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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7-2) - "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22-05-28 (토) 15:27 2년전 812  

본문)  요 17:11~19, 창 28:10-22, 롬 8:33-39                                                                                                               2022. 5. 29


오늘은 부활절기 마지막인 일곱째 주일이다. 이때는 부활하신 주님이 이미 승천(昇天)하여 당신의 아버지 집인 본향(本鄕)으로 오르셨기에, 이 세상에는 그의 제자들과 그를 사랑하는 무리들만 함께 모여 지내고 있었다.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120여명의 무리들이 바로 그 당사자들이었다(행1:12-15참조). 이들은 그 누구 하나 흩어지지 아니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있었다.  


또한 부활절기의 마지막 때인 이 주간은, 낡고 생명 없는 종교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생명 구원의 종교를 탄생시키려는 해산의 때였다. 여기서 새로운 생명 공동체란 어떤 생명체를 말하나? 바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원의 주(主)로 섬기는 무리들이 모이는 교회(敎會)의 탄생을 말한다. 유대교란 율법 종교의 껍질을 벗고, 그리스도 교회란 새로운 인류 구원의 복음 공동체가 지구촌에 태어나는 대전환의 때가 임하였음을 말한다.  


그러면 교회라는 새 생명 공동체가 태어나기 직전의 사정은 어떠했나? 놀랍게도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은, 이 새 생명체를 받게 될 인간들과 그 생명체를 세상에 안겨 주시려는 하나님, 그 양측(兩側)의 활동 내용을 입체적으로 전한다. 성경이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양측의 증언들을 이렇게 함께 전하는 까닭은, 그만큼 교회를 통한 세상 구원의 일은, 하나님으로서도 지고(至高)의 가치를 가진 중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그 생명체를 몸으로 받으려는 이들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120여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회동(會同)은 그들 스스로의 결의나 다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 ‘머잖아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리니, 기다리라’는 약속이자 명령 때문이었다(행1:4-5절). (이들에 대한 상세한 증언은 성령강림절기에 더욱 상술되리라.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 공동체의 생산을 위하여 진정 어떤 일을 하셨는가? 바로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이 그 점을 집중적으로 증언한다. 그래서 교회란 구원 공동체가 이 지구촌에 태어나게 된 과정을 다양하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곧 교회는 부름 받고 훈련 받은 인간들의 응답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원래의 기획자이시고 주도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아주 조밀하게 개입하여, 성취되도록 추진하셔서 이룬 생명임을 밝힌 것이다.


복음서 이야기는 교회 공동체의 탄생을 위하여 성자 예수께서 교회의 씨앗이 될 그의 제자들을 얼마나 애지중지(愛之重之) 돌보시고 보전하시며 기도하셨는지를 뜨겁게 소개한다. 반면에 구약 창세기 이야기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따라, 성부 하나님이 그의 후손이자 이스라엘의 머리가 될 야곱의 일생에 어떻게 직접 개입하셔서, 그의 큰 구상을 차질 없이 이루려 하셨는지를 소개하였다. 


서신서인 로마서의 말씀은 택(擇)하신 자들을 향한 성부의 확고한 의지와 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기도해 주신 성자의 은혜와 돌보심이, 그 분들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인 성도들에게 모아짐으로서, 그 사랑을 받고 사는 성도들은 결국 그 어떠한 세상과 악들에 대하여서도 패하지 아니하고 넉넉히 이길 수밖에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를 저 거칠고 사악한 세상에 대하여도 끝내 이길 수밖에 없도록 승리의 밑판을 깔아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수고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하겠다.   


1. 복음서 / 요17:11-19 /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한 성자 예수님의 기도(祈禱)는 매우 구체적이고 간절했다. 당신이 본래하나님이시면서도 정작 성육하셔서 친히 인간(人間)되어 살아보시고 나니-, 그들 제자들이인간으로서 너무나 허약하고 부족하며 순간적으로 배신하며 흩어지기 쉬한 존재인지를 잘 알게 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약한 제자들을 남기고 이제 당신은 본향(本鄕)으로 떠나야하셨기에, 주님의 기도에는 더욱 하늘 아버지의 적극적인 개입과 도움이 간절하셨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결코 제자들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세움으로서 당신의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깊이 구상(構想)해 오신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교회라는 생명 공동체를 제대로 출범시키기 위함이었다. 소위 복(復)낙원을 위한 프로젝트의 성취를 위한 것으로서, 교회 생명체를 생산하기 위한 산모(産母) 됨의 수고를 주께서 그렇게 감당하셨던 것이다. 


만일 혹이라도, 제자들이 부실(不實)하여 교회 생산이 좌절(挫折)되면 어찌될까? 지금까지의 당신의 세상 오신 일이나, 제자 훈련이나, 십자가 속죄 사역과 부활하심 등의 세상 구원을 위한 모든 일들이, 한갓 헛것으로 판가름 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심정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제자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기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였다.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에게 올리신 간구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1) 가장 시급한 점은 제자들이 서로 하나 되는 일이었다(11절). 어느 정도로 하나 되길 원하셨던가? 당신이 하늘 아버지와 하나 되어 지내오신 수준이었다. 그래야 새 역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강한가? 서로 하나 되어 있을 때이다. 언제가 가장 약한가? 서로 갈라져 있을 때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비극이 바로 남북 분열에서 나온 것 아닌가! 가정의 힘도 부부가, 가족들 서로가 하나 되는 데에 있다. 교회도 그렇다. 진정한 힘도 성도들 모두가 서로 하나 될 때에 나온다.  


여러분들도 기도 계속하실 것이다. 그런데 서로 하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시는가? 가족들이나 자녀위해 기도할 때, ‘공부 잘하게 해 달라, 돈 잘 벌게 해 달라’보다도, 더 우선해야할 기도는, ‘모두가 하나 되게 해 달라’, ‘우리 가족 서로 하나 되게 해 달라’여야 한다.  


2) 주님은 당신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잘 보전하셨다고 보고드렸다. 멸망의 자식인가룟 유다 의외에는, 모두 잘 지켜내셨음을 말씀드렸다(12-13절). 사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도 틈만 있으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서로 갈라지려 했으나, 그 때마다 주님은 ‘섬기는자가 큰 자다’라는 하늘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말씀으로 교정해 주셨다. 주님은 그런 아버지의 말씀만이 그들을 하나로 보전할 수 있었다고 보셨다(14절).  


3) 주님의 또 다른 관심은 당신이 떠난 세상에서 제자들이 과연 당신에게서 받았던 진리의말씀을 제대로 좇아 살고, 선포하며 살아갈 것이냐 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복음과 예수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계속적인 미움과 배척을 받으며 시달릴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이 점 역시 아버지의 적극적인 개입과 도우심으로, 당신의 제자들이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악(惡)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달라며 간곡하게 기도를 올리셨다(15절). 


4) 결국 주님은 제자들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해달라고 간구하셨다(17절).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미움이나 박해의 힘보다도, 하늘이 준 진리와 거룩의 힘은 훨씬 더 강하여 끝내 승리를 안겨 주리라고 보셨기 때문이었다. 이런 논리, 즉 진리와 거룩의 힘만이 세상과 악마의 힘을 이겨낸다는 사실은, 당신 예수의 세상살이를 통하여 결국 입증(立證)될 것이어서, 그런 공식이 당신의 제자들에게까지도 적용되도록 간구하신 것이다(18-19절 참조). 


이 점은 우리가 매우 주목할 승리의 방법이다. 많은 이들이 악과 불의의 위협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며 타협해야 살아남을 것처럼 생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어도 그럴수록 진리와 거룩의 힘에 의지하며 악의 실재에 맞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한 번 끌려 다니기 시작하면, 그 뒤는 완전한 어두움뿐이잖은가! 죽어도 승리한다는 십자가의 원리를 선택하신 우리 예수님의 선택이 제자들에게도 왜 절대 필요한 공식인지를 헤아리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그렇다. 진리와 거룩은 그의 제자된 우리가 반드시 무장해야 할 참된 힘이다. 


2. 구약 / 창28:10-22 /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너무도 고단했던 한 젊은 인생 야곱과 그에 관심하며 그를 추스르고 붙들어 세우셔서 당신의 큰 뜻을 펼치시려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뜨거운 만남이 소개된 곳이다. 


청년 야곱의 하란 행(行)은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하는 도피였고 피난길이었다(창27장 참조). 비록 그곳은 외갓집이긴 하였으나 초행길이었고, 그가 그곳에서 과연 어떤 일을 만날 런지,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귀향하게 될 런지도 전혀 모르는 안개 속의 나들이였다. 따라서 그날 그가 취한 노숙(露宿)자의 밤은 더없이 고단하고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야곱의 막막한 고단함을 일거에 해소시키고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면서, 그의 나아갈 발걸음을 활기차게 해 준 이가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여호와이셨다. 여호와께서 그 밤에 그를 찾아서 꿈과 약속을 채워주셨기 때문이었다. 그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안겨 주신 내용은 그의 20여년 지속될 하란에서의 험난한 세월들을 불평불만 없이 넉넉하게 극복해 갈 동력과 에너지가 되었다. 그러면 그가 그날 밤에 받은 놀라운 영적 에너지들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1) 야곱은 일명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으로 그는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이 하늘의 하나님과 연결된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다(12절). 특히 그 하나님은 낯선 분이 아니라, 자신의 조부와 부친의 하나님이셨기에 더욱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13절,중). 


2) 그 날에 여호와가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조부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언약(言約)에 대한재확인이었고, 그것도 그 언약이 자신에게로 지정되고 상속(相續)될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어서, 야곱의 위로와 기쁨은 충만할 수밖에 없었다(13,하-14절). 그리고 여호와는 그 때 야곱이 듣고 싶어 하는 최고의 약속도 선물하셨다. 곧 ‘언제 어디서나 늘 같이 있겠다’는 임마누엘(Immanuel)의 약속과 함께, 책임지고 귀향(歸鄕)하게 하시리라는 약속과 그 모든 일이 성취될 때까지도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주셨기 때문이었다(15절). 


3) 그러니 이러한 완벽한 약속을 받은 그에게 또 무슨 염려와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는 가? 믿고 또 믿으면 되는 일만 남았다. 그 바람에 잠에서 깬 야곱은, 이미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보고 듣고 바라며 생각하며 사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받기 위해서 칭얼대기만 하는 인물일 수는 없었다. 대신 그 약속과 일들이 자신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도록,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야 될 자신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4) 그래서 그는 우선 그곳을 성별(聖別)하였다. 하나님을 뵙게 된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는 점에서, ‘벧엘(Bethel)’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런 언약들이 자신에게서 성취되리라는 믿음에서, 자신도 거저 받지 않고 반드시 응답할 세 가지 서원(誓願)도 드렸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격적이며 하나님 중심으로 정립한 것이다. 


곧 첫째는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신다. 둘째는 그가 세운 돌기둥이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될 것이다. 셋째는 주신 모든 것의 십일조(十一條)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다고 약속을 드렸다(18-22절 참조). 실로 매우 굵직한 약속들이다. 이런 야곱의 여호와께 드린 서원들은 천지의 전능자와의 관계 강화책이 되면서, 그때부터 지상에 있는 모든 후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지표가 되고 신앙의 지침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3. 서신서 / 롬8:33-39 / “모든 일에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리라 ”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악에게 반드시 승리(勝利)할 수밖에 없는 영적 환경(環境)에 감격해 하면서, 승리를 노래한다. 그러면 그가 본 그리스도인들의 승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그가 말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연유를 확인하게 된다. 그가 낸 분석들 몇 가지를 확인하자.    


1) 성부 하나님의 의(義)로우신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믿는 자들을 이미 의롭다고 인정하고 나오셨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러한 그의 판단에 대하여 이의(異意)를 제기하며 송사(訟事)할 수 없게 되어 있다(33절).  


2) 성자 예수님의 그의 제자들과 양무리들을 위한 변호(辯護)와 기도(祈禱)가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34절, 요17:11-19참조). 그러니 그 누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감히 정죄(定罪)하고 나올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3) 세상과 악을 이길 거룩한 능력을 부여하신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진리와 능력에 힘입어, 예수의 삶과 사랑으로 세상의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면서도 모든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사는 무리들이다. 이런 주님과의 사랑과 거룩성으로 결속된 이들을 누가 그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으랴?(35절, 요17;15-19참조). 당연히 이겨낼 것이다. 그 사랑의 힘을 끊을 자도 없다. 


o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교회를 주셔서, 그의 자녀로 영접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특히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말씀으로 훈련받고 영생을 누릴 제자가 되도록, 우리를 진리와 거룩으로 돌보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하자. 그것도 부족해서 우리에게 보혜사로 오셔서, 성도들과 교제하게 하시고, 말씀가 사랑으로 무장시키셔서 악한 세상에 대하여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싸워서 승리할 능력까지 채워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하자. 이런 압도적인 후대를 받고 사는 우리들이다. 흔들리지 말고, 이 교회의 시대를 믿음으로 감당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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