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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4-2) - “ 죽음을 믿음으로 이기라 ” / 장애인주일 / 이태영목사

관리자 2024-04-19 (금) 23:02 7개월전 420  
본문) 요11:17~44, 욥 33:14~18, 23~28, 고전 15:51~58

나사로의 회생은 요한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일곱 이적의 마지막 이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셔서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전통에도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언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되살리기도 했습니다(왕하 4:32-37). 엘리사가 죽은 다음에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신이 회생하여 일어섰다고 합니다(왕하 13:21). 열왕기하 13장 21절에 “회생하다”라는 단어는 ‘살다, 살아있다, 소생하다’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하야’ 동사를 번역한 것으로, 에스겔서 37장에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에도 사용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이러한 회생에 대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구약시대의 일반적인 관점은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욥기는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삶에 대한 강한 믿음과 소망을 나타냅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욥 33:15)라는 말씀은 죽음의 상황에 가까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죽음에 가까이 가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경고해 주시고(욥 33:16), 교만을 막아주셔서(욥 33:17) 멸망하지 않게 해주시기(욥 33:18)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구덩이에 빠져서(욥 33:24) 죽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자신이 범죄하셨음을 고백할 때(욥 33:27), 하나님께서 그를 구덩이에서 건지시고 그의 생명이 빛을 보도록 하신다(욥 33:28)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를 잘 나타내는 말씀이 욥기 14장 7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7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11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12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욥 14:7-12)

특히 욥기 14장 12절,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죽음이 모든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정면으로 부인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욥기에서는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날 수도 없고, 죽음의 잠을 자면 다시 깰 수 없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나사로를 깨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잠을 자는 나사로를 깨우시고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뜻하신 것는 단지 죽음으로부터의 회생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회생을 넘어서서 구원을 향한 영생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르다와의 대화를 통해 증언합니다.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곧장 나사로에게 가지 않고 요단 강 건너편에서 사흘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아신 후에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알고 마르다가 집에서 나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이때 마르다는 예수님께 탄식이 섞인 말씀을 드립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하지만 마르다는 절망하지 않고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을 보입니다.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22)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믿음을 기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에 사용된 헬라어는 ‘아니스테미’입니다. ‘아니스테미’는 단순히 ‘일어나다’(요 11:31)는 뜻도 있지만, ‘부활하다, 다시 살아나다’(요 6:39, 40, 44, 54, 11:23, 24, 31, 20:9)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그의 회생이 부활과 영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이 마르다와 예수님의 대화로 재확인됩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보여 두립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 마르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영생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마르다의 믿음을 재확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 말씀은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의 이적 이야기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르다는 가장 귀한 고백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7)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며,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마르다의 고백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고백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1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이르는 계보를 소개하면서 이 계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임을 선언합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포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시작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탄생 고지에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눅 2:11). 또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마 3:17, 막 1:11, 눅 3:22).
그리고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고백을 통해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을 때 구원의 길로 인도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마르다의 고백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마르다에게 있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이미 오셨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지금 오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점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성령강림을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강림과 성육신, 십자가와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생생한 사건으로 체험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 이후에,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홀연히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1-52)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고백이 순교자들의 믿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고백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 경기장에서 사나운 맹수들의 먹이가 되는 순간에, 기둥에 매여서 화형을 당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 고백이었습니다. 성도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무서운 죽음 앞에서 부활에 대한 고백과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순교의 날을 하루 앞두고, 순교의 시간 직전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이 과거가 아니라 자신들이 순교를 당하는 그 순간임을 확신하면서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단단히 붙잡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사망을 이기는 믿음”(고전 15:54-56)입니다.

5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4-56)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는 믿음을 보았고, 부활을 통해 영원한 승리로 향하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도한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영생과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자고 권면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강림과 부활은 지금 이 시간 일어나는 거룩한 사건이며,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부활과 영생 앞에서 육신의 죽음은 지극히 미미한 것이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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