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28:10-15, 롬 8:33-39, 요 17:11-19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동생이 된 야곱은 이름 그대로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야곱은 장남에게 돌아가는 장자권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형,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좋아하는 팥죽을 만들어 주면서 팥죽 값으로 장자권을 내게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권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쉽게 허락을 하고 맙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의 방법도 잘못되었지만,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그를 팔아넘긴 에서도 경솔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아버지 이삭이 죽을 때가 가까워져서 두 아들에게 축복을 할 때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야곱이 먼저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나니, 에서에게 돌아갈 것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장자권의 소중함을 알고 후회를 하였으나, 벌써 축복은 야곱에게 다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에서는 장자권을 빼앗아간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에서의 속마음을 알아챈 어머니 리브가는 급히 야곱을 피신시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서 형이 너를 죽이려 하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몇 날을 지내고 있으면 형의 분노가 풀릴 때에 내가 너를 다시 부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장자의 축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졸지에 야곱은 정든 집과 부모형제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야곱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집을 나선 야곱은 홀로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 나서는데, 그 길은 무려 800km가 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생전에 한 번도 뵙지 못한 외삼촌을 찾아 나서는 것은 무모한 일이요 죽음을 불사한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길을 나선 야곱은 벧엘 광야에서 첫날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찬송가 338장 “내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의 2절을 보면,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딱딱한 돌을 베고서도 깊게 잠이 들고 말았으니, 집 나온 야곱의 첫날밤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는지를 찬송가는 가사로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야곱은 절망에 가까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행하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집을 떠나 기약 없이 멀고 먼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야곱에게는 두려움과 불안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던 야곱은 돌멩이를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깊은 잠에 빠져든 야곱은 신비한 꿈을 꾸게 됩니다. 사닥다리가 놓여 있는데 하늘에 닿아 있었고 그 끝에서는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서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운 땅을 줄 것이며, 너의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번성하여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2-14)
하나님께서 땅과 자손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한 축복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좌절과 두려움에 빠진 야곱에게 소망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홀로 집을 떠나온 야곱에게는 미래의 축복보다도, 하나님께서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그 말씀이 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모형제를 버리고 홀로 집을 떠난 상황 속에서, 야곱은 함께할 동행자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꿈을 깬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라고 하면서 스스로 놀랍니다. 야곱이 말하는 여호와가 계시는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곳은 벧엘 광야였습니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야요, 풀 한 포기 없고 물 한 모금 구할 수 없는 험하고 황량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으니 과연 하나님이 여기 계신 것을 내가 미처 몰랐다고 한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험난한 광야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서 야곱은 놀라고 감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여기, 내 삶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내가 어렵고 힘들고 아파할 때에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나를 버렸다고 낙심하고 슬퍼하고 절망할 때, 하나님만큼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나의 고단한 삶 속에 함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벧엘 광야는 시련의 장소요 고난의 때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니 모든 인생에게는 벧엘 광야를 살아가야 하는 환란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누추하고, 이 비천한 곳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고 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과 기쁨이 우리의 삶 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저 야곱처럼,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하여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니 우리는 소망으로 광야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광야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합니다. 서신서의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선을 넘나드는 혹독한 선교 현장에서 생명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온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바울의 고백은 그 자체가, 따로 부연할 필요가 없는 감동적인 서사입니다. 바울 역시, 야곱처럼 홀로 돌베개를 베고 깊은 잠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어쩌면 “하루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야곱과는 또 다른 비참한 상황 속에 놓여 있었음을 말합니다. 야곱은 홀로 광야에 버려졌지만, 바울은 직접 위해를 당하는 현실을 마주한 것입니다.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은 상황,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상황 속에서 바울은 생명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떠한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도, 세상의 어떤 권세자도 피조물도, 아니 죽음조차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넉넉히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면, 그 사랑으로 생명을 얻는다면, 어떠한 환란과 역경을 만나도 넉넉히 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구약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꿈을 깬 야곱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에 깊게 새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베었던 돌베개를 기둥으로 세워서 기름을 붓고 맹세합니다.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2)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다시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에 하나를 하나님께 반드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장은 미래형으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맹세의 고백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슴에 깊게 새기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의 환란과 역경을 이기게 하시고 결국에는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굳게 믿고 있냐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복음의 현장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당신의 제자들을 지켜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요 17:12)라고 하면서,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키시고 돌보시는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야곱을 지키신 벧엘의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소환되었습니다. 야곱과 동행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자들과 함께하시고 바울에게도 함께하셨던 것인데, 믿음의 선조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믿는 자 모두에게 함께하시는 나의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벧엘 광야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난과 환란의 순간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광야를 이기고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