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 2:8-17, 롬 8:1-11, 요 15:1-11
사람들은 봄을 좋아합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과 메마른 가지마다 새움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심장이 뛰는 생동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가을의 들녘은 또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답습니까? 가지마다 열매를 맺고 있는 곡식과 나무들은 얼마나 탐스럽습니까? 우리 인생의 봄날에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자라며 뻗어나가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가을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는 존재의 목적입니다. 아무리 잎이 무성해도 열매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열매는 나무가 싹이 나고 자라며 잎이 무성하고 성장하는 그 최종목적이며 그 나무의 존재이유입니다.
열매는 존재의 본질입니다. 나무의 본래 모습이고, 피조 된 첫 형상이며 자신이 돌아가야 할 이상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열매를 통해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상한 나무, 병든 나무, 부러지고 죽은 나무가 열매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열매는 삶의 가장 고귀한 결실입니다. 그래서 열매는 아름답고 맛있고 영양이 충만하고 향기가 있습니다. 열매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다른 존재에 생명을 부여합니다. 무엇보다 열매는 자신을 희생함으로 그 열매를 먹는 사람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고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으로 맺는 열매(아2:8-17)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식량의 1/3이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생산되며 그 80%를 꿀벌이 담당합니다. 꿀벌은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꿀을 채집하면서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의 머리에 바르는 수분(受粉)을 통해 열매를 맺게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반드시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은 매우 극적인 사랑입니다.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서로 헤어지고 갈라졌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장벽과 장애물(산과 작은 산)은 사랑을 통해 넘어갑니다.(8절) 사랑은 고난을 이기고 모든 아픔을 이겨내게 합니다. 사랑함으로써 얻는 기쁨은 사람을 마취시키는 모르핀보다 3배나 더 강한 호르몬을 배출시켜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상대방을 가장 아름답고(창살 틈으로 들여다보며) 존귀한 자로(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보게 합니다.(9-10절)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아름답게 보입니다.
전신3도 화상을 입고 살아난 이지선교수의 간증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화상을 입고 수술자국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기도했다지요! “하나님 제 얼굴을 거울로 볼 때 예쁘게 보이게 해주세요!” 얼마나 많이 기도했을까요? 어느 날 마침내 거울 앞에 자신의 얼굴을 대면하는 날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인사했답니다. “지선아 안녕!” “지선아 사랑해!” 자신의 얼굴을 대면하기 전 기도하고 기도하며 자신에게 새 얼굴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물었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새 얼굴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아멘”하는 날, 자신의 얼굴을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고 새 얼굴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 그의 얼굴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사랑은 모든 환경을 아름답게(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꽃이 피고 새는 노래하고) 만들어 갑니다.(11-13절) 사랑하면 아침도 아름답고 저녁도 아름답습니다.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아름답습니다. 고난도 평안도 감사입니다. 잘난 것은 잘난 대로 아름답고 못난 것은 못난 대로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배타적이게(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 합니다.(14절) 아무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돈이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는 원수를 대적합니다.(포도원을 허는 여우, 15절)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허무는 대적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 안에서만 행복을 누립니다.(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임, 16절) 사랑은 함께 동거하고 함께 거함으로 더 깊은 사랑에 들어가게 됩니다.(17절) 오직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말씀대로 살고, 주님을 사랑할 때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에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아야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후 게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주님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책망대신 숯불에 구운 떡과 고기를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사랑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성령으로 맺는 열매(롬8:1-11)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죄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삽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가지, “죄와 사망의 법보다 더 강한 법”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겨울이 물러가야 봄이 오는 게 아닙니다. 봄이 와야 겨울이 물러갑니다. 어둠이 가야 빛이 오는 게 아닙니다. 어둠보다 강한 빛이 와야 어둠이 불러갑니다. 죄와 사망의 법보다 강한 것은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세 가지 확실한 보장을 받습니다.
정죄당하지 않습니다.(1-2절)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죄의 유혹을 따라 살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죄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되며(4절) 육을 따라 살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영을 쫓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5절) 생명과 평안을 향하게 되고(6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8절) 요즘에는 운동해야만 소화가 되고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운동하기가 싫은지요! 어쩌다 보면 하루가 금방 다갑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보혜사 같은 한 분 있습니다. 제 아내가 운동가자고 전화합니다. 미적거리고 있으면 운동 안하면 큰 일 난다고 독촉이 옵니다. 제 아내의 독촉은 게으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거절 못합니다. 마지못해 따라가지만 할수록 왜 이리 좋은지요?
우리 안에 계신 주의 영은 우리를 죽을 몸에서 살리십니다.(10-11절) 몸의 부활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죽을 몸에서 살리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영접했으나 육의 소욕을 따라가는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가지에 맺는 열매(요15:1-11)
포도열매가 없는 포도나무는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목재로도 관상용으로도 땔감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한 가지 포도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합니다.(2절) 속지 마십시오! 아무리 가지를 많이 뻗고 풍성한 잎사귀를 내도 열매 없으면 헛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율법종교,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겉만 화려한 포도나무입니다. 그곳에서는 참 구원과 생명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열매를 맺습니다. 죽은 자가 살고 병든 자가 치유되며 귀신들린 자가 변화됩니다.
포도나무 가지와 줄기는 절대적 관계입니다. 줄기 없는 가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4절)
포도나무 가지는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대상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대상이 좋으면 열매도 좋습니다.
예수님은 참(true, real, new) 포도나무입니다.(1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야 구원과 생명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과연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까? 없다면 지금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른 관계가 아닙니다. 복된 열매가 없습니까? 헛되게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역사의 시작이라면 성도의 부활은 역사의 완성이요 새 역사의 시작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거부했던 낡고 부패한 이세상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 하늘 새 땅으로 변할 뿐 아니라,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그의 통치와 영광가운데 영원히 사는 새 몸, 부활의 몸으로 변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곡식이 추수의 낫을 기다리는 무르익은 추수의 때입니다.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의 백성들의 수가 가득 채워져 가는 시기요,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세력을 확장해 가는 시기입니다. 많은 유혹과 거짓과 불의가 창일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이때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들이 알곡으로 무르익어갈 마지막 때입니다. 겉모습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밀 때가 아니라 겸손과 낮아짐과 섬김과 사랑의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할 때입니다.
부활의 예수의 몸에는 손과 발, 옆구리에 못 자국, 창 자국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우리 몸의 흔적이 하나 남을 것입니다. 큰 기적과 능력과 권세를 나타낸 흔적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낮아지고 죽어지고 희생하고 섬겼던 흔적, 그것만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