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19:16-25, 계 5:6-14, 눅 24:44-53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이기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안식후 첫날 무덤을 찾았던 갈릴리의 여인들을 필두로 해서, 베드로와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세 차례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전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과 허리의 상처를 직접 보여주시면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하시면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증거가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반복해서 보여 주시고, 도마에게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현실에서 일어났지만, 부활은 육의 눈과 손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은 인간의 이성과 지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사건이기에 부활의 증거 외에, 더하여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부할 이후의 세대에게는 반드시 부활은 믿음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로서 증언되고 보전되어 오고 있지만, 부활은 그렇게 육의 눈과 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으로서 부활사건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24장 44절에 선행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 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루살렘에 있는 열한 제자에게 달려가 길에서 주님을 만난 일을 전합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납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목격한 엠마오의 두 제자의 증언은 진실된 것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있던 자들은 두려워하면서 눈앞의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모든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운 생선을 받아 드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부활로서 다시 살아 돌아온 자신을 영으로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은 구약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눈과 손으로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말씀의 증언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4-48)
의심 많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니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신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부활을 믿는 믿음은 구약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으로 다시 사신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을 하시고 생선을 드셨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의심하니, 육신의 증거보다 오히려 말씀의 증언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말씀을 기억하고 믿는다면 주님의 부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말씀하였으매, 그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인해 죄 사함과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이 구원의 역사는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다시 사심은 구약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시간의 역사 속에서 특정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것은 갑자기 영웅적으로, 기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이 켜켜이 쌓이고 응집되어 폭발한 카이로스적 사건인 것입니다. 부활사건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가리켜 기록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시가 일점일획도 어긋남 없이 촘촘히 짜여진 말씀의 사건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눈부신 과학과 차가운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목격자들조차도 의심하였던 주님의 부활은 말씀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였으니, 말씀으로 부활을 믿어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믿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은 어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낼 것이니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을 보내리니 위로부터 능력의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째되던 날인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닫힌 입술을 열고 부활의 증인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삼천명을 회심케 하였고 그것은 초대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완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이성과 지식과 경험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줍니다. 성령은 이성과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의심의 구름을 사라지게 합니다. 성령은 죄악과 사망의 권세에 눌린 심령을 담대하게 합니다. 성령 받은 자만이 부활의 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들려 올라 갔습니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50-53)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합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구름에 가려 올라갔습니다. 함께 있던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제자들 곁에 서서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부활은 “본 그대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적 신앙으로 이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믿는 삶이요 성령의 충만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담대히 전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눅 24:47)이라고 하였으니, 고난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