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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7-3) - " 당신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 / 이성호 목사

관리자 2022-05-28 (토) 18:09 2년전 771  

분문) 창 28:10~22, 롬 8:33~39, 요 17:11~19


1-1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0-22)


<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를 속여 그의 복을 가로채다> 창세기에서 가장 홍미로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이 사건은 여러 긴장을 유발하며 진행됩니다. ‘야곱의 변장이 그의 아버지를 속일까?’ ‘야곱은 과연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또한 도덕적이고도 신학적인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속임수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은 속여서 얻은 복도 인정하시는가?’ 


얼핏 읽으면 리브가와 야곱을 그저 이삭이 눈이 어두운 것올 이용한, 사기꾼 모자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야비한 인간의 대명사이지만, 하나님께 매달리고 매달려서 복을 얻은 인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상황은 그런 흑백논리로 단정지울 수 없는 구석이 참 많습니다. 먼저 에서는 두 아내를 두었는데 그들은 햇 족속으로 가나안 족속이었습니다(창23:3). 아브라함은 이삭이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왜 이삭은 정혼을 시켜서라도 에서에게 맞는 배우자와 결혼하라고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을까요? 


더 나쁜 것은 이삭이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 히브리 관습을 무시하고 에서만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비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가까이 오면, 자식들을 다 불러 모아 각자에게 복을 빌어 주었지만, 그런데 이삭은 어설프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에서만 불렀습니다. 그러니 야곱을 더 아끼던 아내 리브가가 화낸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삭올 속여 복을 받아 내게 하려는 어머니 리브가의 꾀를 얼마나 수긍했는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협조하기를 꺼려했던 것은 아마도 양심의 가책 만큼이나 들킬것에 대한 염려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27:11-12). 


그런데 긴 안목으로 보면 이 일의 결과는, 야곱과 리브가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야곱이 한 짓에 에서는 크게 분노하였고, 그래서 야곱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이 단지 몇 날 동안만 떨어져 있을 것을 바랐지만(27:44), 그 후로 다시는 야곱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 얼마후 그의 장인 라반에게 속임을 당했고, 억지로 레아와도 결혼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숫염소 가죽으로 그의 아버지를 속였던 것처럼, 레아의 아들들이 숫염소를 이용하여 ‘요셉’이 죽었다고 야곱을 속입니다. 


1-2.

피신길에 올라 집을 떠난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벧엘에 이르기 위해 중앙 산지 길을 따라갑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이틀 정도가 걸렸을 것이며, 하란까지 이르는 여정은 아마 한 달 이상(약 880km)이 걸리는 여정으로, 그는 자기 부족의 거주지를 벗어남으로 들짐승의 위험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 의한 생명의 위험을 매순간 경험해야 했습니다. .


개인의 위기는 종종 영적 체험의 기회가 되지요. 이것은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집을 떠나 외지로 가는 길, 들판에서 잠을 자며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이삭에게 반복되었던 땅과 자손의 복을 그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야곱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약속이 추가됩니다 (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바로 <하나님이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은 장차 이스라엘의 많은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출3:12; 수1:5; 삿6: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주신 약속이기도 합니다(마 28:20). 


야곱은 다음 날 아침,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서, 돌로 신성한 기둥을 세우고, 그곳에 지금껏 간직해 온 귀한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하나님이 나를 무사히 돌아오게 하신다면, 자기 재산의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고 서원하며 맹세합니다.


1-3.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는 하늘과 땅 사이의 통로를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는 신의 사자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상징을 자주 사용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신전을 건축하면서 나타내려고 애썼던 것 역시, 이와같은 신화적 사닥다리(계단)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자신이 두 세계 사이에 문이 열려 있는 신성한 장소에 있다고 여기므로 입석을 세우고는 서원함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두려움을 떨쳐내며 길을 떠납니다. 성경에서 ‘서원’(rd<n,, 네데르, vow,)이라 함은, 하나님께 드려졌던 조건이 첨부된 맹세 혹은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서원이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됩니다. 야곱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십일조’, 즉 자기 재산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십일조는 과세의 수단으로 왕에게 바치는 십일조뿐만 아니라, 성전에 바치는 십일조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십일조는 분명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시대에는 아직 성전도 없고 제사장도 없는데, 야곱은 누구에게 십일조를 드린단 말일까요? 


2. 끊을 수 없는 사랑(롬 8:33~39), 세상 속에서의 거룩(요 17:11~19)


두번째 본문인 로마서는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인구 약 백만의 대도시인 로마에 정착한,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로 위험에 내몰린 그리스도 공동체로 향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심을 확증하며 위로합니다. 이 소망의 서신은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할 수 있는지(롬8:33), 누가 정죄할 수 있는지(34절),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지(35절), 어떤 고난도, 어느 권력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을 막을 수 없음과 구원의 확실성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서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 역시 장차 제자들이 처할 상황과의 관련 속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소망으로 제자들의 상호관계가 하나될 것과(요17:11), 그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충만할 것과(13절), 세상이 미워할지라도 결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할 것을(14-16절), 그리할 때 ‘거룩한 백성’으로 불려질 것을 단언하십니다. 


‘약속을 믿고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로마서), ‘의의 길, 진리의 길, 거룩의 길 가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요한복음), ‘새로운 길을 떠나는 여정’(창세기). 우리는 오늘 이 세 본문을 통해, 자신이 자초한 고초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야곱과, 환란이 예고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로마의 그리스도인과, 그리고 장차 닥칠 핍박과 위험을 뚫고 거룩한 길을 가게 될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했습니까? 홀로서기 시간, 그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을 사는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교회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 ‘벧엘’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맞닿은 자리. 여러분과 제가 서있는 곳. 갖가지 다양한 환경과 문제가 삭적한, 우리의 삶의 분투가 살아 숨쉬는 바로 그 자리가 벧엘인줄로 믿습니다. 먼저 그 자리가 하나님을 모신 집이요. 하늘을 향한 문입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그 자리가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자리. 기쁨의 자리, 거룩의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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