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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8-2) - " 민족 십자가를 지는 교회 " / 정상시 목사

관리자 2019-02-22 (금) 10:33 5년전 3527  

본문) 14:25-35, 삼하 24:18-25, 4:32-5:11

 

올해, 3.1 혁명 100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 전, 한국교회는 작지만 큰 교회였습니다. 가난하지만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누룩이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2000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도 작지만 큰 교회, 가난하지만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4:32, 34-35) 성령강림 사건 30년 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처음 교회 성도들 자화상입니다. 무서운 핍박과 박해 중에서도 담대한 믿음의 힘이 느껴집니다. 오늘날 교회,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을 사서 수치를 면해야 할 라오디게아 교회를 닮았습니다(3:18).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들을 귀 있는 자 되길 바랍니다.

 

민족의 청지기 교회

 

복음 전래 된 초기, 나라는 망해가고 백성들은 목자 잃은 양과 같았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사망의 그늘 진 땅의 백성들이 빛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쪽 복음, 한글 성경을 읽고 야학도 하고 진료소도 열었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이 동산에 할 일 많이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찬송하며 민족 동산의 청지기를 자임했습니다. 많은 민족의 일꾼들을 배출하였습니다.

 

당시 한국 초대교회 중 하나였던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 이야기입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 밑에서 숯장사를 하다가 17세 때 스크랜턴 선교사를 만나 예수 영접하였고 후에 신학을 공부해 1907년 목사 안수 받고 스크랜튼 선교사를 이어 상동교회 담임목사가 됩니다. 평생 성문 밖,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삽니다. 당시 장티푸스나 역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족들도 외면하였지만 전덕기 목사는 나막신을 신고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구분 하지 않았습니다. 1905년 나라의 주권 상실 후, 상동교회는 독립운동 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상재, 남궁억, 이동녕, 이회영, 신채호, 김구, 이준, 주시경, 안중근 등, 후에 민족 지도자들이 된 청년들, 상동교회 청년회원들이었습니다. 상동교회만이 아닙니다. 승동교회는 만민 공동회와 3.1 운동에서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정동교회도 민족의 십자가를 짊어 진 교회였습니다. 1912년 일제(日帝)는 민족운동의 거점이 된 교회를 탄압하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총독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덧 씌워 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합니다. 105명이 기소되어서 105인 사건이라 불립니다. 전덕기 목사도 모진 고문을 받고 3년 옥살이를 합니다. 1914, 고문 후유증으로 죽습니다. 그의 장례에 남대문 점포들이 문을 닫고 일대의 백정, 기생, 불량배들까지 몰려와 애도하였고 상여행렬이 10리였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감동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 100년 전과 너무 달라졌습니다. 그 상여행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를 때 뒤를 따랐던 십자가 행렬이 연상됩니다.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 행렬을 따르는 무리입니다. 잃었던 형상,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눅14:27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예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선물(카리스)이지만 값싼 은혜는 아닙니다. 역사와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값싼 은혜, 예수 십자가의 은혜는 아닙니다. 자기 밭을 팔아 바치는 바나바(4:36-37), 백성의 역병 재앙 앞에서 값을 치루고 회개와 희생의 번제를 드리는 다윗이 받은 은혜야말로 참 은혜, 값 비싼 은혜입니다. 레위족 출신 바나바는 희년 공동체가 실현된 초대교회 모습에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밭을 팔아 예루살렘교회에 바쳤습니다. 레위인은 율법적으로 밭을 소유할 수 없는데 바나바는 레위인으로서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온 삶을 회개한 것입니다. 백성이 역병의 재앙으로 고통당할 때 다윗이 번제의 희생제물을 드리려 합니다. 번제할 땅(타작마당)과 번제물()를 거저 주려는 아라우나의 제의를 거절하고 다윗은 값을 지불합니다(삼하24:24).

한국교회, 민족의 십자가인 분단을 치유하기보다 분단에 무임승차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3.1 혁명 100주년, 민족의 십자가를 졌던 처음 사랑, 그 잃어버린 교회의 형상을 회복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나치 히틀러에 저항하다 순교 당했던 본 회퍼 목사는 타자를 위한 교회를 말했습니다. 교회는 교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그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타자는 남이 아닙니다. 나와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내가 만나고 직면하는 우리의 너입니다.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교회, 타자를 위한 교회입니다. 민족은 나와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이고 내가 직면하는 역사 현실입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민족이란 말, 불길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이 생각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 깃발로 침략 전쟁을 일으켰던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역사적 트라우마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역사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놓여있는 분단 현실이 다릅니다. 강대국에 의해 주권이 침탈되고 독립을 위해 눈물겨운 싸움을 해온 역사, 여전히 강대국 고래 등 사이, 새우 신세가 되어 있는 우리는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여전히 넘어야 할 역사의 아리랑 고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민족을 말합니다.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민족 평화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 평화의 왕, 예수께서 바라시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공공성 회복이 급하다는 말, 많이 듣습니다. 오늘날 직면한 교회 위기 현실, 바로 공공성을 잃은 교회가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 현실일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4:32) 이 땅의 처음 교회도 그랬습니다. 선교사들은 비정치를 선언했지만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서 시작되어 1918년까지 이어진 민족 각성 운동19193.1 운동과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민족도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민족 분단, 교회분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피스 메이커가 되라(5:9)는 주의 뜻 거스르고 죄를 짓고 있습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선포하신 희년 정신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 믿으시길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실현된 희년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희년 공동체는 거저 된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섬김과 희생, 밭을 팔아 바치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십자가가 있었다는 사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값싼 은혜가 아니라 귀하고 값비싼 은혜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의 그날의 함성과 뜨거운 기도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백년의 역사, 압박과 설움, 전쟁과 분단의 상처로 점철된 피눈물 역사였습니다. 거기 한국 교회가 있었습니다. 100년 전, 그날의 교회, 2000년 전, 그날의 교회, 고난의 가시밭에 핀 백합화였습니다. 그 날의 향기,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것이 지혜이고 능력임을 깨닫고 다시 고백할 일입니다. 민족 분단, 한국 교회의 십자가로 알고 지고 역사의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평화의 새 아침, 민족의 새 시대가 올 것입니다. 교회의 새 시대도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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