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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1-1) - " 온 생명의 해방을 위하여 " / 3.1절 기념주일 / 이영재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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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1-1) - " 온 생명의 해방을 위하여 " / 3.1절 기념주일 / 이영재 목사

관리자 2020-02-26 (수) 16:54 1개월전 110  

본문) 애 3:55-66, 시91:1-2,9-16, 롬7:14-25, 요13:16-30,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짧은 인생살이에 많은 고난이 닥칩니다. 굽이굽이 험한 인생길 곳곳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 앞에서 사람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뇌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큰 고통을 겪는 중입니다. 이 신종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계속 죽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들의 수가 불어나는 추세를 걷잡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불안에 떨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분위기입니다. 평소 북적대던 시장도 스산하고 백화점도 한산합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마저 개학을 연기하고, 역사적으로 뜻깊은 삼일절 기념식까지 취소되는 지경입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중국에 포교하기 위해 왕래하면서 대형집회를 일삼다가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크게 퍼뜨렸습니다. 이런 위기 국면을 맞아 교회들도 주일예배를 잠정적으로 유예하고, 공중예배를 가정예배로 돌리며, 모든 집회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생살이에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애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 앞에서 탄식하며 괴로워하는 기록입니다. 유다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 당했습니다. 나라를 잃고 포로 신세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행렬이 줄을 길게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던 귀족들이 왕과 함께 포승줄에 묶인 채 모두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종교권력을 누리던 고위 성직자들도 왕조의 몰락과 함께 모조리 체포되어 끌려갔습니다. 이들은 이국 땅에서 노예 신세로 전락해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고통을 난생처음 맛보았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왕국의 멸망을 경험한 사람들의 뼈 깎는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에 담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기념주일입니다. 일본제국에게 국권을 빼앗긴 한반도의 모든 민중이 ‘대한 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친 날입니다. 이날은 조선왕조가 무너진 아픔을 간직한 기억의 날이기도 합니다. 조선왕조의 간판만 바꾼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게 무단강탈 당한 뒤, 한반도의 민중들은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습니다. 이는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린 1917년 혁명에 이어 중국의 쑨원이 일으킨 삼민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향한 민족자결권을 요구한 거국적 만세운동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억압과 착취를 받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삼일만세 사건 속에 그대로 새겨져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이처럼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의 갈등과 투쟁으로 인해 옵니다. 또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전염병으로 닥치기도 하고, 쓰나미나 지진, 또는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비롯되기도 하며, 인간의 문명 생활이 내뿜는 공해 물질로 인해 날마다 날아드는 미세먼지와 같은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전염병을 영어로는 통상 ‘에피데믹’(epidemic)이라고 부르지만, 전 지역에 걸쳐서 생명을 위협하는 가공할 전염병에는 ‘판데믹’(pandemic)이라는 명칭이 따라붙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판데믹으로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보기를 들어, 중세 말 서양에 흑사병이 돌아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도시의 쥐가 옮긴 이 병은 ‘페스트’(pest)라고도 불렸는데, 치사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당시 교회들은 열심히 모여서 기도함으로 이 전염병을 물리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인들이 많이 모일수록 희생자의 수만 늘어났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전염병 사이의 관계를 성경적으로 깊이 성찰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성경에는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데베르>, <네게프>, <막게파>, <네아>, <막할라>란 단어들이 전염병을 가리키는 용어들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성서 시대에도 전염병이 자주 돌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히브리어 원어들을 한글성경은 “돌림병”, “전염병”, “염병”, “재앙”, “질병” 따위로 다양하게 옮겼습니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이 언급하는 일곱 천사가 가진 일곱 재앙들 가운데 서너 가지는 판데믹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도 판데믹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하는 애굽의 파라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열 가지 재앙에는 애굽 전역의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판데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출9:3). 히브리어 성경은 이 재앙을 묘사하기 위해 דֱּבֶר (데베르)를 사용했습니다. 출 11:1에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애굽 땅 전역에 사는 맏아들들과 가축의 첫 새끼들이 다 죽는 마지막 재앙입니다. 전염병이 동물에게 한정되지 않고 사람에게까지 덮쳤음을 출애굽기의 재앙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동물을 마구잡이로 도살해 잡아먹습니다. 주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 혹은 생명의 경계를 어기고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을 시킨 결과, 소가 광우병에 걸립니다. 그렇게 된 소들은 살처분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돼지에게 구제역이 발생하면, 수만 마리를 살처분합니다. 닭들이 조류독감에 걸리면,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합니다. 동물들에게 전염병이 창궐한 뒤에, 이제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사람을 공격하자,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죽음의 냄새가 진동합니다.

 

예레미야애가서에서 고통스럽게 탄식하는 예언자는 주님께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오니, 저 악한 것들을 물리쳐 달라고 외칩니다. 부르짖는 기도로 주님께 탄식하면서 먼저 자신의 죄책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애1:5개역). 홍해를 건넌 후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이제부터 회개함으로써 애굽에서 영위했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을 구현해야 했습니다. 이 과제 앞에서 여호와께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십니다. 회개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애굽에 내린 판데믹 전염병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15:26, מַחֲלָה <막할라>).

 

무서운 판데믹 재난이 닥쳐올 때, 사람들은 그 책임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내려진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설교하면서 회개를 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는 매우 위험한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를 고발하며 회개를 요구할 때, 설교자나 교회는 아무 죄나 책임도 없는 양, 비난만 퍼붓는 논조를 띠기 쉽습니다. 설교자가 죄인을 구원하려는 중보기도의 열정을 보여주지 못할 때,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가 코로나를 “신천지를 공격하는 마귀”라고 비난할 때, 사람들은 그의 말 속에서 오히려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 죄인에게 회개를 외치는 설교자 자신이 그 연대 책임에서 벗어나 심판자의 위치에 서는 일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학대하며 생물종을 멸종시키는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력을 증대해 왔습니다. 특히 근대문명의 산업화가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문명의 이기를 탐하는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이 예견되고 있는 무서운 시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재해가 계속 닥치고, 인재(人災)가 속출하며, 특히 신종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공격으로 판데믹이 창궐합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답시고 세상 죄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교회도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죄인들의 대열에서 교회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교회도 그들의 폭력체제에 편승하여 스스로 권세를 구가해오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이 점을 스스로 반성하는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책임을 지며 고통을 분담하고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중보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교회에게 주어진 회개의 과제입니다.

 

판데믹은 인간이 잘못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야훼 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려고 내리신 질병은 아닙니다. 이 질병의 원인은 인간의 죄에 있다는 말입니다. 애굽인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혹독하게 부리고 폭력을 자행하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판데믹을 발생시키고,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저버리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우주의 운행 원리에 어긋나는 삶의 결과를 가리켜 성경은 야훼께서 내리신 심판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회개에의 부름이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생활했더라면(창1:29; 2:8; 9:4-5; 레11장), 어떠한 판데믹도 인류의 목숨을 위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치시니 죄인에게 재앙이 닥쳤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네게프>라는 단어를 개정역은 “재앙”이라고 옮겼습니다(수22:17; 24:5).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죄인을 한 번 내리치시면 치명적인 손상을 당합니다. 출9:14과 민14:37에서는 “재앙”이 민수기 16장 이하에서는 “염병”이라고 번역되었는데, 히브리어원어로는 같은 단어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재앙과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퍼진 염병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하신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어기고 거역한 죄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데, 민수기에서는 그 재앙이 두드러지게 전염병으로 나타납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모세에게 반역한 고라와 다단의 무리들이 지진의 재앙으로 죽은 다음에 연달아 이스라엘에 염병이 퍼져서 무려 14,700명이나 죽었습니다(민16:49). 이스라엘이 브올의 꾐에 빠져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에 빠졌을 때도 24,000명이 죽었습니다(민25:9).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원리인 말씀(더바림, 로고스)을 어기고 제멋대로 탐욕을 부리며 우상을 섬기며 살다가 코로나와 같은 무서운 염병이 창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욕심만 채운 결과, 인류는 큰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다양한 천재지변이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온 생명을 위협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도는 가운데 교회는 회개의 절기인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가정과 직장에서 회개의 기도를 올리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화석연료 사용과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플라스틱 생산도 멈추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식탁에 지나치게 자주 오르는 육식을 절제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어나갑시다. 탐욕에 기반한 생활습관에서 소박한 삶으로 전향해야 합니다. 전쟁과 다툼을 중지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는 캠페인을 일상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이 사순절에 먼저 앞장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삼일절 정신은 과거와 같이 국권을 회복한다거나 민족자결을 외치는 수준보다도 훨씬 더 크고 광범한 수준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멸종에 대한 경종이 울리는 가운데 환경파괴를 중지하라는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대각성의 요청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대각성을 하고 개인과 집단의 차원에서 실천한다고 해도 탐욕과 편리에 길들인 우리의 생활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기존의 질서에 길들여 있고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바울 사도께서는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다”라고 탄식했습니다(롬7:14).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바울의 탄식은 인간 실존 내면의 깊은 죄의식을 털어놓은 내성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지금 죄를 의식하고 있지만, 선을 행하지 못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살고 있는 사회적 존재의 한계성을 바울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심한 모순의 상황 속에 던져져 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조차 알고 있지만, 국가와 문명과 사회구조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모든 개인의 실천은 지금 여기서 아무런 구원의 효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무기력하게 문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려 갈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제국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휩쓸려 가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밝은 음성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4-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시기에 바울 사도의 암울한 마음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을까요? 예수님도 당대의 문명사적 고통을 감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갈릴리라는 소외된 현장을 두루 다니면서 질병과 가난과 차별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살리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셔서 로마와 헤롯에게 점령당한 식민지의 현실 자체를 개혁하려고 도전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무슨 혁명이나 독립전쟁이라도 일으킬 생각으로 메시야이신 예수를 앞세워 기존권력에 도전하고 나섰습니다. 그 부조리한 사회는 독립전쟁으로 혁명해야 한다고 누구나 다 절실하게 바라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 13장에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최후의 만찬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자들과 나누는 만찬자리는 즐거운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매우 괴롭다고 제자들에게 토로하였습니다(요13:21).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 것을 미리 내다보신 것입니다. 모든 제자가 예수님의 괴로운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가니, 그는 예수를 배신하는 일에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겼지만,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고독하게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치고 전하시고 실천하시다가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기존사회에 불만을 느끼고 새 사회를 향해 헌신하던 모든 사람이 예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민족주의와 바리새주의의 권력체제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자기를 죽기까지 내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확연히 경험한 결과,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사회의 구조악 속에 여전히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실존의 한계적 상황을 처절히 인식하는 가운데 예수에게서 참다운 해방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부단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꺾이지 않는 부활의 소망을 품고 고난의 현실을 살아내는 길이었습니다.

 

2020년 사순절 첫 주일은 공교롭게도 삼일절기념주일과 겹칩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을 염원한 삼일절이 이제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온 인류가 안고 있는 공동의 고통을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생명과 정의의 과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무서운 판데믹이 파도처럼 또 닥쳐올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이라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거대한 모순덩어리로 굴러가는 지구의 문명공동체 속에서 우주의 운행 원리에 따라 살도록 초대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사순절 동안 실천할 과제를 여기에 나누어 봅니다. 올해는 ‘탄소금식’을 권유합니다. 이산화탄소 발생을 촉진하는 해외여행이나 원거리 여행을 자제하고, 될 수 있으면 집단행사(집회)도 줄여야 하겠습니다. 인류가 방출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여보려는 그리스도인의 작은 몸짓입니다. 온 생명의 해방을 위한 우리의 발걸음에 성령께서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 2020사순절 탄소금식(7Weeks without Co2) -

-첫 주간: 신상품 금식/ 유행을 좇아 새로 출시된 옷이나 신발, 가방 등 신상품을 사지 않는다.(욕망의 소비 대신에 검소한 재활용을 습관화하기)

-둘째 주간: 플라스틱 금식 /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특히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 대신에 유리병이나 텀블러를 사용하기, 비닐백 대신에 장바구니 이용하기)

-셋째 주간: 전기 금식 / 하루 한 시간씩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티브이 등 일체의 전기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갖기)

-넷째 주간: 고기 금식 / 산업축산으로 생산되는 육식을 금하고,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채식으로 전환한다.(콩고기 등 육식을 대체할 수 있는 채식 메뉴 개발하기,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사용하기) 

-다섯째 주간: 커피 금식 /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샵을 이용하지 않는다. (하루 한 잔씩 커피값을 줄여 ‘탄소헌금’을 마련하기)

-여섯째 주간: 종이 금식 / 아마존이나 호주의 대형화재, 무분별한 밀림 벌목처럼 지구의 허파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무를 아끼기 위해 종이 사용을 줄인다. (특히 종이컵 대신에 텀블러 이용하기)

-일곱째 주간: 외제 상품 금식 / 비행기 등 원거리 운송 수단을 이용하여 교역된 상품이나 식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로컬’ 음식과 상품 이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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