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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1-2) - " 사랑하기에 아파합니다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0-02-27 (목) 17:22 1개월전 129  

본문) 애3:55-66,롬7:14-25,요13:16-30/사순절 첫 주일


1) 사순절 -3.1운동 101주년

 코로나 19의 공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되어 온 나라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왔습니다. 그리고 항상 새봄과 함께 다가오는 사순절도 시작되었습니다. 금년은 많은 국민들이 아파하는 이 모습을 바라보실 주님의 아파하는 마음을 느끼며 사순절을 보내게 됩니다. 

 또 오늘 주일은 3.1운동 101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이기도합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뼛속 깊이 아파하며 자주독립만세를 불렀던 선열들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가룟 유다를 아파하는 예수님 -요한복음 13장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신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제자들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섬기도록 하라는 당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주님의 눈길은 얼마 후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이미 아시고 계신 주님에게는 이를 아는 것 자체가 큰 아픔이었습니다. 배반할 것을 몰랐는데 갑자기 배신을 당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는 그 일을 아는 것 자체가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아셨지만 그를 차별하거나 냉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더 신뢰하여 돈 주머니를 맡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미 그 최후의 만찬 자리에 오기 전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하고 은 30을 받았습니다.(마26:14-16) 아마도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씻기실 때도 또 만찬에 참여할 때도 이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시고 예수님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18절)고 말씀하시며 가룟 유다의 양심을 두드리십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이 성경은 시편 41편 9절에 있는 다윗의 시인데 다윗은 자신이 사랑을 베푼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아픔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심지어 자기가 낳은 아들압살롬으로부터도 배반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런 배신의 아픔을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해 겪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이 참으로 마음 아팠습니다. 본문 21절은 “심령이 괴로워”라는 말로 예수님의 아픔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하시며 가룟 유다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들은 제자들은 누가 그렇게 할까 궁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가룟 유다는 그 말을 듣고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은 빵을 들어 가룟 유다에게 주시며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하시며 가룟 유다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연거푸 세 번이나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 가룟 유다를 예수님이참으로 사랑하셨고 그래서 그 배신이 마음 아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참기 어려울정도로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참으로 아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보며 초점을 잘 잡아야합니다. 이 본문에서 핵심은 가룟 유다가 아니고 바로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을 가슴아파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에게 가룟 유다는 집나간 탕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행의 마지막 발목을 붙잡는 가룟 유다의 배신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가슴에 얹힌 큰 돌덩어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세 번이나 그를 되돌리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의 배신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그가 불쌍했던 것입니다. 아, 그 사랑 얼마나 큰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팔아넘기는 제자를 미워하지 않고 가슴아파하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 가슴 깊이 새겨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작은 손해를 끼친 사람하나도 용납하지 못하고 미워하는데 예수님 자신이 3년 동안이나 신뢰하고 사랑을 베풀어주신 제자의 배반에 가슴아파하셨습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지만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파하신 것입니다. 이 큰 사랑을 우리가 이 사순절 동안 가슴에 담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 사랑하는 조국의 멸망을 아파함 -애가 3장

 애가서는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사랑하는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을 때 이를 보고 너무 슬퍼서 지어 부른 애가(哀歌)입니다. 애가서 전체에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 3장 55절 이하에서 예레미야는 고난당하는 민족의 현실에 온몸으로 동참하며 동족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심히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할 때 자신들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간구합니다.(56절) 억울하고 원통함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59절) 그러면서 자신을 치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이야기를 들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자들을 주목해 보시고(62, 63절) 저들이 행한 모든 것을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보응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그들을 멸해달라고 간구합니다.(64-66절) 

 우리는 예레미야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그가 얼마나 나라를 사랑했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외쳐도, 외쳐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해 한없이 분노하기도 하고 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던 예레미야의 나라사랑의 충정을 애가서 전체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눈물의 예언자답습니다. 그의 눈물이 곧 나라사랑입니다. 

 저는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애국지사 장지연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어버리게 될 때 <황성신문>의 주필이던 장지연은 1905년 11월 20일 그 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사설을 썼습니다. 이 글의 말미에서 장지연 선생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하고 울부짖었습니다. 나라를 뜨겁게 사랑한 우국지사의 아파하는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3.1운동 101주년을 맞으며 우리의 우방이라고 굳게 믿은 나라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방위비 증액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권을 아직도 미국에 저당잡히고 우리의 국익과 배치되는 이란 파병 등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힘없는 우리 대한민국의 설움이 가슴에 핏멍울로 맺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고 분노하고 가슴을 친 예레미야의 나라사랑을, 나라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뛰어나가 일제에 대항하여 맨주먹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른 우리 신앙선배들의 기개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권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을 속국 취급하는 강대국들의 횡포를 보고서도 잘 길들여져 재주넘는 곰처럼 끌려다니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존심을 찾아야합니다. 3.1운동은 바로 민족의 자존심을 찾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강대국의 횡포를 보고 분노해야합니다. 통곡해야합니다.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예레미야처럼 지금 기도해야합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4) 내 안에 있는 가룟 유다를 아파합니다 -로마서 7장

 로마서 7장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온 바울의 내면적인 고민과 함께 자기 자신의 실존적 고백이 담긴 말씀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때 여전히 죄 가운데 놓여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워합니다. 바울이 어리석었거나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육신에 속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육신의 욕구를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보고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은 악을 행하는도다"(19절)라고 탄식합니다. 이어서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20절)고 하면서 자기 안에 다른 죄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다른 말로 자기 안에 예수님을 배반하는  다른 가룟 유다가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 바울은 그래서 탄식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가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얼마나 진지한 내면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싸우는 아름다운 신앙인 바울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서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진지하게 자기를 대하는 모습이 바울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입니다. 

 

5) 맺음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합니다.

 사순절을 맞으며 우리가 어떻게 가야 바로 가는지를 다시 진지하게 돌아보며 예수님처럼 아파하더라도 사랑하며 가야하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을 참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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