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주현절(5-2) - " 때를 분간하라 ' / 신학교육주일 / 서재경 목사 > 주현절

본문 바로가기

주현절 HOME > 설교올리기 > 주현절

[둘째해] 주현절(5-2) - " 때를 분간하라 ' / 신학교육주일 / 서재경 목사

관리자 2025-02-12 (수) 22:30 27일전 55  

본문) 23:23-32, 8:1-5, 12:49-59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누가복음 1256)

 

만약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깜짝 놀란 개구리가 화들짝 뛰쳐나가겠지요. 사방으로 물을 튕기며 온통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개구리를 시원한 물에 넣어주고, 아주 미세한 불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계속 덥혀주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개구리는 물속에서 편안하게 여유만만 찜질을 즐기겠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개구리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위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물에 익숙해져서, 뜨거워도 뜨거운 줄 모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계속 뜨거워져서 어느 순간에 임계점에 이르면, 그때 뛰쳐나가지 않으면 죽는데, 그걸 도무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구리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실 개구리나 야생 동물들은 위험을 본능적으로 잘 감지합니다. 위험에 둔감한 것은 사람이지요. 요즘에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잠수함에서 토끼를 키웠답니다. 오랫동안 잠수함에서 지내는 병사들이 심심해서 취미로 토끼를 키운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바다 밑에서 오래 있으면 제일 위험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산소 부족입니다. 공기 중에 산소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은 그걸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른해져서 편안하게 졸다가 잠들 수 있지요.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토끼는 산소가 조금만 부족해져도 아주 예민하게 느끼고 즉각 반응합니다. 이리저리 들이받고 날뛰지요. 그렇게 토끼가 불안해하면, 그것을 경종 삼아 물 위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 위험에 이른 지점, 그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역사에서도 때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이란 바로 때를 분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받아 읽은 누가복음 본문에는 예수님의 세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첫 번째 가르침(49-53)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시지요.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르침은 때를 분간하라는 말씀(54-56)입니다. 기상은 잘 분간하면서도 정작 때를 분간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 가르침은 고소하는 자와 화해하라는 말씀(57-59)입니다. 세 가르침은 함께 연결지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이 말씀들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이 예수님의 말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두 번째 말씀(54-56)부터 보는 것이 좋습니다. 때를 분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왜 하늘과 땅의 기상은 분간하면서 이 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지요.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서쪽에는 지중해가 있지요. 바다 쪽에서 구름이 일고 몰려오면, 바다에는 수증기가 많으니까, 소나기가 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남풍이 불면 덥겠다고 말합니다. 남쪽은 더운 사막 지방이니까 당연히 더워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상을 잘 분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늘과 땅의 기상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도무지 느끼지도 분간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도무지 한사코 느끼지도 못하고 분간하지도 못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그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를 분간하지 못한다고, 위선자라고 질타하셨습니다. ‘입니다. 때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보다 때를 잘 분간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바람이 불 때도 알고, 소나기가 내릴 때도 내다보고, 무더위가 닥쳐오는 때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를 일 년으로 나누고, 절기로 분간하고, 심지어 시 분 초로 정확하게 구분하지요. , 시간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예측하고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요 과학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결정적으로 시간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를 분간하지 못한다니,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는 우리가 아는 시간과는 다른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는 인간이 구분하고 분간하는 시간,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는 그리스 말로 카이로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크로노스를 분간하지 못한다고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카이로스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는 어떤 시간입니까? 우리의 시간을 꿰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요, 하나님의 때입니다. 수평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카이로스입니다.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시간은 꼼꼼하게 챙기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시간은 도무지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를 분간하라는 두 번째 말씀을 이해하고 나면, 불을 지르러 왔다는 첫 번째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불을 지르러 오셨다,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하셨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은 불이 난 것처럼 긴박하고 비상한 때다, 그 말씀이지요. 그게 카이로스입니다. 한 집에 다섯 식구가 삽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입니다. 이 다섯 식구의 평범한 일상은 어떨까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딸이 모두 사이좋게, 한 식구로 화목하게 지내겠지요. 그게 크로노스의 때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 가장 중요한 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일단 뛰쳐나가야지요. 물론 부모 처자식 다 내팽개치고 각자도생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질 때,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 했지요. 바로 그런 위기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 절체절명의 카이로스입니다. 세 번째 말씀(57-59)도 이 카이로스를 말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고소를 당해서 재판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재판정에 가서 재판관 앞에 서면, 유죄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긴박한 때입니다. 한가한 여유가 없는 시간이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판관 앞에 가기 전에, 화해하든 싹싹 빌든 무엇을 해서라도 풀려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급하고 절절한 시간이 곧 카이로스입니다. 긴박합니다. 카이로스를 분간하지 못하고, 때를 놓친다면, 불 속에 갇히거나 감옥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이 바로 그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에 이미 큰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곧 재판관 앞에 서기 전에 주어진 그 짧은 시간처럼 긴박하고 절박한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편안히 누워서 잠잘 때가 아니라 퍼뜩 깨어 일어나서 도망쳐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소나기가 올지 무더위가 올지 그런 걱정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때가 차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할 때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을 함께 받아 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떤 예언자였을까요?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예민하고 긴박하게 느끼고 알았던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은 후에 받은 첫 계시 중 하나는 끓는 가마솥환상이었지요. 가마솥에서 물이 펄펄 끓으며 넘쳐 흐르는 환상입니다. 긴박하고 절박한 위기지요. 더는 미룰 수 없는, 꽉 찬 때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카이로스의 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긴박하고 절박합니다.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듯 눈물로 외치고, 스스로 목에 멍에를 메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외치기도 했지요. 예레미야의 예언은 정말 슬프고 처절합니다. 자신의 심장이 속에서 터지고, 모든 뼈가 떨리고, 온몸이 곯아빠지고 녹아내렸다고 한탄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온몸으로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가로막고 훼방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굽니까? 바로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거짓 예언자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게 바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무슨 비화폰으로 직통한다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난다고, 심지어 하나님도 까불지 말라고 막말도 하지요. 두 번째는, 거짓 예언자는 잘 된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23:17)라고 말하지요. 물론 공짜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입에 복채를 물려주면 자동응답기처럼 그렇게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며,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찢어진 마음을 원하신다고 외쳤지요. 환란의 때에 나팔 소리로 경종을 울려주는 천사들처럼,(8:2) 예레미야는 말씀으로 카이로스의 때를 살아가는 백성들을 일깨웠습니다.

 

예레미야는 환란의 카이로스에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에 재앙을 선포하며, 백성들에게 행동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카이로스는, 재앙과 멸망의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태동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하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복음의 카이로스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때입니다. 회개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대는 어떤 때일까요? 예레미야는 끓어 넘치는 가마솥 환상을 보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재앙을 환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경험합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이 되었고, 참담한 전쟁과 살벌한 경쟁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카이로스의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끓는 물이 쏟아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희망의 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카이저와 헤롯의 때에 하나님 나라의 카이로스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돌이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때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그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카이로스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셔서, 우리에게 때를 분간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재경 / 한민교회 원로목사)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