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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2-2) - " 잃어버린 나라를 찾는 길 " / 3.1절 105주년 기념주일/ 김진수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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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사순절(2-2) - " 잃어버린 나라를 찾는 길 " / 3.1절 105주년 기념주일/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4-02-24 (토) 14:22 2개월전 110  

본문) 렘 31:10-14, 벧전 2:18-21, 눅 15:1-10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이며 또한 3.1절 10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3.1절은 우리민족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가치, 우리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되찾기 위해 온 겨레가 목숨을 걸고 일어나 나라의 독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우리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되찾고 싶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주권과 반만년 역사, 폭력으로 상실되었던 인간의 존엄, 외세의 침략으로 잃어버린 우리강산입니다. 이 소중한 가치를 되찾기 위해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두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백성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벨론포로에서 다시 찾아오시는 이야기이고, 베드로전서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속량하시려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벧전2:25) 말씀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잃은 양 한 마리 같은 죄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눅15:3-10)을 이야기합니다. 


잃은 양 찾기(눅15:1-4)


복음서 눅15:1-4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었습니다. 100마리가 있어야 완전합니다. 그 중에 한 마리만 빠져도 한 마리가 빠진 99마리일 뿐입니다. 한 마리를 다시 찾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목자에게는 불완전합니다. 네 자식 중 하나만 불행해도 부모마음은 크게 성공한 세 자식으로 만족할 수 없지 않습니까? 10드라크마가 있어야 온전한 장신구가 됩니다. 그 중에 하나만 빠져도 이빨 빠진 불완전한 장신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은 스스로 생존할 수 없으며 잃은 드라크마는 제 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찾고 여인은 집을 쓸며 잃은 드라크마를 찾습니다.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요. 양을 찾는 목자는 그 양의 주검을 확인하기까지는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찾아내기 까지”(눅15:4) 찾습니다.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도 중단하지 않고 온 방 구석구석을 쓸며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중단 없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눅15:4) 잃은 양을 찾습니다. 양들을 들에(ἐν τῇ ἐρήμῳ) 두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방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들”(ἡ ἔρήμος)은 한적한 산지에 둘러 쌓여있는 안전한 “우리나 목장”을 의미합니다.(J. Jeremias, 예수의 비유) 나머지 99마리의 양을 안전한 곳에 둔 후에야 오직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일에 올인(all-in)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의 관심, 그의 사랑을 오직 그 잃은 양 한 마리에게 쏟습니다. 


잃은 양은 누구인가(눅15:5-10)


오늘 눅15:5-10은 우리 이웃이 누구인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는 단순히 길 잃은 양(플라나오, go astray)이 아닙니다. 나쁜 길로 가다가 길을 잃은, 죄지은 나쁜 양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그의 이웃인 주인을 잃어버린(아포룸미, lost) 가장 불쌍한 양이라는 사실입니다. 탕자는 집을 나가 아버지 재산을 탕진한 악한 아들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이웃인 아버지와 그의 집을 잃어버린 가장 불행한 아들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불행은 사랑하는 이웃을 떠나 이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들도 아버지께 돌아와 소중한 이웃인 아버지를 되찾을 때까지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더 기뻐한 것은 목자입니다. 목자는 목자를 떠난 양을 책망하고 혼내지 않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산양, 다시 찾은 양이라고 기뻐하며 잔치합니다. 이웃을 찾았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형은 비난하고 죄인이라고 비난하지만 아버지는 아니다. 죽었던 아들이 돌아온 거다. 다시 찾은 아들이다. 나는 가장 소중한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합니다.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갑자기 눈물이 나서 목을 끌어안겠지요! 기쁘고 감사했겠지요! 이것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렸던 가장 소중한 이웃을 되찾는 나라입니다. 잃은 아들, 잃은 양을 다시 찾은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웃입니다. 하나님에게 인간은 그의 형상을 닮은 가장 가까운 이웃, 함께 교제하고, 모든 일에 함께하는 이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을 닮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만든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은 그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무(無)입니다. 그분이 창조하셨고 그분이 그의 형상으로 가장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으며,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우리를 살리사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 관계가 깨지면 안 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아담에게 하와는 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습니다. 아담에게 하와보다 더 소중한 이웃은 없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그의 전부였습니다. 아담 없이 하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몸에서 하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아담을 떠나면 하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이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진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습니다. 모든 물질 명예 다 가져도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따르기(렘31:10-14)


오늘 구약본문 렘31:10-14은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이웃인 백성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함께하시기 위해 그 백성을 훈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양은 광야에서 그의 참 이웃이신 목자를 떠나면 죽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나운 맹수 같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양 같은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먹잇감이었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시고 가나안 거민을 몰아내셔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목자이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강하고 힘 있는 나라가 보호해 줄 줄 알고 그 나라를 의지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강대국은 사자와 이리 같아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양 같은 이스라엘을 삼켰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공격을 받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양떼를 모으셨다가 한 번 흩으신 것입니다.(10절) 애굽의 노예처럼 다시 포로가 됩니다. 여러분! 참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길은 강대국이나 힘있는 나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왕,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합니다. 그래서 때가 되어(70년)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의 값을 다 지불하게 하신 후(속량/ 11절) 그들을 앗수르에서 다시 져내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을 건지시기 위해 악한 앗수르를 무너뜨리시고 다음에는 불의한 바벨론을 멸하셔서 그의 백성 유다를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십니다. 아! 우리를 흩으시고 고난 속에 있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다시 모으시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어느 한 나라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다른 나라를 적대시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불행하게 만드는 첩경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우리 주변의 모든 이웃 나라들을 사랑하고 선대하며 평화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강한 나라입니다. 


고용주를 변화시키는 사환(벧전2:18-21)


서신서 본문 벧전2:18-21은 이웃을 떠나지 않는 훈련을 말씀하십니다. 사환(oiketai)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잡다한 집안일을 맡아 하도록 고용주인 주인에게 고용된 사람입니다. 고용된 사람은 주인을 임의로 떠날 수 없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주인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가 기분 나쁘다고 주인의 집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런 일 하기 싫다고 주인이 시킨 일을 거절해도 안 됩니다. 주인이 내게 명한 일은 주인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명한대로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크리스천 사환(oiketai)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두려워함으로 순종하고(18-19절) 심지어 잔인하고 까다로운 주인에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고 그에게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20절)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사건이 크리스천 고용인들이 주인에게 순종하고 억울한 고통을 참고 견디며 자발적인 선을 행하는 일의 본이 되는 사건이라고 하십니다.(21절) 크리스천 사환들이 주인에게 복종하고 억울한 고통을 당해도 인내하며 오히려 선을 행하는 것은 굴종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그들을 섬기며 다른 종들보다 진실하게 주인을 존경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참 사랑과 헌신의 본을 보여주는 일이요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집니다. 그래야 부활의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살려주십니다. 


교회 나가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남편이 있었는데 아내는 핍박하는 남편을 섬기며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술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들어와 온갖 행패를 부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 날 새벽, 여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가다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남편의 신발 한 짝을 들고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가슴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기 교회 안 나오는 남편 신발이라도 가지고 왔습니다. 주여 구원해주시고 선한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 지난밤 과음으로 소변이 급해 아침 일찍 일어난 남편이 마당 끝에 있는 변소에 가려고 신발을 찾는데 신발이 없어요! 신발 찾다 마누라가 새벽기도 하고 있는 교회까지 왔습니다. 다 돌아가고 홀로 앉아 통곡하며 기도하는 아내 소리가 들립니다. 그 기도소리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제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좋으니 제 남편을 구원해주세요! 선한 사람 되게 해주세요! 여기 남편 신발 가져왔으니 그 발이 예배당으로 향하게 하옵소서!


크리스천 사환들은 사람들의 종이 아닙니다. 그들을 폭력과 죄의 본성으로 대하는 주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만들라고 파송된 하나님의 사환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구원해 내는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땅 끝까지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린 자들의 천국입니다. 한 마리 양을 찾을 때 잔치가 벌어집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와야 잔치가 열립니다. 잃었던 은전을 찾아야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 하셨습니다. 땅 끝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모든 사랑의 대상입니다. 1) 가장 먼 곳이 땅 끝입니다. 내 마음에서 가장 먼 사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그가 잃은 양, 집나간 탕자입니다. 2)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땅 끝입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 여기가 세상 끝입니다. 내가 늘 만나는 사람, 얼굴을 매일, 매주 대하는 그 사람이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입니다. 3) 내 반대편이 땅 끝입니다. 내 원수,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 내 삶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내가 전심으로 사랑할 사람입니다. 저 북한의 우리 동포입니다. 4) 끝까지가 땅 끝입니다. 잠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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