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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7-1) - " '기억'한다는 것은 " / 어버이주일 /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4-05-09 (목) 08:44 7개월전 391  

본문) 7:9-14, 고후 5:14~21, 17:1~11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은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4대 묵시 중 첫 번째 묵시로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은 당시 이스라엘을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탈하고, 핍박했던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핍박했으며, 그들의 존재는 이스라엘에게 공포와 고난 자체가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오늘 다니엘은 환상 중에 본 내용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열 뿔을 가진 넷째 짐승은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짐승들은 권세를 빼앗기게 될 것임을 예언하며,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이는 장차 오실 인자임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기억할 것은 네 짐승으로 상징되는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통해 무릎 꿇고, 장차 오실 인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무서운 기세로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던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들이(네 짐승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시자 인자 앞에 무릎 꿇게 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네 짐승의 권세, 아니 보다 정확히는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으로 대변되는 주변 강대국들의 권세가 강해보이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시작하면 그들의 권세는 무너지고 장차 오실 인자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요, 그를 통해 이스라엘은 완전한 회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고 선언입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그 어떤 세력도, 권세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할 수 없고, 결국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선언이고, 고백입니다. 이는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이런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이전에 하나님 앞에 드린 마지막 기도의 일부분입니다. 소위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리는 오늘 말씀은 중보자로서 예수님의 역할을 보여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복음을 증거했던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의탁하고, 중보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혼란에 놓이게 될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인데, 이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그 과정에서 흔들리고, 시험에 들 것을 염려한 예수님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제자들을 부탁하며, 그 모델로 예수님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행했던 모든 사역들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고백이요, 이 모든 역사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자신이 영광스러운 길을 걸을 수 있었고, 그 영광된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게 됐으니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 길을 걷고, 중보자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해달라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이 땅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영광에 동참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의탁하는 제자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믿고 고백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요,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제자들과 예수님이 다르지 않다는 고백이고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부어주셨던 능력과 은혜를 제자들에게도 허락하사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언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사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십자가 사건 이후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세밀하게 그들을 하나님께 의탁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사명만을 부여하지 않고, 그들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하나님께 중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오늘 고린도후서의 증언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고 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오늘 말씀을 증거하는 바울의 상황입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성도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의심받고, 공격받던 상황이었습니다. 곧 한가하게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논할 때가 아니라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대응해야 할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위한 변호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권하신다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력하게 이끌어 고린도교회 성도들과의 논쟁보다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어리석었던 과거를 회상합니다. 박해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적대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걸었던 이유가 육신에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고백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으로 판단하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무죄하신 예수님을 부인했고, 예수를 믿고 고백했던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거듭나게 됐음을 고백하며, 그 이후로 자신의 시각도 바뀌게 되었다 증거합니다. 육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변하여 영으로 바라보게 되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 섭리를 알게 되었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인에 불과하고, 사탄의 괴수였던 바울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인도하사 거룩한 사도의 반열에 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박해자였던 바울을 전도자로 변화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더 이상 세상적 관점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향한 일부 성도들의 터무니없는 모략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고, 복음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믿음과 고백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선언으로 연결됨을 오늘 서신서는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변하게 만들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의 중심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사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변화시켰고, 시킬 것이며, 복음을 거부하는 이방인들도, 세상도 변화시킬 것이다 선언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은 비록 그 눈이 열리지 않아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여 거부하고, 부정하고 있지만 그 눈이 열리면 그 한없는 사랑 앞에 누구든지 무릎 꿇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확신은 이방 선교에 매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사신이라 고백합니다. 사신은 나라의 명령을 받아 외국에 파견되던 외교관을 뜻합니다. 사신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보낸 국가, 왕의 명령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사신입니다. 곧 사신의 본질은 명령권자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사신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뜻 그대로, 예수님 뜻 그대로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지식이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전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바울이 더 이상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자기 고백이고, 선언인 것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먼저 경험한 자로서 세상에 그 사랑과 은혜를 증언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이자, 교단적으로는 5.18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주일이 어버이주일이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했던 80년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주일이 5.18기념 주일의 의미입니다. 그럼 어버이주일과 5.18기념주일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억이 있었습니다. 어버이 주일이 부모님에 대한 기억에 기초한다면, 5.18기념 주일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세력에 맞서 목숨 바쳐 저항했던 시민들에 대한 기억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억의 의미입니다. 단순히 그날이 되면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뜻을 받들겠다는 약속이요, 그 사랑과 희생이 않게 살겠다는 결단이, ‘기억이 갖는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회초리로, 때로는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보듬어 주신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민주 선열들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억은 금고에 돈을 넣어두든 묻어 두고, 때때로 꺼내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족속으로 제사장 나라로 선택받았던 이스라엘은, 그 범죄와 불신앙으로 인하여 주변 열강의 먹잇감이 되고,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방치하지 않고, 다니엘의 환상을 통해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성취되었고, 그렇게 오신 예수님은 온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는 사신이 되어 이제 또 세상에 증언하고, 증거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그 거룩한 부르심 앞에 응답한 우리는 거룩한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성도들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확인이요, 고백이고, 감사입니다. 이는 나아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약속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은혜의 기억을 바탕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고 증거하는 거룩한 사신(使臣)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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