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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7-1) - " 야곱의 하나님은 " / 이훈삼 목사 >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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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7-1) - " 야곱의 하나님은 "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2-05-27 (금) 12:20 2년전 752  

본문) 창 28:10~22, 롬 8:33~39, 요 17:11~19


1. 야곱의 사다리


성경에서 인격적으로 가장 비 호감 인물을 뽑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야곱이다. 차라리 무능하면 답답하긴 해도 밉지는 않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재능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면 우리는 분노한다. 요즘 국무총리나 장관에 추천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우리와는 다른 여건과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보며 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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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딱 그런 인물이었다. 뛰어난 지혜와 순간 판단과 추진력을 가지고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 능력자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피해 브엘세바를 떠나 멀리 하란까지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먼 길이다. 우리로 치면 아마 목포에서 만주까지 혼자 걸어가는 여정이다. 고단하고 외롭고 위험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우리의 인생길이다. 그의 고독과 두려움과 무력함을 한 번에 나타내는 모습이 돌베개를 베고 자는 야곱이다. 어둠과 들짐승과 강도와 찬 이슬의 위험 속에서 야곱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바닥에 누워 맨 하늘을 바라보면서 머리맡의 돌을 집어 베개 삼는 것뿐이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자기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공포와 후회가 찬 기운처럼 올라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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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블레이크, 야곱의 사다리, 37*29cm, 1805년,  런던 대영 박물관


영국의 시인이요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이 장면을 수채화로 그렸다. 전체적으로 화면 아래서부터 파란색으로 시작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노란색으로 달라진다. 황금 빛 하늘의 광명이 땅으로 퍼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야곱의 현실이 칠흑같이 어둡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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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건강한 근육질의 야곱이 양팔을 벌리고 깊이 잠들어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지팡이는 자면서도 왼손으로 잡고 있어 조금이나마 불안을 달래주면서 야곱의 삶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다. 피곤함 속에서 돌에 머리를 대고 깊이 잠든 야곱의 머리 위로 그의 꿈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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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를 화가는 계단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훨씬 안정적이고 많은 천사들이 왕래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그 곳을 아름다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날개를 단 이들도 있고 날개 없는 천사들도 있다. 머리에 빵 덩어리 소쿠리나 물동이를 인 이들도 있고 어깨에 아기를 얹은 이 그리고 책을 펴고 끼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천사들도 있다. 어둠 속에서 별들은 낭만적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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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까지 이어지는 계단 위에는 여러 천사와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어린 천사들과 손잡고 올라가는 이들은 아마 세상을 떠난 이들일 것이다. 하늘에 합당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어둠속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황금빛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오래 기다린 만남도 있고 기쁨의 노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황홀한 이 꿈을 지금 야곱은 인생의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몰려서 가장 위험한 광야에서 가장 어두운 밤에 꾸고 있다. 


꿈에서 깬 야곱은 이곳을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불렀다. 여기가 비 호감 야곱이 행복의 조상이 되는 전환점이었다. 


2.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영악한 야곱의 불안한 인생길에서 야곱의 사다리 꿈 사건은 그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평생 가족과 헤어져 불행하게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의 운명에 대 전환을 가져왔다. 우리는 내 인생을 어떻게 변경할 수 있을까. 내 삶에서 하늘 문에 다다르는 소통의 계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상황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에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문을 열어야 한다. 내 계획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만든 일이 오히려 야곱의 인생에 독이 되었고 그 때 야곱은 공포와 절망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잔 후 일어났을 때 온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야곱은 더 이상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었다. 비참한 현실과 더욱 불안한 미래만 남겨진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행복을 실어 나르는 환영 받는 인간이 되었다. 야곱의 인생에 대전환의 비밀은 무엇인가.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3~14) 


땅과 자손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땅은 먹고 살기 위한 생산수단의 전부였고, 인구는 생존을 위한 국방력이요 생산을 위한 노동력이었다. 땅만 있고 인구가 없어도 불안하고 사람만 많고 살아갈 땅이 없어도 비참하다. 이 둘이 다 없으면 곧 사라질 존재들이고, 둘이 다 있으면 최고의 행복이다. 오늘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두 가지를 다 받는 약속의 주인공이 된다. 하나님은 땅과 자손에 대한 복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과 그 자손 덕분에 행복해 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기소개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는 은총을 베푸셨을까. 우리는 사람을 볼 때 내 눈 앞에 있는 개인을 보는데 하나님은 그의 유전자 속에 흐르는 그의 조상과 함께 보신다. 그냥 나는 하나님 여호와라고 해도 되는데 하나님은 굳이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사고방식은 늘 공동체적이다. 인간을 개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이해하신다. 야곱이라는 개인이 소중한 인격체이긴 하나 이 땅에 단독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식으로 파악하신다. 사람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신다. 공동체의 근원이면서 모델은 가족이다. 언제인가부터 교회라는 용어와 함께 공동체를 사용했다. 주민교회는 다른 말로 주민공동체라고도 했다. 우리가 다 성이 다르고 혈통이 다르지만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되 그 공동체는 가족 같은 것이다. 가족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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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브로커 주연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이지은)가 요즘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란 영화로 레드 카펫을 밟으면서 칸에서 엄청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세계적인 인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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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에 감동적인 하나의 주제는 가족애다. 주인공 삼형제의 거칠고 뚱하면서도 서로 챙겨주고 아파해주고 몸으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장면들이 점점 해체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가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물론 드라마에서 이들 삼형제는 거의 매일 술을 먹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내 가족을 건드리면 누구든 가만두지 않는다는 장면, 젊은 청년과 싸워서 상처투성이로 돌아오자 형과 동생이 흥분하면서 동네 사람들 다 모아서 혼내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이면 무조건 같은 편이라는 것이 합리적이진 않지만 요즘같이 개별화된 세상에 이상하게 가슴이 찡하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땅과 자손의 약속을 받은 것은 본인의 능력 이전에 그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가족이 중요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가족의 사랑과 관계는 흐려지지 않으면 좋겠다.


3. 나의 하나님은 내 자식의 하나님인가 


가족의 첫 번째 특성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물론 함께 살다보면 징그럽기도 하나 그게 다 정이다. 내 식구들이 다 잘 되면 좋겠다. 우리의 기도 제목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다. 이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가족에게는 가능하면 무엇이든지 주고 싶다. 그래서 힘들지만 악착같이 일해서 저축하고 가르치고 부동산도 장만하려 한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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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것들이 전부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자본과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돈과 실력과 건강을 갖추도록 돕는데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인생과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다. 인생과 역사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런 가치관이 없으면 신앙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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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가장 소중하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신앙이다. 점점 더 신앙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세태, 부모라고 자식에게 신앙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촌스러워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내가 믿는 하나님, 인생과 역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고 그 분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도록 신앙을 갖게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앙은 단순하게 말해서 하나님 없는 삶은 무의미하며 너무나 위험하고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어떤 이는 항변할 것이다, 요즘 자식이 내 맘대로 되나요? 나는 묻고 싶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느냐고. 자식이 공부 안하는 것 보면 속이 터지고, 학원 땡땡이치면 화가 치밀어서 못견뎌하면서, 자식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것에는 너무나 관대하고 안타깝지 않으며 속상하지도 않다. 결국 부모의 신앙이 내 자식의 신앙을 결정한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물질적 유산을 물려주는데 과 몰입하지 말라. 물질적 유산을 많이 물려주지 못한다고 우리 자식의 영혼이 죽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면 우리 죽은 다음에 자식들의 삶은 황폐해질 것이다. 자식이 하나님 믿지 않는 것에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성질도 나고 밥도 안 넘어가기 바란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전달하지 못하면서 몸과 마음이 멀쩡한 사람은 하나님 신앙에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가정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가정은 5월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생 소중하다. 야곱의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다. 신앙 위에 서지 않는 가정, 신앙 위에 쌓지 않는 우리 자식들의 삶은 모두 모래성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진퇴양난에 빠진 야곱에게 새로운 은총을 베푸셨듯이 나의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 자식들에게 행복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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