니다.


3. ‘화해’란 말에 주목하게 됩니다. 화해란 본질적으로 일정한 자기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희생은 모든 화해의 근본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과의 원수된 자들과의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전적으로 자기부터 모두를 위한 희생물로서 내어주신 일이 바로 십자가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4. 따라서 화해를 이루려면, 지금의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북한의 형제자매들은 함께 할 민족이지, 주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현정부의 그리고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인식이기 때문에 부담이 됩니다. 


5. 구약시대 때 예언자들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처럼, 지금의 민족적 난국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오신다면, 우리 시대에서 주님의 말씀을 대언할 목회자들이 어떤 말씀을 전하게 하실 것인가 기도하게 됩니다.


6. 1992년 10월 28일 종말의 날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사회를 흔들어 놓았던 다미선교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처분하고 흰옷을 입고 휴거되기 위해 다미선교회의 교회에 모여 광신적으로 몸을 떨며 기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당시 방송에 그들의 광적인 모습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다미선교회의 이장림목사는 사기죄로 구속되었습니다.


7. 2011년 미국 서부의 family Radio 라는 방송국의 해롤드 캠핑 Harold Camping 이라는 사람이 5월 21일이 세계종말의 때 심판의 날(Judgment Day)이라고 주장하며 세계적으로 들썩거리게 했었습니다. 한국 언론에도 보도되었을 정도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이 심판의 날 때문에 사람들은 긴장을 했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8. 오늘 우리에게 주신 구약의 요엘서 말씀은 여호와의 날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날(yom Yahweh 욤 야웨)은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떨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고 하십니다.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두려운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해지고 별들이 빛을 거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9.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포는 이 선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습니다. 이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포의 이유가 선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앞에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와 사회정의를 외면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의 날, 종말의 때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10. 성경에는 두가지 종말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역사가 마지막 막을 내리는 마지막 날을 뜻합니다. 때로는 영화에서 지진이 나고, 홍수가 나고, 핵폭탄이 터져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 장면과 같은 사건입니다. 성경은 여러번 거듭거듭 말하지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 하루가 그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향해 더 가까이 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11. 또 하나의 종말은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우리가 비록 우주적인 종말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내 개인적인(실존적인) 종말은, 다시 말해 내가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그 때가 눈 앞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내 생일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듯이, 나는 내 마지막 가는 날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개인의 종말, 마지막 때가 언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날이 내일, 아니 오늘일 수도 있고, 몇 십년 후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와 전혀 관계없습니다. 


12. 성경에는 하나님 외에는 우주적인 종말이나 개인적인 종말의 시각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재림의 때를 가리켜서 성경에 보면, ‘도적같이 온다’했습니다. 도적은 예고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13. 그러면 예고하지 않고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사실은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도둑이 어느 순간에도 올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서는 안되며, 그러므로 예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4. 옛날 로마의 어떤 황제는 자기의 신하들이 자기를 찾아와 알현, 인사를 할 때마다 이런 인사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모멘토리(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그는 자기의 삶을 순간순간마다 최후 앞에 세우는 결단을 행했습니다. 


15. 베드로서의 말씀에는 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벧전 4:7) 정확하게는 그 마지막 때는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그 사실 때문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날은 그리스도인인 여러분과 나에게 있어서 우리 삶의 결산 날이고, 심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담되고 듣기 싫은 소리입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인데.. 심판이라니...


16. 그러나 성경은 선명하게 말합니다. 그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예수님에 대해 고백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우리는 믿음으로 예배때마다 고백합니다. 


17. 초대교회는 신앙적인 열정도 있었지만, 지금의 교회와 같이 교회내 어려움과 힘듦 그리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부족함과 허물이 있는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천사들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8. 초대교회내 신앙적인 갈등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래서 교회는 주님은 다시 언제 오실지, 재림의 때를 놓고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 힘든 시대였기 때문에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도 자신이 생존할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19. 그런 고민을 하는 교인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심판의 날은 때와 시기를 알 수 없다, 주님의 날, 여호와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그 날이 오는 것은 확신한데, 그 시기는 사도 바울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0. 사도 바울은 주님이 다시 언제 오실지, 그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정신을 차려 깨어 있으라 영적 권면을 합니다. 그 때, 다시 말해 여호와의 날 일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1. 여호와의 날, 주님의 날, 심판의 날은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저주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은 가슴 벅찬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 뜻대로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염려할 것 없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복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22.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마지막 날을 알고, 믿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준비한다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23. 왜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은 거룩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는 것만큼, 우리의 영혼은 그만큼만 깨어있는 맑은 영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을 때, 우리가 기도의 삶의 자리에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들의 영혼은 깨어있는 맑은 영혼으로 변화되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26;11) 말씀하십니다. 


2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면 이 어두운 세상과 패역한 세대에서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악한 세력들과 싸워나갈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25.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정의의 호심경(가슴막이, protector)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4-17)” 


26.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빛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고, 생명과 평화의 일꾼으로 주님께 드려지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그래야 절망과 어둠의 이 세상에서 희망을 찾게 됩니다. 


27. 마지막 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험 준비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면, 말씀 앞에 진실로 서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고, 그 심판의 날은 종말의 날이 우리가 승리의 날,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