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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3-1) - " 진리에 속한 자는 " / 청년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3-03-08 (수) 12:48 1년전 251  

본문) 요 18:28~40, 60:9~14, 3:17~4:1 

 

오늘은 사순절 셋째주일이고, 청년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진리의 길로 믿고, 그 길로 담대하게 걸어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서, 구약, 서신서 본문을 차례대로 따라갑시다.

 

먼저 복음서를 봅시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에 이어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와 공관복음의 차이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신문하는 과정을 꽤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과 빌라도의 대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제 빌라도의 법정을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니 직전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진리가 진리이려면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본문 37절을 읽어봅시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왕이며 왕이 되려고 이 세상에 왔노라고 명확하게 대답하십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 나라의 왕이나 유대인만의 왕이 되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진리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오셨고,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예수님을 진리 자체로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빌라도에게 진리에 대해서 언급하신 후에, 십자가의 길로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공관복음서와 다른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대표적으로,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집중한다면, 요한복음은 도마의 고백을 빌어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라고 하고,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로고스, 이치, 원리, )이며, 곧 하나님이라고 합니다.(1:1)

또한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 없이는 된 것이 없다”(1:3)고 전합니다.

종합해보면,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통해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세상을 살리는 진리입니다.

그러면, 왜 대신 죽으셔서 살리시는 것이 진리일까요?

그것은 그 분이 만물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세상을 향해서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조화로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죽음으로써 기꺼이 먹이가 되어주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먹이를 먹은 피조물은, 먹이가 되어준 피조물의 죽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그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만들어 놓은 세상은, 특정인에게만 보기에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민족만, 특별한 나라만, 특별한 세력만, 특별한 존재만 좋은 세상말입니다.

이 특별한 존재는 너무도 특별해서 자신은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토록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 방법이 다른 존재를 대신 죽게하는 것이라면, 그 방법도 불사합니다. 다른 생명의 존엄은 사라지고, 한낱 도구나 수단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특별한 존재 위주로만 살아가는 변질된 피조세계를 이 세상에 속한 것”(18:36)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질된 피조세계가 망각하고 있는 창조의 원리,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의 원리인 죽음으로 살리는 길이야말로 진리임을 증언하시고, 그 진리를 진리로 인정하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왕이신 세상의 진리는, 죽어서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는 진리를 말합니다. 죽어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는 진리를 말합니다. 죽어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는 진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지를 드러냅니다.

어디 총독 빌라도 뿐입니까? 만물의 진리이신 예수님을 택하지 않고, 선민의식에 갇혀 있는 유대민족을 선택하는 유대인들도 똑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고, 유대민족을 위해 민란을 일으켰던 바라바를 유월절 특사로 살려내라는 유대 군중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면, 총독 빌라도와 유대 군중 뿐일까요? 우리는 죽음으로 살려내는 예수님의 진리 앞에서 과연 자유로운지요?

 

구약의 말씀을 봅시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다시스의 배들이 이스라엘의 자손과 은금을 싣고 돌아오리라.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고,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올 것이다. 너를 섬기지 않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고,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등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이런 희망의 선포는 듣기만 해도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쁘고 행복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을까요?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말은, 곧 이스라엘을 정복했던 제국의 멸망을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으로 비참하게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그 이유를 계약 위반이라고 알렸습니다.(25:20, 34:18, 8:1, 2:8)

그리고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하게 됩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에 이어서 가장 강한 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아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서 망합니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페르시아 제국은 헬라제국에 의해서 망하고, 이후에 로마제국에게 패권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이, 로마제국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제국을 꿈꾸었던 나라들은 한 때 흥했을지 모르나, 반드시 역사 속에 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전 세계 패권 내지는 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려는 헛된 계획을 꿈꾸는 나라들이 있습니다만, 이는 결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합당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것이요, 만물은 누구나 골고루 행복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고, 창조주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자들을 반드시 회복시키신다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만물의 역사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증거로 보아야 합니다.

 

끝으로 서신서를 봅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눈물로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그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욕망을 하나님으로 믿고, 수치스러운 것을 무슨 대단한 영광이라고 자랑하면서 오직 이 세상의 일에만 온 마음을 쏟기에,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뿐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망합니다.

바울이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래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삶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삶이요, 대속의 죽음으로 살려내는 삶이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조차도 십자가와는 별개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성공의 신화를 쓰고자 하는 자들을 그릇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이 땅의 일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가시면서 몸소 보여주신 길, 진리의 길,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드신 길, 조화로운 길, 모두를 살리는 길, 바로 그 십자가의 길. 그 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믿고, 죽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이 삶이야말로 땅에 살면서 하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길, 그래서 교회 안에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욕망을 채우고, 수치스러운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땅의 일만을 생각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이치요, 원리인 진리로써, 죽음으로 살려내는, 희생으로 무지개처럼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이 교회의 몸이라고 하고, 그 분이 교회의 머리라고하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가진 우리 교회들의 모습은 어떤가요그리고 그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지금까지 피조 세계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았는지, 내 모습을 돌아보고, 이후의 변화될 삶을 묵상하고, 결단하는 사순절 기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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