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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7-1) - "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 / 서재경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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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7-1) - "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 / 서재경 목사

관리자 2022-02-18 (금) 18:33 2년전 554  

본문수 1:1~9, 고전 10:1~13, 눅 9:57~62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누가복음 9장 58)

 

오늘 우리가 받은 누가복음에서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그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요그 길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우리가 아는 것처럼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요그렇지만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그리고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갈릴리의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쳐주시고 귀신을 축출하시며 일하셨습니다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였지요그렇게 갈릴리는 복음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갈릴리 바다에서풍랑을 꾸짖어 고요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얼마나 경이롭습니까몹쓸 질병을 고쳐주시고악한 귀신에게 명하여 쫓아내시고심지어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모습은 얼마나 위엄찹니까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무리가 배불리 먹은 일은 또 얼마나 감동적입니까예수님 갈릴리 복음 전도는 거침이 없고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께서돌연 그 방향을 틀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게 되었습니다이른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갈릴리는 시골 변방이지요이름 그대로 갈릴리 호수/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갈릴리 지역은물이 풍족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고또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바로 어부였지요팔레스틴의 거의 모든 농산물은 갈릴리에서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갈릴리는 예로부터 변방이라고이방인의 땅이라고 멸시받고 천대받았습니다반면 예루살렘은 일찍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은 이래로 언제나 나라의 중심이었습니다무엇보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지요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전이 있는 도성거룩한 도성이었습니다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중심이라고아니 온 세계의 배꼽/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온 우주가 예루살렘을 축으로 돌아가는 것이요모든 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우리로 치면시골 두메산골에서 개나리 봇짐 하나 메고 한양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적어도 사람답게 살려면성공과 출세를 꿈꾼다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합니다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 길은 꿈에도 그리던 순례길 그 자체였습니다예루살렘에 가서 거룩한 성전을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꿈이었습니다그런데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드디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이 사람은 왜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일까요그가 예수님을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나선 까닭이 무엇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그렇지만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무엇보다 그에게 대답해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찬찬히 묵상해보면그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말하는 의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무슨 말씀입니까여우에게는 굴이 있고 새에게는 보금자리가 있다고 하셨는데그 굴과 보금자리는 무엇이겠습니까사람에는 집가정이 되겠지요우리에게는 아파트가 되겠네요그런데 집은아파트는 무엇입니까안전안식이라 할 수 있지요굴과 보금자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입니다그런데 여우와 새들에게도 있는 굴과 보금자리가 인자에게는예수님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이 예수님의 대답을 거울로 삼아 비추어보면그 사람은 예수님에게서 바로 그런 굴과 보금자리 같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반추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따르면 굴과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겠다그런 기대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에도 병행하여 나옵니다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이 율법학자’(마 8:19)였다고 말하지요예수님이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놀라운 이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다는 얘기입니다그런데 어찌 율법학자뿐이겠습니까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른다면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냐누가 더 크냐며 갈등하고 다투었습니다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더 높은 자리와 더 큰 집을 기대했습니다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에게헛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꿈 깨라는 얘기지요예수님이 가시는 길은예루살렘 길은 그런 출세와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여우의 굴과 새의 보금자리라는 은유를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여우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그렇지요복음서에서 여우맹수가 사냥하고 남은 찌꺼기썩어 냄새나는 뼈다귀를 찾아다니는 여우는 누구를 말하지요헤롯입니다그렇게 본다면여우의 굴은 헤롯의 화려한 궁궐을 빗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여우가 헤롯이라면새는 또 누구를 말할까요흔히 성서에서 새는 이방인을 뜻합니다새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새라면독수리 같은 새겠지요그렇다면 로마의 황제나 총독을 암시할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를 정리해 봅시다어떤 사람이또는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결의를 보였습니다그런데 그는 정작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예수님의 길은 헤롯의 길과 달랐습니다예수님의 길은 저 카이저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내 굴과 내 보금자리를 더 크고 더 안락하게 넓히는 길이 아닙니다아니지요人子의 길은 머리 둘 곳이 없는 길입니다십자가의 길입니다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은 먼저 그 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초를 치시고는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이 사람은 또 누구일까요마태복음은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합니다그러나 누가복음은 꼭 제자라고 특정하지는 않습니다어쨌거나 예수님께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시자그 사람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사람에게 자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요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먼저 아버지의 장례부터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또 다른 사람이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했을 때도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참 너무 매정한 말 아닙니까예수님이 이렇게까지 매정한 분이셨다는 말일까요아니지요예수님을 따르는 길은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은 그런 비장한 마음의 결단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말입니다그 길은 저 헤롯과 카이저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그 길은 출세와 성공의 탄탄대로가 아니라 고난과 역경의 길입니다말 그대로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광야의 길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이 나아갔던 출애굽의 길이 그랬습니다광야 40년 동안 백성을 이끌었던 모세가 죽은 후 뒤를 이어 백성을 이끌어야 했던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얼마나 비장한 마음이었겠습니까여호수아의 앞에 놓여 있는 가나안 땅은 광활했지요광야에서 레바논까지큰 강 유프라테스에서 헷 사람의 땅을 지나 서쪽 지중해까지숨 막힐 듯 드넓은 땅입니다그리고 그 땅에는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초라한 꼴로 만드는 강력한 거인족이 살고 있습니다수많은 장애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이 길을 가려면 여호수아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그의 가족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가문을 내세워야 할까요아니지요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도 낙담하지도 말고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고다만 주 하나님만 따라가야 했습니다오직 주님의 율법을말씀을 따라가야 했습니다.(수 1:9)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바울은 그들이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다고 말합니다.(고전 10:1)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걸어갔다는 말입니다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떠나 불평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이 있었지요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그들은 모두 파멸하여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출애굽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 길도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현절 일곱째 주일을 맞았습니다주현절은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가르치시고병자를 고치시고 악한 귀신을 쫓아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절기이지요사순절을 얼마 앞두고 예수님은 갈릴리 활동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습니다그래서 제자들의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다짐해야 했습니다무엇보다 먼저 제자들은 그 길이예루살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그저 개나리 피는 봄날의 가벼운 봄나들이 길이 아니라십자가의 길입니다십자가의 길은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훌훌 떠나는 출가도 가출도 아닙니다예수님은 집과 가족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참석하셔서 축복하셨고결혼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주셨고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한 가족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족 이기주의를 경계하셨습니다헤롯의 지독한 가족 이기주의는 얼마나 많은 백성의 가족을 끔찍하게 살육하고 붕괴했습니까그것은 결국 헤롯의 가족 자체가 처참하게 자멸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특히 누가복음을 기록할 즈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세계 안으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때입니다그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었지요옛날 우리의 독립군들도 집을 떠나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가족과 絶緣해야 했습니다나라를 위해 싸우기 위해서 자기 손가락을 잘라내고 자기 식솔을 잘라내야 하는 그야말로 斷腸의 悲痛을 견뎌내야 했습니다왜 그랬을까요가족이 싫어서 미워서 그랬을까요아니지요가족이 너무나 소중하니까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그래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아내나 자식이나형제나 자매뿐 아니라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4장 26절 말씀입니다여기 이 철저하고 단호한 미움이 무엇이겠습니까참으로 비장하고 비통하고 결연한 미움세상에 더없이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미움이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요우리를 위하여아니나를 위하여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고 피를 쏟으며 마침내 이루신 사랑그 거룩하고 거룩한 사랑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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