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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1-2) - " 카이로스 새해 " / 정상시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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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1-2) - " 카이로스 새해 " / 정상시 목사

관리자 2022-01-07 (금) 16:24 2년전 487  

본문) 5:1~12, 11:26~32, 고전 13:1~13


오늘은 주현절입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마가는 예수의 공생애 시작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의 출발지가 갈릴리였고 때가 요한이 잡힌 후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4:16)고 증언합니다. 빛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입니다. 오늘 본문 마5:1-12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마태 개인의 증언이라기 보다 초대교회, 마태공동체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갈릴리는 구약시대부터 이방의 갈릴리로 불렸습니다. 흑암의 땅이었고 갈릴리 민중(오클로스)은 사망의 그늘에 앉은 백성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며 정치적으로 박해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었습니다. 반란이 많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사에서 갈릴리의 반란과 폭동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유다는 대표적 반란 지도자였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오시기 전, 갈릴리 유다가 메시아를 자처하며 먼저 왔습니다. 5:36-37 그 이름이 언급될 정도입니다. 당연히 갈릴리는 반역의 땅으로 낙인 찍혔고 역사적 상처가 많았습니다. 억울하게 정죄되고 희생된 자들도 많았습니다. ‘요한이 집힌 후라는 짧은 말 속에는 많은 숨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역사적 상처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래되는 구한말 조선도 어둠의 땅이었고 잦은 민란으로 인한 상처와 슬픔으로 인한 한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들어왔을 때 그것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본문 마5:1-12은 복음 중 복음, 산상수훈 중 팔복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슬픔의 땅에 선포된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산등성이에 해가 떠올라 어둠을 비추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갈릴리의 새해이고 마태의 주현절입니다.

 

빛을 영접한 사람들

 

말씀드린 대로 마태는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시는 모습을 빛이 어둠을 비추이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4:16). 마태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예수의 제자들, 출신 성분이 다양합니다.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고 열심당 당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직업이 무엇이든지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고 갈릴리 민중들이었습니다. 마가는 마태를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소개합니다(2:14). 마태의 본명이 레위로 추정됩니다. 세리 마태가 예수의 부르심을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예수를 따르는 장면은 놀랍습니다. 어쩌면 정치적 격동기, 갈릴리 유다의 폭동 후, 본명을 감추고 위장 취업하고 갈릴리 세관 세리로 일했는지 모릅니다. 로마 세금 납세 거부 기치를 내걸고 반로마 폭동을 일으켰던 갈릴리 유다를 따랐던 열심당의 일원이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마태는 정치적 격동기를 살았던 갈릴리 사람으로서 갈릴리 세관 세리로 일하다가 예수의 제자가 된 자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을 듣고 마치 자석에 끌리듯 즉시 따릅니다. 그만큼 그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에게 예수가 어둠을 비추는 새해였습니다. 본문 산상수훈 첫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5;1) 제자들 중에는 마태와 마태 공동체도 포함됩니다. 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께 나아온 자들이었고 그 빛을 영접한 자들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새해맞이였습니다. 연대기적 새해가 아니라 카이로스 새해였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1:14)고 할 때의 ,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질적 변화 시간이지요.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회개하고 복음을 듣고 예수의 제자가 된 자들, 질적 전환의 카이로스를 경험하고 운명을 바꾸고 역사를 바꾼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5:1) 무리와 제자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많은 갈릴리 사람들, 여전히 어둠의 동굴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무리들만이 예수의 빛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의 처음 제자들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빛을 등진 채 사망의 그늘진 땅의 백성이었습니다. 예수 새해를 영접함으로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9, 11-13) 코로나 역병 환난의 날이 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빠져 있고 어둠의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맞는 새해와 주현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연대기적 새해, 교회력 상의 반복되는 주현절이 아닙니다. 역병 환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회개하고 전환시대를 준비하고 거듭나는 카이로스 새해, 주현절 되길 소망합니다. 전에는 사망의 그늘진 백성이었으나 빛을 영접하고 빛의 자녀로 거듭났던 예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예수의 제자로 다시 서는 주현절 되길 빕니다.

 

임마누엘 사랑 공동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떠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체성일 잃은 이스라엘은 패망하였습니다. 바벨론 종살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구전 전승을 찾아 문자화 했습니다. 신명기도 그 때 문자화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신앙고백의 산물입니다. 신명기의 핵심 메시지는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된 것은 놀랍게도 바벨론 포로시대였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바벨론 포로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고통도 극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코로나 시대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입니다. 회개와 성찰의 기회를 주고 마침내 인간이 인간되고 교회가 교회되게 하려는 은혜입니다. 지금 기후 위기, 환경 위기가 재앙 수준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인간들은 아직 근본적 성찰과 회개가 없습니다. 탄소중립 실현, 말은 화려한데 근본적인 회개는 없습니다. 코로나 역병의 장기화조차 어쩌면 회개할 기회를 연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회개를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 바벨론 포로 시대, 비로소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는 망했지만 민족은 살아났습니다. 고난의 유익, 환난의 은총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교회의 고통 큽니다. 그러나 이 고난도 교회가 교회됨을 회복하는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증언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바울는 무서운 교회 박해시대 한복판에서 이 말을 했습니다. 밖으로는 로마의 박해요 안으로는 이단의 침투와 내부 분열이라는 외우내환은 위기였습니다. 그런 중에 바울은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바울은 고난을 통해 교회가 교회되는 은혜를 깨닫고 그 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재주와 능력 있는 사람, 지식과 말 잘하는 변사들 많았습니다. 서로 잘 났습니다. 바울은 처방전으로 십자가의 도(고전1:18)와 성령의 은사를 말합니다(고전12)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입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12:31) 하면서 사랑을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13:1-2) 그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임마누엘 사랑이 하나님의 선물로서 최고의 은사입니다. 초대교회는 거대한 제국 로마의 무서운 박해를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적은 무리들가 제국을 이긴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겼을까요?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의 인격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사랑의 화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이 있는 교회, 제국을 이기고 코로나 박해도 이기고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천국 비밀이 있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고 교회가 교회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 (정상시목사, 안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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