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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8-1) - " 참된 예배가 일으키는 새로운 민족사 " / 이영재 목사 > 주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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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8-1) - " 참된 예배가 일으키는 새로운 민족사 " / 이영재 목사

관리자 2019-02-20 (수) 19:29 5년전 3433  

본문) 눅 14:25~35, 삼하 24;18~25, 행 4:32~5:11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또한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입니다. 시편 50편의 시인은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힘차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창조주이시기에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찬양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누리를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로서 죄 많은 세상에서 주께서 택하여 구별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위시하여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 각양의 종교들마다 다양한 형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교단이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와 정교회가 있는가 하면 개혁교회의 교파들도 다양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라 하더라도 예배의 형식과 신학은 조금씩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 개성에 맞게 문화와 전통에 따라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되 우상숭배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금지하십니다. 성경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예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편 50편의 시인은 시온에서 드리는 예배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고 인정합니다. 주께서 은혜롭게 베푸시는 모든 복은 시온에서 밝은 빛이 되어 온 누리를 비춘다고 찬양합니다. 시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자기 백성을 정의롭게 다스리십니다. 여호와께서 구별하여 불러 모아 세우신 거룩한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임이 확정됩니다. 야훼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바르게 선포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여망이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잘못된 예배가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그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십니다(출20:4). 세상에는 수많은 신전들이 있으며 수많은 신들의 형상들이 그 신전들에 봉안되어 있지만 그것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창조주는 한 분뿐이기 때문에(신6:4), 형상화된 그 어떤 신이라 하더라도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야훼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떤 신도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창조주의 동역자로 살도록 부름을 받습니다(창1:28).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여 생명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아가페 사랑을 하나님과 함께 모든 생명에게 베풀면서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접속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로 전환하는 사건이 예배 중에 일어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세상의 모든 우상숭배자들이 살아가는 이기적 자기중심적 삶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이타적인 생명살림의 삶으로 예배자를 이끌어 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계시되었습니다. 

생명살림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신을 만들어내는 세상의 어떤 군왕들과도 다른 통치자가 되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립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니 전쟁에서도 군사의 숫자나 무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주님의 손에 달린 것을 믿기에 초지일관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다는 신앙에 의지하여 안온하게 살아갑니다. 야훼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의지하던 다윗은 사울 왕의 온갖 박해와 살해위협을 이겨내고 승리하였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야훼 하나님의 도우심에 그가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모든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야훼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년에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온 나라에 인구조사를 하도록 군사령관 요압 장군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온 나라에 동원 가능한 군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를 조사하는 군역조사였습니다. 군역조사는 야훼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친히 싸우시며 전쟁은 군사의 적고 많음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씀을 다윗은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군역조사는 주님의 능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불신의 행위였습니다. 이로써 만년에 늙은 다윗은 주님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온 나라에 역병이 돌고 있었습니다. 백성이 수없이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예언자 갓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바른 예배를 드릴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라우나가 소유하고 있던 타작마당에서 야훼께 제단을 쌓는 일이라고 갓은 예언하였습니다. 야훼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제사를 지내면 재앙이 그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을 듣고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땅을 매입하려고 시도합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에게 타작마당을 사겠다고 매입 제안을 했을 때 아라우나는 임금에게 거저 바치겠노라고 헌납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타작마당을 위하여 은 오십 세겔을 지불하고 매입하였습니다. 정의로우신 야훼께 바칠 제단을 왕이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헌납을 받은 땅에서 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군역을 조사하다가 큰 징벌을 받은 다윗이 회개한 모습이 이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연약한 백성에게 어떤 손해도 끼치지 않으려는 다윗 왕의 백성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전능하신 야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신앙으로 회복하였습니다. 군대의 많고 적음에 의지하는 불신의 마음을 버렸습니다. 

세상의 적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려고는 헛된 시도가 나옵니다. 백성을 군역에 동원하여 고통을 주는 것이 우상숭배에 빠진 세상 군왕들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창조주 하나님의 정의를 깨닫고 사랑의 군왕으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백성에게서 공물이나 헌납을 강요하지 않는 왕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새롭게 변화된 왕이 번제를 드렸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후일 예루살렘의 성전 터가 되었습니다. 시온의 아름다운 터전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랑의 존재를 창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연약한 백성 아라우나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매입한 터 위에 제단을 쌓고 번제를 올려드리자 이스라엘 백성에 임한 역병의 재앙이 비로소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의 사역이 다윗의 참된 예배를 통하여 다시 백성 가운데 재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온에서 드린 최초의 참된 예배가 이스라엘 왕국의 참된 기초가 되었습니다. 시온의 번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소통하는 언약의 관계를 드러내는 역사적 행동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어야 하며 인간의 불안에 근거한 어떠한 이기적 기복주의 신앙도 없어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불행한 결과를 낳습니다. 우상 앞에서는 참된 예배에는 사라지고 고통만이 남을 뿐입니다. 다윗은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아라우나 타작마당의 번제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통일왕국과 분열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거듭 우상숭배의 늪에 빠져 들었습니다. 잘못된 자아를 청산하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보편적 자아로 거듭나는 일은 지난한 과제였습니다. 반면에 우상숭배는 자기가 바라는 욕망을 충족하는 예배이므로 많은 사람이 걷는 넓은 길이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실천하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바른 예배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협착한 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우상숭배로 타락하였고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군비경쟁에 열을 올리며 백성 가운데 노예제도를 온존하여 세상의 다른 군왕들과 동일하게 우상숭배의 길을 걸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참으로 길고도 어두운 식민지의 고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참된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회복된 관계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짧은 선언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성도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주께서 계시하신 참된 말씀이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요구는 자신이 품은 모든 우상숭배의 욕구를 버리고 잘못된 자아를 내려 놓으라는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하였음이 예루살렘에서 본보기로 실현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시온성 영문 밖에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희생의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죄인들이 참된 자아로 회복하는 진정한 치유의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참된 제자들이 주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성령을 받아 그 말씀대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에게 깨어졌던 하나님의 언약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다시 정립되고 참된 이스라엘이 초대교회로 탄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그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악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정의가 승리를 거둘 것은 너무나 확실한 일입니다. 조만간 닥칠 미래를 사람들은 미리 예상하고 그 대비책을 마련합니다. 이와 같이 치밀하게 따져 보았을 때 하나님의 승리는 너무나 확고히 다가오는 미래임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넓고 넓은 창조의 자유로운 품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훨씬 복된 삶을 보장함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어떤 일보다 더 남는 장사가 될 것임은 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이기적 못된 자아가 욕망하고 움켜 쥐고 있는 모든 소유를 버리는 자라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주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자는 비로소 이 부패한 세상 속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게 하는 소금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입니다.

 

시온의 성전에서 드려야 하는 참된 예배는 초대교회에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목격하고 그의 부활을 증언하는 무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예배자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로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각자가 소유한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다 내어 놓고 나누었습니다. 저마다 필요에 따라 물건을 사용하였습니다.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사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모든 재물이 다 창조주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자각한 사람들이 물질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자신을 공공재로 내놓은 것입니다. 그 중에 바나바도 전 재산을 공공의 재물로 내놓고 온전히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역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예배에서 일어난 존재의 전환이며 진정 행복한 삶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참되고 진정한 예배 공동체 안에 큰 시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물질을 사유화하려는 탐욕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다 함께 사용하려고 내놓겠다고 공약함으로써 공중 앞에서 자신의 결단을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재물을 팔아 다 내놓으려는 순간 의심이 들고 탐욕이 찾아왔습니다. 물질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물질욕망에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를 우상숭배의 예배로 타락시키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자신의 땅을 판 대금에서 일부를 떼어 감추어 두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행위가 성령을 시험하는 악한 행위임을 간파하여 꾸짖었습니다.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깨뜨렸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삽비라도 마찬가지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베드로의 책망을 받은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한 날에 벌을 받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타락은 온 교회를 우상숭배로 병들게 하는 무서운 시험이었기에 하나님의 엄한 징벌로 그들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처럼 우리 선조가 500년 동안 유지했던 조선왕조도 일제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조선왕조의 왕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동포들을 노비로 부려먹었습니다. 가난한 백성이 채무노예로 양산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왕국의 지배자들은 폭력을 사용하여 마땅히 사랑해야 할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였습니다. 정치가들도 수만은 사화들을 일으켜서 무자비한 살륙의 사화를 일삼았습니다. 조선왕조 말기에는 전국의 백성 가운데 노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반 이상을 웃도는 비참한 경지로 타락하여 있었습니다. 

성경은 노예들을 해방하고 평등한 경제를 실현하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레위인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 것을 가르칩니다.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승자독식과 영웅숭배의 길을 걸었던 세상의 모든 엘리트들은 이스라엘이 망한 것처럼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던 폭력의 조선왕조의 지배자들도 그렇게 죄 속에 살다가 마침내 처참한 멸망의 비운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독교도들을 살해하고 동학농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했으며, 못 먹고 배고파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민란을 무자비하게 제압했습니다. 백성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조선왕조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이 시점에 온 민족은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은 멸망한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기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배에서 백성이 사랑의 하나님을 영접하고 저마다 사랑의 실존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 할 것입니다. 백성이 참회하고 거듭나려는 노력을 성경은 요구합니다. 오늘 먼저 믿은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그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깨닫고 탐욕과 폭력의 세상과 대결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멸망의 길로 빠져들어 갈 것입니다. 

삼일절 10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우리는 우상숭배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여 온전히 보편적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새 창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먼저 거듭난다면 이 불쌍한 민족도 진정한 평화와 생명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북미회담을 앞둔 이 주간에 온 교회가 합심하여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온 성도가 저마다 참된 예배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로 거듭나서 이 땅을 생명, 정의, 평화의 나라로 세워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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