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 2:1~15, 시 98:1~9, 엡 4:1~16, 요 14:1~14
1. 성경에서 하늘로 승천한 사람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창세기 5장 24절에 기록된 에녹이고, 또 한 사람은 열왕기하 2장에 등장하는 엘리야입니다. 하늘로 승천하는 엘리야에 관한 말씀을 읽어보면,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길갈을 출발해서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 엘리야가 가는 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선지자 학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숭배가 극심한 상황속에서 회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할 사명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항상 데리고 다녔던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구할 게 있으면 구하라고. 이때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단강을 건널 때,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벗어서 요단 강물을 치는데,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 위로 건너갔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칩니다. 그러자 똑같이 물이 갈라지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자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강물을 가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엘리야가 행했던 성령의 능력이 그의 수행비서였더던 엘리사에게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 그 당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가 극심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만큼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신 건, 내 백성을 돌아오게 하라는 하나님의 간절함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게 뭘까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내가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저 사람은 하나님하고 함께 살어〕 인정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3.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기 전의 모습을 찾아서 회복시키고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면서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고 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교독한 시편 98편은 하나님의 원하심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편 98편 말씀의 핵심어를 추려보면 이렇게 됩니다.
4
뭇 나라의 목전에서 공의를 명백하 나타내셨도다(2절) |
구원 구원 구원 (1~3절) |
소리칠지어다 노래할지어다 박수할지어다 찬송할지어다 (4~8절) |
심판 판단 심판 (9절) |
구원이란 말씀이 세 번 반복되고, 심판과 판단이란 말씀이 마지막에 세 번 연이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2절에 등장하는 “공의”라는 말씀입니다.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공의입니다. 구원하시는 이유는 공의를 위해서입니다. 심판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공의가 뭘까요?
공의(히, 처다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6.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이 통치할 때,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는 앞으로 수년동안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하나님께 등을 돌렸으니까,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도망을 갑니다.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고, 이스라엘을 떠나 시돈 땅,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서 숨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뭄이 시작된 지 3년이 되는 해에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알 신과 여호와 하나님 중에서,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대결을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갈멜산에 제단 두 개를 쌓았습니다. 하나는 바알을 위한 제단이고,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제단을 쌓고 제물을 올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면 그게 참 하나님이라고. 대결을 시작했습니다. 자 그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엘리야가 쌓은 제단에 불이 내려서 제물을 살라버렸습니다. |
7.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제물을 살라버리심으로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신앙이라는 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
8. 에베소서 4장 말씀에 보면, 1절에서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행하라) 4절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12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6절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9.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살라버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지 않습니다. 방법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교회라 칭하시고 우리를 가리켜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머리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부름받은 사람이 합당하게 행함으로, 교회를 자라게 하고, 교회를 세운다 |
10. 저는 우리 진해중앙교회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공부를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그리고 사랑을 통해 또 용서를 통해/ 나눔을 통해 배려를 통해/ 축복을 통해 |
11. 봐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그리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걸 어떻게 보여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12. 이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걸 드러내지 못하고 사랑만 하잖아요? 사랑을 받는 그 사람 눈에는, 사랑을 주는 그 사람밖에 안 보입니다. 사랑이라는 건, 섬김을 통해 드러나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걸 체험하거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지 못하면, 느끼지 못하면, 우리들의 섬김과 사랑은 그저 선행으로 끝나버립니다. 참 착한 사람이야. 정말 좋은 사람이야. 좋은 일 하는 거야. 복 받을 거야. 내가 드러나고 내가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13.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요한복음 14장 1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그리고 1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14. 여기서 아버지께 간다는 것은, 갈 수 있다는 것은
오늘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공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공의(히, 처다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15. 공의를 히브리어로 처다카, 체다카 이렇게 말하는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어디서 드러나냐? 우리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난다 |
16.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걸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드러나는 거잖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믿고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겁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17.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내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18.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은, 예수님을 믿고, 예쉼을 따르는 것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르고 내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
19. 여기서 하나를 더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질까요?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믿고 따랐던 내가 형통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낼 수 있다면, 나는 형통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4절은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20.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곧,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똑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의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이 똑같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동행과 형통 그리고 복이 어디에 있는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1. 많은 분들에게 신앙의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싫으면 안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건, 싫어도 해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걸 하는 게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이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이 신앙의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2.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입니다.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자리가,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임을 믿고 따르는 자리임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그 자리에서, 형통과 치유와 문제해결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