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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9-2) - " 고난, 영광의 씨앗 "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19-02-28 (목) 16:49 5년전 3573  

본문) 잠언 3:1-12, 1:24-29, 16: 21-28

 

주님의 평화! 주현절 아홉째 주일입니다.

당신의 고난은 영광의 씨앗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교회, 그리고 고난 받는 이웃들과 함께 받는 고난을 기뻐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고통 올림픽이 펼쳐지는 사회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다.’ 서로의 고통을 겨루는 고통 올림픽이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모두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에 감정 이입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다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자신이 던진 돌이 얼마나 아픈 돌인지 아는 것. 우리한테 부족한 것은 그런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면 그런 감수성을 아무런 진통 없이 확보한 사회는 없다. 더 나은 실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2019.2.23. 김승섭교수 인터뷰중)

 

2. 고통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행복 전도사’ ‘행복 디자이너로 불리던 최윤희씨가 남편과 동반 자살했다는 뉴스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책과 강연 등을 통해 IMF사태 이후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웃음을 잃은 사람들에겐 웃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해서 충격과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적이 있습니다. 알려진 이유중의 한 가지는 그녀가 앓고 있는 루퍼스병이 수백 가지의 고통으로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한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것이기도 합니다.

 

3. 고통은 끝없는 문제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고통은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는 문제이고, 뚜렷한 해결의 답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고통의 하나님>을 쓴 필립얀시는 고난의 문제는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까를로 까레토 수사는 우리는 고통가운데서 울다울다 지치면 <주님, !> 라고 묻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고 우리는 다시 울고 더 슬퍼진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고, 고난 앞에 파괴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이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도전과 성숙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연구의 결과들을 내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안에서 그 뜻을 보여줍니다.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음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음의 일부이다. 고통의 어두운 심연을 밝힐 복된 빛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찾는 길은 그를 이해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우리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안젤름 그린, 인생을 이야기하다 중에서 칼라너 재인용)

 

4.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고난

오늘 세 본문 말씀을 통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고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잠언 말씀은 인생의 여러 가지 복에 대한 말씀 속에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징계도 우리 삶의 복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없는 영광을 추구했던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고난을 기쁨으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5. 예수님이 삶을 통해서 보여주신 고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로마서 8:17)

 

이 말씀 앞에 곤혹스러워 하던 사람이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 두 가지 고난은 서로 번갈아 나타나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 있을 때도 있으며, 긍정적인 면도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다른 점은 확실합니다. 그 두 가지 고난은 <무엇으로 인해서 받는 고난><누구와 함께 함으로 인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어느 날 고통거리가 우리를 찾아와서 옭아매고 할퀴고 마음대로 쥐고 흔들면 우리는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으로 부터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질병과 같은 육체의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원하지 않았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으며 자청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견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사람이나 일 때문에 고난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고난과 달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 받아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야 고난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이야기할 때 고난 받는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는 고난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받으신 고난의 특징이며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격분한 바리새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았고, 냉혹하고 잔인한 로마제국으로부터 심한 고통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고향사람들부터 배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고난을 받았다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온 구세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의 강도가 극심하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다른 수난자들과 다른 것은 고난의 본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이웃과 함께 고난을 당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가 된 것은 그가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하고자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고난 받는 이웃 속에서 그들과 고난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분명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6.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을 오해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가운데 빠지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그 일로 예수님의 심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감! 고난 받음! 죽임 당함! 그리고 부활! 구속사역에 대한 큰 그림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막았습니다. 그가 알고, 기대하고, 믿고 따라다닌 메시아와 그의 왕국에 대한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이니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지칭하면서 꾸짖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당신의 백성을 세우시는 방법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인데, 그것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계획, 자신의 야망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로막으니 사탄이라고 단호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참된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면 잃을 것이고, 주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찾을 것입니다. 제자도의 역설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질 때가 곧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의 권세입니다. 이 주님의 왕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따르는 제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선택하고, 그 일을 하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7. 예수의 복음과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교회의 기쁨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

 

이 신비를 깨달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고난이 씨앗이 되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확산되고 교회가 세워지며 주님의 영광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일을 기쁨으로 수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교회, 그리고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의 그 고난은 영광의 씨앗입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수행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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