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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3-2) - "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 / 김진수 목사

longbeach 2019-01-19 (토) 13:01 5년전 3479  


10:12-22/ 딤전1:1-11/ 5:17-20         주현절셋째주일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자 곧, 오늘날의 신학자라고 부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매우 경건한 사람들로서 서기관들과 함께 매우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는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폐기하거나 적어도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고분이 아니요 그 율법을 성취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5:17) 오늘 주어진 세 본문은 율법의 본질과 그 한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그릇된 태도와 잘못된 적용, 율법의 진정한 완성과 성취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말하는 율법의 의와 그 한계

 

바리새인은 모세의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삶에 율법의 법조문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폐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일점 일획이도 없어지지 않고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18) 또한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불려 질 것이라 하셨고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천국에서 큰 자로 불려 질 것이라 하셨습니다.(19)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다음 말씀을 통해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율법에 대한 이해가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그들이 엄격하게 지킨다는 율법의 실천이 매우 왜곡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율법에 대한 이해실천이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1.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삶의 한계를 정해 놓은 울타리(Zaun)’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율법은 그 한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울타리입니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악을 저지하는 그만큼 선행까지도 저지하게 됩니다. 그 제한된 울타리 밖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율법의 매우 제한된 요구 외에는 어떤 선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롭게 부각되는 정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해도 됩니다. 주일만 잘 지키고, 헌금만 잘하면 됩니다. 율법과 관련된 삶의 지엽적인 문제들에 집착하느라 보다 중요한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23:23) 이를 통해 악은 이 땅의 더 넓은 영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2.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넓고 깊은 동기(Gesinnung)보다는 율법이 제한한 최소한의 법조항만 따르는 드러난 행위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가장 빠지기 쉬운 위선이 나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3:25) 그뿐이 아닙니다. 율법의 동기와 본질을 외면하고 최소한의 율법조항을 준수하는 드러난 행위에 집중하면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켰다고 확신하는 자기의(自己義)’에 빠지게 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 없이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율법조항에 부합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3.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타율적 명령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총이며 우리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룰 만 한 가장 가치 있고 참된 선()임을 망각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심한 구속이요 어쩔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됩니다. 율법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이므로 자신을 속박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율법준수를 냉혹하게 요구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무거운 짐이 되고 그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혹하리만큼 정죄합니다. 그 결과 극단적인 도덕주의자가 되거나 그와는 다르게 아예 자유 방종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감격과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고 굳고 냉혹하며 진부한 삶을 살아갑니다.

 

4. 바리새인들은 최소한의 법조문에 매달려 사랑과 선()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법은 다양한 상황과 서로 다른 개인의 처지를 수용하지 못하고 비인간적이며 획일적인 판단을 내리게 합니다. 오래된 법조문은 변하는 환경과 한순간 직관적으로 행동해야만 하는 사랑의 행위를 질식시키고 맙니다. 사랑은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그 순간 주님을 향한 헌신의 응답을 가능하게하기 때문입니다. 2백 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자를 도와야 된다는 이성적인 사람들은 평생, 우리 주님이 가장 필요로 하시는 순간 오직 사랑으로 그 요구에 응답하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소를 보고도 율법조문을 꼼꼼히 따지느라 살려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

 

하나님의 나라는 최소한의 율법조항의 준수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 하는 바리새인의 의를 통해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는 무엇입니까?

 

1) 새로운 의,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는 율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의입니다.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그의 명령은 하나님의 완전함에까지 도달하는 것, 그 의()는 보이는 겉모습 뿐 아니라 그 마음과 전 인격까지 새로워진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의입니다. 그의 의는 제한된 법조문이 아니라 한이 없고 끝이 없고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무조건적인 의입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존재, 새 피조물이 될 때만이 이룰 수 있는 의입니다.

 

2)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부터 오는 의로써 자기 교만과 자기 의를 부정하게 하지만 또한 자기포기와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부터 나왔으며 그것을 이루시게 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수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들입니다.(17:10)” 라고 말해야 합니다.

 

3)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는 율법을 지켜야만 할 의무로,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행해야만 하는 강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이며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받은 것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행하는 의입니다.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우리를 위한 자유로운 의무이며 법과 규칙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계명에 응답할수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며 하나님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4)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는 인간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간을 위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위미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 존재함을 아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의는 법으로 인간을 압제하고 제한하고 구속함으로 이루는 의요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는 우리를 자유케 하고 우리를 존귀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하는 의입니다.

 

율법의 완성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구원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큰 불행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김으로써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은 온전하지만 그 율법을 지켜야 할 우리가 불완전합니다. 문제는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율법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며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와 함께 율법의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이루시고 완성하러 오셨을 뿐 아니라 연약한 우리까지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첫 보혜사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의 은총을 베푸심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셨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중보하시며 성령을 보내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의 법을 따라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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