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룻 1:8~18, 시 69:7~12, 갈 3:23~29, 요 4:7~26
1. 성도여러분,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건, 열심이 없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열심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아십니까? 열심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배만 드리면 됩니다.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관심이 있고, 신경 쓰고, 참여하고, 정성들이고, 더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열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뭔가를 해야 합니다.
2. 그런데 시편 69편 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열성이 있는데, 열심이 있는데, 내가 비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자,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데,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3. 열성이 있고 열심이 있으면 다 잘되어야 하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자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교회 일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교회 일을 세상의 방식으로 보고, 세상의 눈으로 보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합리성을 교회로 가지고 들어와서 이것이 타당하다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성경 지식을 가지고 상대방을 향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4. 자 여러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교회를 옮기는 사람
②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
③ 예배만 드리는 사람
④ 합리성과 이성으로 타당성을 주장하는 사람
⑤ 말씀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시끄러워지면 첫 번째, 다른 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아예 교회에 발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교회는 나오되 애써서 교회 문제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예배만 드리면 돼. 아이고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너무 복잡해. 시끄러운 교회가 싫은 겁니다. 네 번째는 합리성과 이성을 가지고 타당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섯 번째, 자신의 성경 지식에 근거해서 상대방을 향해 틀렸다고 말하고 말씀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대로를 주장하는데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5. 여러분은 몇 번이십니까? 정답은 몇 번일까요? ⑤번이 정답일까요? 저는 먼저 ①과 ②번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가 칠칠치 못해서 그분들이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을 붙들어주어야 하는데, 결국 그들은 시험에 들었고 나름의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또 ③번에 해당하는 분들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분들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자기를 보호하는 거거든요. 다치치 않으려고 마음을 닫고 모른 체하는 거거든요. 이것도 힘든 겁니다 ④번에 해당되는 분에게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은 다르거든요. 물론 교회 안에 세상의 방식이 정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세상의 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수용하면 교회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원칙적으로 세상의 방식을 거절해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는 방향이 다릅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합리성과 이성을 가지고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깊이 고민하고 더 많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6. 구역성경 룻기 1장에 보면 나오미가 남편과 함께 기근을 피해서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고 모압 땅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먹고 살려고 갔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고백합니다. 1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먹고 살길을 찾아 간 것은 당연한 것인데, 합리적인 것인데, 이성적으로는 타당한 것인데, 이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것입니다.
7. 자 그럼, 정답이 ⑤ 번일까요? 아닙니다. ⑤ 번도 정답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과 2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 여기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2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8.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왜 ⑤번을 답이 아니라고 하지 이해되십니까? 말씀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라면,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틀린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의 방식이 뭐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23절과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9. 이 말씀의 핵심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인데, 옛날 성경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말하고, 개정 개역성경에는 영과 진리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신학책에 보면, 성령과 말씀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이고, 진리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헬라어를 전공한 어떤 신학자는 이 말씀을 두 단어로 나누지 말고 한 단어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리의 영, 말씀의 영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요. 부활 승천을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아멘 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에서는 영과 진리, 진리와 영, 이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10.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누구냐? 바로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임당할 것을 말씀하시고,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이라고 했습니다. 말씀 = 하나님, 말씀 = 육신, 말씀 = 예수님, 말씀 = 진리, 진리의 성령 = 말씀의 성령 = 진리의 영! 이게 다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요한복음 4장 24절의 말씀은 두 개의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단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 말씀의 영으로, 진리의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11. 자 그럼,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초등교사라고 말하는 이유가 분명해 지지요? 말씀대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평화는 어떻게 지켜지는 걸까요? 진리의 성령이 임재해야만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가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이 있습니다. 성령은 임재하심과 충만하심과 강권하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으로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2.
① 교회를 옮기는 사람
②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
③ 예배만 드리는 사람
④ 합리성과 이성으로 타당성을 주장하는 사람
⑤ 말씀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여기에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정답이 있습니까? 다 틀린 답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이끌어가고,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 대장되셔서, 성령님이 말씀대로를 만들어내셔야, 평화와 기적과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13. 이제 우리 진해중앙교회는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꾸 말씀하겠습니까? 자존심을 내세우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편을 가르고, 힘 있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움직이고 ..... . 낙심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실망한 사람, 짜증내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포기하는 사람, 떠나는 사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야 할까요? 교회는 얼마나 더 쪼그라들어야 할까요?
14. 성도여러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진리의 성령이 진해중앙교회를 이끌어가시도록, 우리는 참여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함께 기도하시겠습니까? 내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이끄시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내가 말을 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가시는 길에 맞장구를 치는 거라면, 그 말은 좋습니다. 그런데 맞장구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거 큰 죄거든요.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15.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제자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3절입니다.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의 속편이라는 거 아십니까? 저자가 똑같습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1장 4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장 8절도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장 14절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20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와 찬양으로 열심히 모였습니다.
16. 사도행전 2장 1~4절을 읽겠습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7. 4절 말씀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이 말씀이 우리 진해중앙교회에 생생한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당회가 제직회가 공동의회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식당에서, 성도들 간의 만남에서, 구역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함으로 기적과 치유와 능력과 은혜와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8.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박영배 목사가 왔으니까 됐어, 벌써 3달이야. 난 좀 쉬게. 박영배 목사가 진해 중앙교회에 왔으니 이제 안심이 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불안하십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 제가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오지 않으셨습니다. 좀 섭섭하고 기운도 빠지고 .... 아 이러면 안 되는데 ...... 여러분, 진리의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담금질이 되어야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로 변화될 수 있는 겁니다. 어제 토요일이지요. 아침에 눈을 뜨고 진해중앙교회 유투브를 들오가 보니까 금요집회를 57명이 조회를 했더라구요. 그나마 감사지만, 이 분들이 다 나오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회를 신앙공동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모여야 하고, 그렇게 모인 자리에 진리의 성령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열심히 모입시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이것이 축복의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